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희 시인의 '책속의 책' 동시 10편 해설>
꺼질 줄 모르는 유미희 시인의 동심
권영상
유미희 시인이야 말 안 해도 동시 잘 쓰신다는 거 다 아시죠.
연필시문학상 제 2회 수상자이셨죠. 그 무렵이 동시가 한창 꽃 피던 때가 아닌가 해요. 시에 임하시는 자세가 반듯하고, 현실을 보시는 마음이 살뜰한 것도 유 시인의 꼼꼼하신 성미 탓이 아닌가 합니다.
서산에 일이 있어 내려갔다가 이정록 시인을 만나 그 저녁에 뜻하지 않게 유미희 시인을 보았죠. 셋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일이 어제 일처럼 떠오르네요. 그때도 우리 유미희 시인은 시 이야기를 할 때면 표정이 진지하고 반듯했죠.
7.8년은 됐을 적의 일입니다.
모 출판사에 동시집 <아, 너였구나!>를 내고 아마 한 일 년쯤 지난 뒤였을 거예요, 문예진흥기금을 지원받은 유미희 시인이 동시집 내준다는 곳에서 펑크 나는 바람에 납품 기일이 촉박하다며 안절부절 못 할 때였지요. 나는 혹시나 하고 그 모 출판사에 전화를 드려봤죠. 동시가 좋은 분이라고. 그랬더니 정말 원고를 보시고 흔쾌히 받아주셔서 다행히 제 때에 책이 나왔지요. 아, 그때 그 동시집 해설을 제가 썼군요. 보통 원고지 서른 장쯤 썼는데, 편집자가 욕심이 많은 분이라 마흔 장쯤 써 달래서 아주 식겁했었죠. 그때 유 시인은 그 출판사에서 용케 그림책도 냈지요.
“편집자랑 식사 한번 해요. 선생님.”
유 시인이 그 무렵, 전화를 해왔었죠.
그때가 12월인지 2월인지, 하여튼 겨울인 것만은 분명해요.
광화문 근처 어느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그때까지 못 가본 청계천 밤길을 걸으러 갔죠. 추운 밤, 도심 한복판에서 청계천 맑은 밤물소리를 따라 걸었죠. 거기 숨어 자는 밤새 소리며, 물속에 잠든 물고기 그림자며, 하얗게 피는 갈꽃을 보며 그 길을 셋이 걷던 일은 지금도 안 잊히네요. 그때 거기 광교쯤에서 우리는 박인환 시인처럼 멋지게 명동길 한 번 걸어보자, 그러며 청계천을 나왔죠.
을지로입구역을 지나고, 그 추운 밤 몇 번인가 신호등을 건너 롯데백화점 앞을 지나고, 옛날 미도파 백화점 앞을 지나고, 드디어 명동길에 접어들었죠.
밤은 추운데 무슨 극성스러움이 있어 그 길을 멀다않고, 우리는 동시 이야기를 하며, 문단 이야기를 하며, 편집자로부터 그 무렵의 출판동향을 들으며, 니 말이 옳네, 내 말이 옳네, 하며 추운 길을 뜨거운 가슴으로 걸었죠.
외투자락을 휘날리며 명동길을 걷던 박인환 시인을 생각하며 우리도 즐겁게 걸었죠. 그 길 끝에서 뭔 마음이 맞았는지 우리는 명동성당 안으로 성큼 들어섰구요. 거기 어둠속에 하얀 빛으로 서 계시는 성모상 앞에 다가가 손 모아 기도를 했죠. 우습지도 않았죠. 저마다 종교가 다른 데도 그렇게 마음이 맞아 기도를 했는데, 나는 내 성미로 보아 제발 술 한 잔 더 하게 해 주세요, 하고 빌었을 것 같네요. 유 시인은 모르죠. 시 잘 쓰게 해주세요, 했는지.
우리는, 우리 세 사람과 성당의 높다란 십자가가 나오도록 사진을 찍어달라고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했는데 나중에 보니 십자가만 나오고 사람은 없었죠. 하도 추워 명동성당 옆 다락방이 있는 카페에 들어가 무릎 사이에 손을 넣어 비비며, 호호호 커피를 마셨죠.
그때 유미희 시인이 차 시간이 거의 다 돼 간다고 했고, 우리는 커피를 마지막으로 아쉽게 작별하던 일이 새롭네요.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닌데도 떠올리고 보니 아련한 추억이네요. 그런 겨울 추억 때문인지 유미희 시인은 물론, 그때 그 편집자와는 지금도 가끔 문자와 전화를 주고받지요. 유미희 시인께서 그 후, 셋이 모여 또 한 번 식사해요, 하기도 했구요.
글을 쓴다는 게 어쩌면 그런 되돌아볼수록 아련한 추억을 써내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동시 10편 해설을 하는데 무슨 엉뚱한 이야기냐 하실지 모르겠네요. 근데 이 만큼 나이 먹어 별의별 글을 다 읽어보고 다 써 보지만 시 10편을 가지고 30매를 잘 쓴다한들 본인 아니면 누가 공들여 읽을까 싶어요.
그냥 그 시인과 얽힌 일화로 반 정도 채우고, 저의 짧은 문학적 소견으로다가 남은 매수를 채울까 합니다.
유미희 시인 근작 10편, 파란 가을 하늘 밑에서 읽었습니다.
흠 하나 없이 다 좋지요. 근작을 읽으면 시인이 요새 뭘 생각하는지 시인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어 약간의 호기심도 생겨 좋지요.
생명이란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냐, 그 생명을 지켜내는 데는 또 얼마나 고달픈 노동과 노고가 뒤따르는 것이냐, 유 시인은 또 자꾸 망그러지는 우리 지구에 대해 걱정하며 여름철을 보내셨구나, 했습니다. 올여름, 참 더웠습니다. 기상학자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는 해마다 ‘작년보다 올해가 더 더워!’ 그런 말을 할 거라더군요.
‘아름답다고 말 하는 그 사이’란 시가 지구환경과 관련된 동시였어요.
남극을 찾아간 여행객들이 무너지는 빙하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Beautiful’을 외치는, 텔레비전에서 본 어느 날의 장면을 적은 시입니다.
그 시에서 인간의 두 얼굴을 보았어요. 환경, 환경을 외치는 사람들과 때로는 전혀 다른 얼굴로 환경을 망가뜨리는 모순된 두 얼굴요. 이 시에서 ‘Beautiful’을 외치는 사람들도 집에 돌아가면 다들 환경, 환경을 외칠 테죠, 빙하가 녹는 남극의 실태를 고발하겠다며 탄소 배출의 주범인 비행기를 타고 그 먼데까지 가는 기자들과 환경론자들, 그게 우리의 얼굴이 아닐까 합니다.
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두 얼굴로 지구를 망가뜨리며 살아가야 하는 건가요. 경제 성장론은 언제쯤 가야 멈추고, 부에 대한 우리의 욕망은 또 언제쯤 가야 그치게 될까요. 우리는 언제까지 타인들 속에 숨어 ‘그게 우리의 문제야!’ 라며 나의 대답을 우리에게 돌려버릴까요. 국가도 마찬가지죠. 혐오 산업을 후진국에 떠넘기고, 그 나라의 환경정책을 비난하죠. 인간은 환경에 대해 숱한 질문을 던지지만 자신이 해야 할 대답은 모두 피하고 말지요. 말은 안 하지만 가볼 데까지 가 보자는 게 지구환경에 대한 대답인 것 같습니다,
‘맹꽁이 울음소리’ 역시 환경에 대한 테마입니다.
화자가 새벽에 아빠랑 제주 오름에 올라갑니다. 거기 빗물 고인 습지에서 맹꽁이 울음소리를 만나지요. 한 마리도 아니고 수 백 마리가 ‘맹꼬오오옹, 맹꼬오오옹!’ 우는 광경을 목도합니다. 이 시는 단지 제주 오름에서 맹꽁이 울음소리를 만났다는 정보를 주는 시는 아니지요. 과거 우리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던 맹꽁이가 다 사라지고, 지금은 제주 그 한 곳에서만 간신히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는 정보를 전하는 시입니다.
맹꽁이는 다 아시다시피 멸종위기종 2급 생물입니다.
맹꽁이가 산다는 건 그 지역이 농약이나 오폐수로부터 안전하다는 신호입니다. 내륙에서 맹꽁이가 멸종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땅이 맹꽁이가 살기에 부적합한, 어쩌면 인간이 살아내기에 점점 적절하지 않은 위험한 땅임을 알려주는 지표입니다.
그 맹꽁이들이 제주 오름 그 분화구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이 시는 환경의 위기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게 아닐까 합니다.
다음으로 유 시인이 고민하는 테마는 생명성입니다.
‘버리진 달걀판’과 ‘토끼 소동’이 그런 유형의 시입니다.
‘버려진 달걀판’엔 두 사람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빈 달걀판을 버리는 아빠와 그걸 주워와 참새들 먹이 그릇을 만드는 화자. 화자는 빈 달걀판 서른 개의 오목한 밥그릇에 모여드는 참새들을 보며 중얼거리지요.
‘밥/ 먹는다’ 고.
이 시의 핵심어는 이 ‘밥 먹는다’인 듯 합니다.
참새라면 밥 먹는다가 아니고 모이 먹는다일 테지요. 근데 모이 먹는 참새를 바라보며 그들이 마치 사람인 것처럼 말하는데서 시인의 인간과 새의 평등관이 드러납니다. 시가 가지는 치유의 힘이란 가끔 이런, 생명 있는 것들을 모두 평등하게 보는데서, 또는 차별에서 받은 상처를 달래는 데 있지요.버려진 빈 달걀판이 누군가의 밥을 담는 그릇이 됨을 통해 어찌 보면 이 세상에 버릴 것이란 없다는 존재의 가치와 더불어 환경 문제 해결로 이어지게 되는 게 아닐까 합니다.
동시 ‘토끼 소동’ 역시 생명문제를 다루고 있지요.
간밤 폭풍우에 토끼집 지붕을 덮어주었던 장판이 날아가고, 그걸 눌러주던 돌멩이도 굴러 떨어지고, 끝내 빈사과 궤짝으로 만든 토끼집이 마당에 나뒹굴고 있네요.
그걸 보고, 엄마 몰래 귀한 당근을 주던 승채도 울고, 승채 동생 승제도 지금 울고 있네요.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재해로 인해 생긴 피해자는 토끼지요. 바람과 폭우에 저항할 힘이 없는 토끼는 지금 자연의 폭력성 앞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아무 힘없기는 내 친구 승채와 승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우는 일 밖에요. 좀 소극적이긴 하지만 토끼장 속에 갇혀 밤새도록 비를 맞았을 토끼에 대한 가엾음이라든가 연민이 드러나는 시네요.
세 번째로 눈길을 끄는 것은 ‘아홉 보따리 할머니’와 ‘어떤 연필’에 나타나는 노동입니다.
‘아홉 보따리 할머니’가 품고 있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홉 보따리 할머니는 ‘상추 쑥갓 강낭콩 파 오이 감자 옥수수 열무 …….’ 등의 푸성귀를 보따리 보따리 아홉 보따리를 만들어 ‘이고/ 지고/ 들고’ 읍내 장에 가지요. 보따리에 얼굴이 파묻힐 만큼 많은 것들을 내다 팔아 할머니는 아빠랑 고모를 대학에 보냈다네요.
그 할머니가 누구인가요? 화자인 ‘나’의 할머니인 걸로 보아 어쩌면 시인의 할머니일 수도 있겠다 싶네요. 그 할머니가 오늘도 아홉 보따리에 얼굴을 묻고 장에 가시는데 화자인 ‘나’는 아무 감정이입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고된 노동의 이유가 자식들 키우는데 있었지만 그 자식들 다 컸는데도 그 일을 계속하시는 할머니에게 ‘아홉 보따리’는 할머니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이거나 노동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노동이기보다 그게 인생이고 때로는 행복한 일상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쯤 되면 할머니의 노동을 만류하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거지요. 할머니의 그 노동에 아픔이 뒤따르지 않는 이유를 약간은 알겠습니다.
동시 ‘어떤 연필’에 나오는 ‘나’는 ‘한 시인’의 옆에서 그와 함께 원고지의 빈 칸을 채워가는 연필입니다. ‘아홉 보따리 할머니의’ 따님이 시를 쓸 때 손에 꼭 쥐고 있는 연필입니다. 연필인 나의 노동은 밤늦도록 시인의 손에 잡혀 또각또각 동시나무를 심는 일입니다. 그 일은 할머니의 아홉 보따리만큼 힘든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연필인 나는 힘들어 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네요. 오히려 ‘아홉 보따리의 할머니’처럼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입니다. 그건 그들이 하는 이 일이 힘든 노동이기보다 그걸 뛰어넘는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동시 10편 중에는 상상의 즐거움을 슬쩍 보여주는 시들도 있습니다.
그 중 한편을 소개한다면 ‘보름달’이 되겠네요.
역시 동시의 참맛은 현실에서 조금 벗어날 때인 것 같아요. 세상 근심을 훌훌 털고 읽을 수 있는 이 상상의 재미는 동시만의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딸깍, 달빛을 켜자, 깊은 산 참나무숲 둘레가 환해지고, 한밤중 토끼가 똥 누러가기도 좋겠다는 이 맑고 깨끗한 동심 때문에 동시가 꿋꿋이 살아남는 게 아닐까 해요.
유미희 시인의 꺼질 줄 모르는 동심을 기대하며, 홀가분히 파란 가을 하늘 밑 들길로 걸어 나가 봅니다. 유 시인의 시들 역시 가을처럼 잘 영글기 바랍니다.
격월간 <아동문예> 2023년 11,12월호
아래는 <아동문예> 11.12월호에 실린 유미희 시인의 동시 10편 중 언급된 작품입니다.
보름달
달은
무선 전등
누가
켜 준 걸까?
깊은 산
참나무 둘레가
환하다.
자다가
한밤중 똥 누러 가는
산토끼
하나도 안 무섭겠다.
아홉 보따리 할머니
아홉 보따리 할머니
장에 가요.
상추 쑥갓 강낭콩 파 오이 감자 옥수수 열무….
아홉 보따리
이고
지고
들고
할머니 얼굴
보따리 속에 폭 파묻혀
잘 보이지 않아요.
아홉 보따리만
휘적휘적
걷는 것 같아요.
보따리 속에 곡식들 내다 팔아
아빠랑 고모 대학 보낸
우리 할머니
오늘도
아홉 보따리 챙겨
장에 가요.
어떤 연필
난
한 시인 옆에서만 살았어.
밤늦도록
또각또각 일을 했지.
원고지 빈 밭에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동시 나무들
꾹꾹 심었어.
지금 네가 만난 동시 나무가
그 중
한 그루일 수도 있지.
버려진 달걀판
아빠가 대문 앞에
내다버린
빈 달걀판
모이 담아서
맨드라미꽃 옆에
놓자
포르르 포르르
어딘가에서 하나둘씩 날아오는
참새들
밥
먹는다.
빈 달걀판
오목한
서른 개의 밥그릇.
아름답다고 말하는 그 사이
TV 속에서
주르르
주르르
녹는 빙하 조각들이 나왔다.
쿵
쿵
바다로 떨어졌다.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엄지 척
사진을 찍었다.
들뜬 목소리로
너도 나도 외쳤다.
Beautiful….
Beautiful….
그 사이
더 고장 나고 있는
지구의 커다란 냉동고.
토끼 소동
폭풍우 치던
지난 밤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새벽부터
승채네 마당에
소동이 일어났다.
토끼집 지붕에 얹어놓은 장판조각은
대문 밖으로 쌩 나가버렸다.
지붕을 꾹 눌러주던 돌멩이도
반대편 수돗가에 가서
앉아 있다.
빈 사과궤짝 토끼집은 땅에 엎어진 채 못 일어나.
그 안에 살던
토끼도 쓰러져서 못 일어나.
엄마 몰래 당근 줄 때
줄까 말까
약 올렸던 내 친구 승채
꺼이꺼이 운다.
우는 형 보며
승채 동생 더 크게
운다.
맹꽁이 울음소리
새벽에
아빠랑 올라간
산꼭대기 제주 오름.
빗물 고인
오목한 습지에
맹꽁이 울음소리 울려 퍼진다.
맹-코오오옹 맹-코오오옹….
맹꽁이들 수백 마리
단체로
코고는 소리.
반짝,
해 뜨는데
맹코오오옹 맹코오오옹….
맹꽁이들 수백 마리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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