문학비평

오지연 동시집 <개미야 미안해> 해설

권영상 2024. 4. 7. 20:15

 

<오지연 동시집 해설>

 

 

                                                                                                                                                                                                                                                                                                                                                                                                 

울새들아, 안녕!

(권영상, 시인, 전 한국동시문학회 회장)

 

 

 

아침에 함박눈이 내렸어요.

그때 나는 눈으로 울새 두 마리를 만들어 배롱나무 가지에 올려놓았지요.

예쁘게 노래하렴!

그러고 점심 무렵에 나가 보니 울새가 사라지고 없었죠. 아니, 그 사이에? 날아갔다면 어디로 날아갔을까? 내가 생각나면 혹시 연락쯤 해주지 않을까?

막 그러고 있는데 방안에서 휴대폰 수신음이 들렸지요.

옳지. 울새들이구나! 하며 달려가 휴대폰을 집어들었지요.

 

 

여보세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저쪽 울새 목소리를 기다렸지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제주도 사는 오지연입니다.

울새가 아니고 울새처럼 예쁜 목소리를 가진 오지연 시인이었습니다.

나는 오지연 시인을 아주 잘 알지요.

아주 재미있게 시를 쓰시는 흥미로운 시인이지요. 제주가 낳은 참시인이지요. 제주의 유채꽃빛 눈으로 세상을 산뜻하게 그려내는 시인입니다.

 

 

오 시인은 ‘새벗문학상’, ‘눈높이아동문학상’, ‘푸른문학상’ 등 알만한 상은 모두 휩쓸었지요. 이번엔 문화예술위원회 후원금으로 <개미야 미안해>를 내시게 됐다는군요.

작고 어린 아이들이라 해서 그림자도 없을 것이라 속단해버리면 안 되겠다 싶어 그 마음을 <개미야 미안해>에 담았다고 했습니다.

동시집 원고 <개미야, 미안해>는 그렇게 울새가 날아간 날, 만나게 되었고 그날부터 나는 마치 울새를 찾아 눈길을 나서듯 <개미야, 미안해>를 읽어나갔죠. 눈길 끝에서 돌아오며 나는 곰곰이 이 시들에 대해 생각했지요.

 

 

아, 시인은 개미며 민달팽이들조차 사람처럼 똑같이 대해주시는구나! 차별하지 않으시는구나! 미안한 게 있으면 그들에게도 차별 두지 않고 똑같이 미안해! 그 말을 하시는구나 했습니다.

차별을 거두는 일은 깊은 이해심에서 나오지요.

이해심은 힘이 세죠.

 

 

 

1. 민규야, 고마워

 

 

“꽃은 언제나 웃지요?”

 

선생님이 물었어요.

 

“아뇨, 시들 때는 울어요.

저 우는 거 접때 봤어요.”

 

1학년 민규가 대답했어요.

 

 

-‘꽃도 울어요 –민규-’ 전문

 

선생님이 1학년 교실 어린이들에게 꽃은 웃지요? 하고 묻네요.

어른들은 당연히 꽃은 웃는 얼굴이라 여기며 살아왔죠. 그것은 마치 여우는 나쁘고, 개미는 착하고, 아빠는 울지 않고, 바람은 살랑살랑 가볍기만 하고.

그렇게 한쪽으로만 보고 배우며 살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1학년인 민규가 접때 꽃이 우는 걸 봤다고 대답합니다.

꽃이 시들 때 우는 걸 본 민규 마음엔 눈물이 있었던 거죠. 눈물을 가지고 있어서 꽃이 시들 때 꽃의 눈물을 보았던 거죠.

세상의 새들은 노래도 하고, 울새처럼 울어주는 새가 있어서 기쁨과 눈물을 지닌 완전한 새가 되는 거죠. 그것처럼 꽃 역시 웃기도 하지만 운다는 민규가 있어 우리는 비로소 꽃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거지요. 반쪽과 반쪽이 만나 세상은 완전해지는 거랍니다. 이 시는 이쪽 뿐 아니라 저쪽도 볼 줄 아는 이해심, 그걸 넌지시 귀뜸하네요.

 

 

2. 오디 먹으러 와요

 

 

학교 뒤뜰

아름드리 오디나무 아래

 

아이들 머리가

까맣게 와글와글.

 

그 발 아래

 

바쁘게 기어가는 개미들이

까맣게 바글바글.

 

-‘까망’ 전문

 

 

바쁘잖으면 학교 뒤뜰로 오디 먹으러 와요. 바쁘더라도 학원 가던 발길을 돌려 달려와요. 한창 익고 있는 오디나무 아래에 아이들이 와글와글이네요. 그 아래 개미들도 바글바글이네요. 개미들 좀 보세요. 아이들 발에 밟혀도 좋다 이거네요. 아니 죽어도 좋다 이거군요. 학교 뒤뜰 오디가 얼마나 맛있으면 이렇게 난리 버거지일까요.

어쩌면 좀 노는 애들이 오디나무에 뽕, 해서 그렇겠죠. 가장 맛난 것일수록 구리구리한 게 숨어 있다는 거 알죠? 고양이 똥 묻은 커피 그게 최고라잖아요.

 

저도 이 오디 판에 한번 가보고 싶네요.

오십 명이 모여들어도 오디는 넉넉하겠어요. 아니 백 명이 모여들어도 넉넉하겠어요. 집에 노는 강아지며 우두커니 박혀있는 돌멩이들까지 모여와도 실컷 먹겠어요. 오디나무가 아름드리라잖아요. 세상에나 말이죠. 색깔 축에도 못 끼는 ‘까망’이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내다니요! 멋지네요.

 

 

3. 개미야 미안해

 

 

선생님께 꾸중 들은 날

땅만 보고 집을 향해 가는데

 

개미 한 마리 뽈뽈뽈

그림자를 끌고

어디론가 바삐 가고 있다.

 

너무 작아서

넌 그림자도 없는 줄 알았어.

오해해서 미안해.

 

있어도 너무 까매서

그림자가 아닌 줄 알았어.

오해해서 미안해.

 

- ‘개미야 미안해’ 전문

 

 

오디나무 밑에 모여 와글거릴 때는 그 누구도 발밑의 개미를 못 보죠. 당연하죠. 그 마당에 개미가 눈에 들어올 리 있겠어요.

민규, 너 손톱 밑의 이 때가 뭐야? 찢어진 이 옷은 뭐고!

이렇게 선생님께 야단맞고 돌아선 날은 다르죠.

내 마음 언저리가 아파봐야 비로소 나보다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죠. 풀섶 아래 낮은 데를 기어다니는 개미는 그런 사람의 눈에만 띄죠.

 

‘쪼꼬매서 그림자도 없는 줄 알았어.’

비로소 개미 그림자가 눈에 들어오죠.

‘너무 깨매서 그림자가 아닌 줄 알었어.’

비로소 오해한 게 또 너무 미안해지는 거죠.

내가 잘 안다는 친구를, 동생을, 엄마를 나는 혹시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닐까요? 돌을 던지면 풍덩, 하고 우는 웅덩이 물을 춤추는 거라고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오늘 하루 ‘친구야 미안해!’ 그 말을 해주고, ‘엄마, 오해해서 미안해!’ 그 말을 해주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네요.

 

 

4. 아빠는 나를 숨겨주셨지

 

 

따가운 여름 햇빛을

통 피할 곳이 없는 광장이었어.

 

이마를 찡그리며 서 있는데

아빠가 살며시 손을 끌더니

등 뒤에다 나를 숨겨 주셨어.

키 큰 그림자 뒤에 숨었지.

 

큰 나무 한 그루 그늘 아래

작은 나무 한 그루처럼

가만히 그렇게 서 있었지.

 

-‘그림자’ 전문

 

 

광장에서 따가운 햇빛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을 때 아빠는 나를 슬며시 아빠 등 뒤 그림자에 숨겨주네요. 이제 보니 아빠는 그런 사람이네요.

아빠, 얼룩말처럼 빨리 달릴 수 있어? 상어처럼 헤엄 잘 칠 수 있어?

누구나 한때 아빠를 얕보던 때가 있지요.

아빠가 컴퓨터에 대해 좀 모르는 게 있으면, 아빠, 생각해 보면 알지, 그렇게 쉬운 것도 몰라요! 아빠는 방귀만 뿡뿡 뀔 줄 알지 할 줄 아는 게 뭐예요? 그렇게 놀리던 때도 있지요.

 

그런 때에도 아빠는 햇빛 뜨거운 날을 위해 등 뒤에 커다란 그림자를 준비하였던 거죠.

아빠는 지붕이 커다란 한 그루 나무라지요.

그 나무는 너무도 커서 그 아래에 우리 집 식구가 다 들어서고, 길 잃은 울새조차 들어서게 하여 따스한 가정을 이루지요,

아빠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라고 왜 외로움이 없겠어요. ‘아빠, 놀려서 미안해!’ 지금 그 말이 필요한 시점이네요.

 

 

 

여기까지 뚜벅뚜벅 뚜버기처럼 걸어온 보람이 있네요. 울새를 찾았어요. 꽃의 눈물을 볼 줄 알고, 개미의 쪼끄만 그림자를 볼 줄 아는 민규, 성준이, 아영이, 민호.....

그들이 오지연 시인께서 이 동시집 <개미야 미안해>에 숨겨놓은 울새들이었지요. 이들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올라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시의 노래를 들려주길 바랍니다.

울새들아, 안녕. 오지연 시인이시여, 안녕!

 

오지연 동시집 <개미야 미안해> 청개구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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