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미 시인 동시집 해설>
16년 침묵으로 꼭꼭 빚어 만든 시
권영상
창밖에 여름비 내리는 6월입니다. 뜻밖에도 현경미 시인의 동시집 원고를 만났습니다. 여름비 내려도 꽃은 피어야 하죠. 꽃 핀다 해도 여름비는 또 여름에 내려야겠죠. 시인 역시 여름비 내려도 비 오는 날의 꽃들처럼 세상에 동시집을 내놓아야겠죠.
현경미 시인을 만난 건 2007년 1월, 대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서였지요.
그때 나는 심사를 했고, 현경미 시인은 화려하게 당선 되셨지요.
그 후, 소식이 뚝 끊어졌습니다. 시인이 살고 있는 쪽에서 발행되는 문학지가 집에 오면 나는 혹시나 하고 제일 먼저 현경미, 그 이름부터 찾았지만 만날 수 없었죠. 그렇게 시인의 소식은 가물가물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었지요.
근데 여름비가 시작될 때, 수국이 한창 필 때, 뜻밖의 전화 신호음이 나를 찾았지요. 받고 보니 그분이었습니다. 아무리 기억의 저편으로 가물가물 잊혀져 가고 있다 해도 나는 그분이 현경미 시인임을 단번에 알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사이 16년이라는 세월이 깜물 지나갔던 겁니다.
나는 현경이 시인이 보내준 동시집 원고 《언니는 따뜻해》를 수국이 피는 뜰을 내다보며 읽었습니다. 16년이라는 침묵의 시간으로 꼭꼭 빚어 만든 시들이었습니다. 나는 왜 신춘문예에 당선 되고 이렇게 오랫동안 침묵했냐고 묻고 싶었지만 물을 수 없었지요. 자식 둘을 둔 아기 엄마가 집안일을 놓고 시를 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이지요.
모르기는 해도 그 세월동안 시인은 자신 곁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시를 바라보며 시의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를 셀 수 없이 되풀이 했을 테죠. 그런 오랜 망설임 끝에 시인은 놓았던 시의 손을 다시 꼭 붙잡았던 겁니다.
현경미 시인의 《 언니는 따뜻해 》를 읽어나가며 시를 발표하든 오래 침묵하든 시는 시인의 내면에서 성장한다는 것을 발견했지요. 세상을 걱정하고, 아파하고, 외로워하는 그 고민이 시인에게는 모두 소중한 시의 싹이 되었을 테니까요.
《언니는 따뜻해》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시인도 시인의 동시도 침묵의 16년 동안 수국 꽃빛처럼 깊어졌음을 나는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1. 나를 찾아가는 참깨
16년간의 침묵, 사실 시인은 시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침묵이 시로 태어나는 토양이라 하지만 돌아오기엔 너무 먼 지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설명할 수 없는 변곡점에서 시인은 서둘러 발길을 돌렸습니다.
참깨는 마음이 바쁘답니다.
여름 내내
한 알 두 알 모은
깨알 통장
다 털리기 전
톡, 톡, 톡
흙에게 이체 중이랍니다.
-「 톡, 톡, 톡」 전문
뭔가 좀 다급해진 시인의 내면 풍경이 잘 드러나는 시입니다. 시집 한 권 없이 침묵해 온 시인은 이쯤에서 ‘톡, 톡, 톡’을 내놓았네요. 버리고는 살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시의 영토으로의 귀환이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바빠진 참깨의 마음이 어쩌면 시인의 마음일 것 같습니다.
참깨는 오랜 생각 후에 알아냈습니다. 참깨 보숭이가 되어 국그릇이나 나물무침 위에 톡, 톡, 톡 털리고 말 것이 아니라 톡, 톡, 톡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참깨는 참깨로 다시 태어나는 영원성이 흙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현경미 시인은 이렇게 하여 참깨의 땅, 확고한 ‘시의 땅’으로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물고기라고 물만 좋아할까요?
난 산에 들에 꽃이 좋아
꽃봉오리들 팡,
웃음보 터트리는 순간
꽃향기 간질,
코끝을 스치는 순간
잎사귀들 팔랑.
손짓하는 순간
기쁨을 알아
물을 떠난 물고기가 되기로 한 건
이 때문이야!
가끔이지만 난 노래를 부르곤 해
순간순간 풍경을 담아
뎅그렁
뎅그렁.
- 「 풍경 」 전문
현경미 시인은 이제 특별한 시인이 되었습니다.
시인이 될 바엔 남들과 똑 같은 시인이 될 건 아니지요. 물고기라고 다 같이 물에 사는 물고기가 되는 건 싫습니다. 그런 물고기가 되려고 오랜 날을 침묵하고 외로워한 건 아니지요. 물고기지만 꽃을 좋아하고, 코를 간질이는 꽃향기의 달콤함을 알고, 바람에 팔랑이는 잎사귀들의 기쁨쯤 아는 물고기가 되려는 거지요. 그런 물고기가 되기 위해 시인은 살던 ‘물’을 단호히 떠나 위험하고도 가파른 처마 끝에 머물 자리를 만듭니다.
그리고 바람 부는 어느 날, 시인은 노래하는 풍경 속 물고기로 태어납니다. 뎅그렁! 뎅그렁!
귀가 귀인지 모르죠
귀를 손잡이로 알거든요
귀를 잡고 물을 마시는 사람들
물보다 쏟아내는 말들이
나를 채워요
뻥 뚫린 내 귀는 어떤 말이든 통과하지요
내 안에 담지 못할 말보다
오래 담아두고픈 순한 말이면 좋겠어요
귀를 쫑긋!
이제 가득 찰 준비가 된 걸요
다시 속을 비웠거든요
-「 물컵과의 인터뷰 」 전문
위 시에 등장하는 ‘귀’는 물컵의 귀이지요. 또한 달리 보면 사람의 귀이기도 하고요. 물컵에 담기는 물은 또 달리 보면 사람의 말이기도 하네요. 중층구조를 가진 동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물컵의 귀를 손잡이라 우기며 그걸 잡고 물을 마시죠. 처음부터 잘못된 접근이지요. 귀를 정중히 귀로 인정하고 대화한다면 조곤조곤 작은 소리여도 안 통할 말이 없을 테죠. 우리는 혹시 물컵의 귀를 손잡이로 왜곡하듯 벽을 보고 말하면서 그걸 대화라고 하는 건 아닐까요.
내 귀는 뻥 뚫린 귀. 그 어떤 말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2. 제자리로 돌아가기
세상을 오해하면서부터 우리는 그 세상과 불화를 반복해 왔습니다.
자신만의 고유한 능력과 성격과 취향이 서로 다른 존재로 보지 않고,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똑 같은 높이의 욕망을 들이댈 때 구성원들은 힘들어 합니다.
교실에서 나온
의자 하나
화단 나리꽃
옆에서
쉰다
교실도
아이도
다 잊고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나무처럼
-「 교실 의자 」 전문
교실 의자가 교실을 뛰쳐나왔습니다. 교실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의자는 교실과 아이들을 버리고 생뚱맞게 화단 옆에 나와 있을까요. 시인은 또 다른 동시 「 방학이 뭐 이래?」에서 ‘옆집 은지는 어학연수 가고/ 단짝 소영이는 학원 시간이 달라/ 시간 많은 승리는 게임에 빠져 나오질 않아’ 놀 친구가 없다고 한숨을 쉽니다. 방학이 이런 상황이면 방학이 아닌 때의 교실 풍경은 얼마나 숨 막힐까요.
어쩌면 공부에 시달리는 교실 아이들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책상 의자가 교실을 뛰쳐나온 건 아닐까요. 의자는 숨 막히는 교실에서 벗어나 한 그루의 나무였던 본디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의자만 그럴까요?
처음엔 자연이 학교였대
고구려 태학, 신라 국학, 발해 주자감, 고려 국자감, 조선 성균관, 근대 학당, 현대 학교, 코로나19 팬데믹 교실 없는 학교, 화면 안으로 들어간 스마트 학교......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어
그땐,
자연이 도망치고 없을지도 몰라
-「 학교 역사 」전문
오래 전의 학교는 ‘자연 학교’ 였죠. 들꽃과 개구리와 풀뱀과 이야기하고, 무지개를 잡으러 달리고, 휘파람새와 휘파람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던 자연 학교였지요. 때로는 그리움과 외로움과 꿈과 아쉬움과 동정심도 배웠지요.
자연을 떠나 도시로 온 학교는 그런 걸 외면합니다. 줄을 세우는 일에 그런 것들이 필요 없으니까요. 이제 어떡하나요? 그렇다고 ‘비 오면 비 와서 놀고..... 눈 오면 눈 와서 노는’(「 방학이 뭐 이래? 」) 엄마 아빠 시절로 학교가 돌아가야 할까요?
시인은 학교가 종국적으로 가야할 곳을 자연으로 삼습니댜. 자연과 문명, 자연과 인문, 이 두 세계의 균형을 바라고 있습니다. ‘자연이 도망치고’ 사라지기 전에 학교는 부디 본디의 자리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게 시인의 마음입니다. 고소한 참깨 보숭이도 먹고, 흙으로 돌아가 다시 참깨로 태어나야하는 그것이 참깨의 마음입니다.
3.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다
어린이를 살리고 학교를 살리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것만이 전부일까요. 자연의 어느 언덕에 홀로 앉아 도도히 흘러가는 도시 속 문명을 외면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여기 문명을 만나 문명에 적응해 가며 보란 듯이 살아내고 있는 이솝우화 속 베짱이의 배짱이 있네요.
출근하는 개미가 베짱이와 마주칩니다
-출근 안 하니?
베짱이는 배짱 있게 대답합니다
-노래 교실 열었어
-채널 공유할게
=좋아요, 구독, 알람 설정 부탁해!
-「 유튜버 베짱이 」 전문
이 시에는 이솝우화 속에 나오는 두 인물, 개미와 베짱이가 등장합니다. 2600년이라는 아득한 세월이 흘렀는데도 변하지 않은 인물이 있습니다. 개미입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일하기를 재촉하는 성격의 소유자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베짱이는 배짱 있게 많이도 변했군요. 그 동안 노래 부르기를 즐기는 정도가 아니라 노래 교실도 열고, 공유 채널도 만들고, ‘좋아요’ 구독은 물론 자신의 노래로 알람 설정을 권하는 똑똑한 유튜버가 되어 있습니다.
개미가 아날로그 형이라면 베짱이는 디지털화된 인물입니다. 디지털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그에 걸맞은 인식의 체계를 구축하기 바라는 것이 시인이 에둘러 말하는 현대성을 지닌 ‘학교’입니다.
한 채뿐인 집을 버리기로 했어
좁은 공간에서
있는 둥 없는 둥
살지 않을래
다르게 살아 볼 거야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녀도 보고
흔들흔들
흔들려도 볼 거야
당분간 시끄러울 수 있어
조금 참아줘
가을엔 동네를 뜰 생각이야
-「 노마드족 매미 」 전문
앞의 시 「 유퓨버 베짱이 」에 등장하는 베짱이와 유사한 인물이 이 시의 ‘노마드족 매미’입니다. 노마드족이란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21세기형 신인류입니다. 그는 노트북, 휴대폰, 디지털 카메라 등으로 무장하고 살지요.
이 시 속 ‘매미’는 과거와 다르게 살고 싶습니다. ‘있는 둥 없는 둥’ 살던 방식을 과감히 버립니다. 좀 시끄럽고 소란스럽더라도 자신의 방식으로 살고자 합니다. 전 같으면 엄두도 못 냈을 ‘조금 참아줘!’ 라는 용기있는 말로 이웃들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달라져도 엄청 달라졌습니다. 때가 되면 ‘동네를 뜰’ 각오가 되어 있는 노마드족 매미에게 소심함은 사라졌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생의 기쁨과 존재에 대한 뿌듯함입니다.
현경미 시인의 시에는 유독 현대문명에 대한 시와 시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 동시의 제목 ‘노마드족’ 이 그렇고 뉴노멀, 리모델링, 유튜버가 등장하는 시들 모두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도구로 적절히 쓰이고 있습니다.
4. 참깨가 가족을 발견하다
우리가 디지털 문명의 세례를 받으며 그 편리함을 즐길 때 가정으로 스며들어온 또 하나의 어두운 편리함이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도 결혼하지 않고 간편하게 혼자 사는 1인 가족입니다. 1인 가족 속엔 가족 간의 관계라는 문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어쩌다 할머니 오신 날
뒹굴뒹굴 아빠도 게임하던 동생도 방문을 걸어 잠근 언니도
총, 총, 총 걸어 나와
꽃잎처럼 밥상에 둘러앉는다
어쩌다 한 번
우리 집에 피어나는
어쩌다 꽃!
-「 어쩌다 꽃 」 전문
어쩌다 온가족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습니다. 시골에서 할머니가 오신 날입니다. 할머니가 오시지 않는 날의 우리 가족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각자 자신의 방에서 분리되어 삽니다. 이 모습은 오늘 날 우리 모두의 ‘우리 집’이 안고 있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이 풍경을 아슬아슬하게 보고 있으며 달리 어쩌다 피는 꽃이라고 합니다. 만약 할머니가 찾아오시지 않는다면 이 ‘어쩌다 꽃’도 피지 않을 테지요.
그러나 할머니가 오신 날이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총, 총, 총 걸어나와 밥상머리에 둘러앉습니다. 밥상 공동체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 해체와 1인 가족의 가장 큰 위기를 시인은 밥상 공동체 문화에서 찾고 있습니다.
시인은 날카롭지만 가장 날카롭지 않은 ‘어쩌다 꽃’이라는 시어로 아슬아슬한 가족 문화를 아프게 꼬집습니다. 이쯤이면 참깨의 마음이 가 닿는 곳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올겨울 제일 추운 날
보일러가 고장났다
두툼한 이불 뒤집어 쓰고도
덜덜덜
한밤중에 깨어보니
언니가 나를 꼭 껴안고 있다
건들기만 해도
짜증부리던
언니가 따뜻하다!
-「 언니는 따뜻해 」 전문
몇 번을 읽어도 따뜻한 시입니다.
서로 다투고 미워하다가도 어떤 때에 보면 이유 없이 미움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환한 사랑이 살아나는 게 가족입니다. 그게 가능한 것은 가족은 경험을 공유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서 가족이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작고 소중한 사회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빼어난 시도 가족을 바탕으로 그려내는 시보다 더 감동적일 수 없습니다. 짜증만 부리던 언니의, 미운 언니의 몸에서 느닷없이 따뜻함을 느끼는 그 감정은 가족이기에 가능합니다.
시인이 침묵 끝에 시를 쓰게 된 가장 큰 모티프도 어쩌면 이 가족이라는 테마 때문일지 모릅니다. 보일러가 꺼진 추운 밤에도 춥지 않게 잘 수 있는 건 가족 때문이고, 각자 자신의 방에서 따로따로 지내면서도 할머니만 오시면 총, 총, 총, 걸어나와 밥상머리에 둘러앉게 하는 그 힘도 가족이라는 관계 때문입니다.
창밖에는 아직도 여름비가 내리고 수국은 비를 즐기듯 곱게 피고 있습니다. 수국이 피는 여름내내 현경미 시인의 참깨 같은 동시 66편과 함께 읽은 날들이 행복합니다. 시에서 수국냄새가 나듯 현시인의 시는 오랜 침묵 끝에 핀 꽃처럼 향기 있고 또한 격조 있습니다. 그리고 시를 왜 써야하는가 라는 질문을 몇 번이고 내게 던졌습니다.
모쪼록 현경미 시인의 《언니는 따뜻해》가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꿈을 키우고, 어린이들의 고민과 아픔을 다독여주는 그늘이 큰 나무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동심을 가진 모든 어른들에게도 위안이 되는 시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현경미 동시집 <언니는 따뜻해> 청개구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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