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올해의 좋은 동시 2023》해설

권영상 2024. 9. 23. 21:24

《올해의 좋은 동시 2023》해설

 

 

 

풍요롭고 다채로운 동시 읽기

권영상

 

 

 

《올해의 좋은 동시 2023》역시 지난해처럼 새롭고 신선하고 다채롭다.

젊은 시인들의 시일수록 더욱 그렇다. 표현의 자유로움과 다루고자 하는 세계가, 이를 테면 짧고 간결한 문장으론 다룰 수 없는 영역으로의 초대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 그것은 아마 다양한 직업군, 동시 창작자로서의 당당함, 시의 바깥에서 중심부로 진입해 들어오는 적극성과도 연관이 있겠다.

시에 집중하지 않으면 시가 말하려는 것에 가 닿기 어려운 점, 우리 동시가 깊은 통찰의 산물이 되려하기보다 가벼운 쪽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나 하는 우려 등이 초기엔 없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의 동시를 일별하면 시력이 풍부한 시인들은 나름대로 동시의 본성을 살리면서 시를 더욱 친근하고 재미있게 다루었고, 젊은 시인들 또한 그들 특유의 쾌도난마로 하여금 동시단은 한결 풍요롭고 다채로웠다.

 

선정한 동시 57편에 가장 많이 등장한 소재는 동물들로 참새, 개, 고양이, 다람쥐, 멧돼지, 뱀, 호랑이, 거미, 무당벌레, 징거미, 거미, 원숭이 등이다. 다음으론 해, 달, 별, 구름, 하늘 등의 천체와 관련된 소재가 많았고, 토마토, 씨앗, 귤, 깨, 나무, 분꽃, 작약, 씨감자 등의 식물과 생활 주변에서 만나는 떡볶이, 핀셋, 정전기, 연필, 만두, 바늘, 자동차, 기차, 양말, 포크레인, 로봇 등이다.

이 시대의 키워드를 임의로 정하여 시가 전하려는 바를 알아보았다. 빈도수가 많은 순서로 배열하면 생태계, 배려, 공감, 나눔, 약자와 강자, 화해, 불평등, 고독, 빈부격차, 경쟁 등이다. 시인들의 관심이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것에 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분명히 구분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도시 정서보다 농촌과 농촌 정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어쩌면 그쪽 정서가 생명 회복성이 더 강한 때문이 아닌가 싶다.

등장인물의 빈도수를 보면 엄마가 10회, 아빠(아버지)가 15회, 할머니 12회, 외할머니 2회, 언니 5회, 오빠 3회, 동생 1회, 아재(아저씨) 3회, 아줌마 1회, 친구 4회, 아이들 4회, 사람(인간) 6회, 어른(어르신) 5회, 외계인 2회, 하느님 8회, 교장 선생님, 행정실장님, 민서, 지유, 유관순 각 1회 등 모두 86회다.

 

이들 중 성이 분명히 가려지는 54명의 성비를 보면 남성이 31%, 여성이 59%이다. ‘올해의 좋은 동시’에 선정된 시인의 성비를 보면 남성 시인이 26명으로 46%, 여성 시인이 31명으로 54%이다. 시가 여성성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 확실히 눈에 띄며 다수의 여성 시인의 참여와 여성 시인의 증가세와도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인의 노령화와 전체 국민의 고령화가 동시에 미치는 영향을 ‘(외)할머니’(‘할아버지’는 등장하지 않음)의 빈도수로 알아보았다. 이는 전체 빈도수의 16%에 해당한다.

등장인물의 남녀 성 빈도수가 시의 성향이나 분위기를 좌우한다고 단언키는 어려우나 대체로 의미 있는 수치임은 분명하다.

올해의 동시가 보이고 있는 여러 측면을 적절한 시 한 편을 제시하고, 같은 유형의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힘없는 것들에 대한 눈길두기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체 속엔 강자와 약자, 또는 부유한 계층이나 빈자들이 존재한다. 그런 관계는 오랜 관습이나 부조리, 견고한 사회 시스템을 바탕으로 서식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구성원들에게 익숙해지기 쉽다. 작은 부조리의 관습이라면 더욱 그렇다. 힘없는 것들이 다수에 의해 소외받는 현장을 포착한 일군의 작품이 있다.

 

마을을 나와

들로 난 길을 걷네

 

누렁소 있네

살금살금 지나가네

 

아줌마 오네

비켜가네

 

굽이진 곳 풀숲에 멈춰

바람이 살랑거리는 대로

서로 살며시 몸을 대는데

 

버럭 욕하는 소리

다짜고짜 막대기를 휘두르는 사람

 

―도망갈까?

―아냐

 

―짖을까?

―그래 짖자

 

      -성명진의 「개 둘」전문

 

개는 오랫동안 마을에서 사람과 동거해온 친숙한 동물이다. 그런 개가 삶의 기반을 잃고 마을을 떠나 들로 나간다. 이들에게 들은 생존을 위협받는 바람 불고 비 맞는 공간이다. 개들은 인간의 ‘불필요성’에 의해 버림받았고, 더 이상 그런 관계에 견딜 수 없어 살던 터전에서 쫓겨나고 있다.

주인 없이 길거리를 배회하는 개들에겐 생존권이 없다. 언제 포획되거나 사살될지 모를 급박한 위기, 그리고 욕하며 막대기를 휘두르는 무자비한 힘 앞에 내몰려 있다.

도망갈까?/ 아냐// 짖을까?/ 그래.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도망치는 일이거나 기껏 짖어대는 저항뿐이다. 이들은 마지막 힘인 ‘짖음’을 선택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시 어디에도 없다. 상황에 비해 시는 너무도 고적하고 지금 암담하다.

‘짖을까? / 그래.’

아무 수식도 없는, 거의 빈사상태인 이 마지막 두 행의 발화.

여기까지 숨 막히게 이야기를 이끌고 온 성명진 시인의, 힘없는 것들에서 발견하는 눈빛이 너무도 맑다.

57편의 시들 중엔 작고 힘없는 것에 집중한 시들이 있었다. 유강희의「내가 도니까」, 문봄의 「깨」에서 그런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막연한 것에 대한 아름다움

 

 

가끔 어떤 대상과 만날 때면 ‘멋있다’, ‘아름답다’, ‘예쁘다’ 등의 미의식을 발동한다. 그러나 우리가 발현하는 미의식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추상적이다. 그런 탓에 어제까지 덤덤해 보이던 것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오늘은 막연히 아름다워질 때가 있다. 우리는 곧잘 이 막연한 아름다움에 빠진다.

 

엄마는 늘 이렇게 말해

 

넌 왜 맨날 맞고 가만히 있니?

너 바보니?

그 애가 널 때리면 너도 똑같이 때려

알았어?

 

하지만 엄마,

내가 그 애를 때리면

그 애가 아프잖아

 

     -고영민의 「친구 」 전문

 

이 시 속 ‘엄마’는 어디서 많이 본 듯 낯익은 얼굴이다.

우리 사회가 낮은 소득 시대를 거치면서 생산된 ‘주먹에는 주먹’이라는 거친 문화의 인물이다. 그 시대의 특성은 잘 났건 못 났건 사람의 능력을 어떤 표준에 맞추어놓고 똑 같이 바라보았다. 그런 까닭에 상대가 때리면 나의 능력과 상관없이 때리라고 했다. 사람도 공산품과 똑 같이 기성품으로 보아온 잔재다.

‘엄마’는 그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엄마/ 내가 그 애를 때리면 그 애가 아프잖아’

그 시대를 훌쩍 건너온 새로운 인류인 ‘나’는 다르다.

똑 같은 무게의 근육질적 힘을 가진 기성품 시대의 ‘나’가 아니다. 나만의 개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그 애를 때리면 그 애가 아파할 것이라는 막연한 고통을 염려하고 있다. 이것을 천성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우리가 이 시에 잠깐 머물러 이 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이유는 어쩌면 막연한 것, 사람의 막연한 천성에 대한 아름다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조의 방식을 통해 ‘나’의 생각을 명확히 하는 강한 인상이 있다.

내 손이 가 닿기에는 너무도 먼 것에 대한 사랑을 다룬 장철문의 「달에 간 손」도 인상 깊다. 씨앗을 심어놓고 어떤 열매가 열리게 될 지 막연하게 기다리는 방주현의 「씨앗」도 그렇다. 달님을 좋아하는 나무가 어쩌면 달님을 닮은 열매를 낳을지 모른다는 이화주의 「귤 」이라든가 가끔 자신이 북두칠성에서 왔을 것 같고, 나중에 북두칠성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최승호의 「칠성장어가 칠성무당벌레에게」또한 이 막연한 그리움이라든가 아름다움에 닿아있다고 보겠다.

 

 

힘든 세상 가볍게 만들기

 

 

우리는 언제부터 ‘사는 일’을 힘들어 했을까.

어쩌면 오쇼 라즈니쉬의 ‘지네’에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어느 날, 철학자는 지네에게 셀 수 없이 많은 발로 어떻게 서로 부딪히지 않고 다니는지, 그걸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 이후 멀쩡히 잘 다니던 지네는 가끔 제 발에 걸리곤 했다.

생각이 많아지면 사는 일이 무거워지고 때로 제 발에 걸려 넘어진다.

 

비누가 토라졌다

굳어 있다

꽉 쥔 주먹 같다

이럴 땐 얼른 비누의 기분을 풀어주어야 한다

물로 살살 달랜다

손으로 비빈다

봐! 비누가 풀리고 있다

비누의 옆구리를 살짝 간질이니

비누가 깔깔 웃는다

 

     - 송찬호의 「비누」 전문

 

화해의 방법을 아주 쉽게 가르쳐주는 시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는 이 시 속 ‘비누’와 깊은 갈등 관계에 있다. 비누가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비누는 상대에 대한 분노 때문에 ‘토라져’ 있고 마음을 열 수 없을 만큼 ‘굳어 있다’.

그는 누군지 모르지만 이 상황에서 비누의 기분을 풀어주기로 한다. 비누의 기분이 금방 풀릴 수 있는 ‘물로 살살 달랜다.’ 할 수만 있다면 자존심을 접고 두 ‘손으로 비빈다.’ 그 정도 선에서 멈출 수 없다. 그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웃음을 살려낸다.

끝내 ‘비누가 깔깔 웃는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정치는, 그리고 모든 삶 속엔 서로에게 ‘주먹을 꽉 쥐’어 보이는 적대성이 있다. 그런가 하면 아무도 나서서 이렇게 쉬운 방식으로 서로의 마음을 달랠 주려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적대성을 즐기는 이들로 가득하다. 이 시엔 그런 세상을 향한 목소리가 있다. 무겁게가 아니라 지극히 가볍게. 세상에 이보다 더 가벼운 충고는 없을 정도로.

팔꿈치가 없었다면 너는 턱을 괴고 생각할 수 없었고, 옆구리를 톡 건드려 주는 고소함을 맛볼 수 없었고, 내가 내민 귤을 받아들고 내게 웃어 보이는 네 웃음을 나는 볼 수 없었을 거라는 안도현의 「팔꿈치」도 서로의 관계를 쉬운 말로 재미있게 보여준다.

또한 토마토의 ‘떨어짐’으로 죽음이라는 어려운 의미를 쉽게 풀어가는 조인정의 「밥 먹어요」가 있고, 땅속에 묻히고 마는 씨감자의 마음을 징한 호남 사투리로 ‘인자 맘 풀고’ 즐겁게 받아들이라는 신솔원의 「씨감자」역시 세상의 무거운 의미를 좀 더 홀가분하게 덜어내는 시들이다.

 

 

우리는 신의 본성으로 살지

 

 

여우가 있다. 그는 삶의 터전을 빼앗아간 사람들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교묘한 수법으로 닭을 훔쳐가고, 교묘한 수법으로 포도를 따먹는다. 인간들은 오랫동안 이런 여우를 향해 ‘여우같다’, ‘여우같이 교활하다’ 며 조롱하거나 비난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한 우리의 무지 때문이다.

 

진짜야

아무도 말하지 않아서 다들 모르는 것처럼 살지만

사실 하느님은

참새 속에 들어가 참새처럼 살 때가 있어

함박눈이 펑펑 세상을 덮어

며칠 동안 찾고 또 찾아도 강아지풀 씨조차 보이지 않을 때

하느님은 얼른 참새 옷으로 갈아입고는

쫄쫄 굶은 참새 무리를 이끌고 닭장 속으로 들어가

닭 사료를 훔쳐 먹는단다

방금 전에도 하느님은

수십 마리 참새들이랑 사료 통을 털다가

내 손에 붙잡혀 나왔어

하느님은 언제나 이런 식이야

나를 부지런히도 아끼신다니까

 

     -이안의 참새」 전반부

 

이 시는 인간과 동물과 신이 아무 구별 없이 어우러져 사는 동심의 뜰로 우리를 안내한다.

시가 워낙 친절해 읽는데 아무 저항감이 없다.

우리가 몰라 그렇지 하느님은 참새들이 배고파하는 걸 볼 때면 그걸 못 참아 참새 무리를 이끌고 닭장 속으로 들어가 닭들의 사료를 훔쳐 먹는다. 때로는 사료 통을 털다가 주인에게 붙잡혀 나오기도 한다.

이 시에 등장하는 하느님은 누구인가. 참새 몸속에 깃들어 있는 참새의 본성이다. 참새는 처음부터 그렇게 받아 나온 본성으로 세상을 산다. 그렇기에 그들이 배고파 닭들의 먹이를 훔쳐 먹는 일은 예쁘다. 사랑스럽다. 아니 당연하다.

동심이 살고 있는 ‘동시의 뜰’엔 신이 주신 본성으로 살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의 피부엔 모두 신의 푸른 입김이 묻어있다.

언어가 생겨나기 이전의 일을 들려주듯 쉽고도 귀에 쏙쏙 든다.

생명의 본성을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이만교의 「꼬마 뱀을 조심해」, 임복순의「언제 와 」, 장동이의「걱정이다」등에서 생명의 소박한 본성을 엿볼 수 있다.

 

《올해의 좋은 동시 2023》 속에는 57분의 저마다 다른 빛깔과 무늬의 시들이 담겨 있다. 이 시들을 단 몇 개의 낱말과 문장으로 퉁쳐서 말하는 것도 어렵지만 몇 개의 경향으로 나누거나 묶는 일 또한 위험해서 조심스러웠다.

그런 중에도 인용하거나 열거하지 못한 시들이 많다. 문신의 「무지무지 긴 뱀의 겨울잠」 같은 사물의 속성을 상상해 가는 시들, 홍일표의 「모과 이야기」와 같은 자연의 순간적 현상을 포착하여 사유하는 시들, 곽해룡의 「천국에 오신 할머니」와 같은 대상을 유머 있게 희화화하는 일군의 시작도 올해의 동시단을 빛내기에 충분한 시들이었다.

여느 해와 다름없이 풍성한, 올해의 동시들을 읽으며 활짝 열려나는 동시의 지평을 내다본다.

 

<올해의 좋은동시 2023 해설> 상상출판사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