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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연 동시집 <개미야 미안해> 해설

울새들아, 안녕! (권영상, 시인, 전 한국동시문학회 회장) 아침에 함박눈이 내렸어요. 그때 나는 눈으로 울새 두 마리를 만들어 배롱나무 가지에 올려놓았지요. 예쁘게 노래하렴! 그러고 점심 무렵에 나가 보니 울새가 사라지고 없었죠. 아니, 그 사이에? 날아갔다면 어디로 날아갔을까? 내가 생각나면 혹시 연락쯤 해주지 않을까? 막 그러고 있는데 방안에서 휴대폰 수신음이 들렸지요. 옳지. 울새들이구나! 하며 달려가 휴대폰을 집어들었지요. 여보세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저쪽 울새 목소리를 기다렸지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제주도 사는 오지연입니다. 울새가 아니고 울새처럼 예쁜 목소리를 가진 오지연 시인이었습니다. 나는 오지연 시인을 아주 잘 알지요. 아주 재미있게 시를 쓰시는 흥미로운 시인이지요. 제주가 ..

문학비평 2024.04.07

설해목

설해목 권영상 산속 샘터에서 10분 남짓 걸어 들어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그 갈림길에 이르기 바로 전이다. 버팀목에 의지한 채 산비탈에 서 있는 소나무를 바라본다. 15년생쯤 되는 나무다.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다. 내가 말하는 ‘아무 이상’이란 소나무가 시든다거나 살 가망이 없음을 뜻한다. 그 엄혹한 날로부터 벌써 달포가 지났다. 지금도 그때 일이 잊히지 않는다. 지난 2월 22일다. 그날 서울엔 폭설이 내렸다. 폭설 전부터 오랜 시간 찬비가 내렸고, 비는 다시 진눈깨비로 바뀌었다. 밤이 되면서 진눈깨비는 다시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자고 일어나 창문을 열면서 나를 탄성을 질렀다. “세상이 설국으로 변했구나!” 간단한 요기를 마치고 산에 올랐다. 산 역시 어마어마한 눈에 묻혀 있었다. 진눈깨비 끝에 내린..

봄밤, 산장의 여인

봄밤, 산장의 여인 권영상 “아무도 날 찾는 이 어없는.” 우리가 앉은 탁자 건너 건너편 여자분이 ‘산장의 여인’을 또 부른다. 부르긴 하지만 한 소절, 그쯤에서 노래를 그친다. 그리고는 음식점에서 노래 부르는 게 미안했던지 우리를 바라보며 “손님, 미안합니데이.” 한다. 반쯤 술에 취한 목소리다. 합석한 여자분이 언니, 올해 몇인데 손님 있는 음식점에서 노래 불러? 하며 농을 한다. “내가 몇 번 말해줘야 아냐? 이 언니가 소띠라구! 소띠!” 두 분은 우리가 이 음식점에 들어오기 전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동해안 사천에 일이 있어 내려왔다가 1박을 할 생각으로 여기 속초까지 왔다. 밤 8시 30분. 물치항 생선회 센터를 찾아가다가 혹시 싶어 이 불켜진 매운탕 음식점 안을 들여다봤다. 손님..

나를 만나러 가는 길

나를 만나러 가는 길 권영상 가끔, 또는 종종 동네 산에 오른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집을 떠나 온전히 홀로 있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가 늘 오르는 산은 말이 동네 산이지 큰 산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다 지니고 있다. 절벽이 있고, 골짝이 있고, 비 내리면 작지만 폭포가 생겨나고, 너무 으슥해 약간의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곳도 있다. 물론 하늘을 가리는 나무숲이 있고 가끔 고라니도 만난다. 그중에서도 으슥한 숲으로 길게 난 평탄한 오솔길이 좋다. 그곳에 들어설 때마다 떠오르는 곳이 있다. 수렴동 계곡을 따라가는 긴 산길이다. 수렴동 계곡은 백담사에서 봉정암으로 가는 계곡이다. 거기도 처음엔 울창한 숲속을 향하여 난 길고 평탄한 오솔길이 있다. 그..

오리나무가 붉게 꽃 피다

오리나무가 붉게 꽃 피다 권영상 남부순환로 앞에 서면 내 눈이 건너편 산으로 간다. 신호를 기다리며 먼데 산을 바라보는 일은 좋다. 특히 이맘쯤 북향의 산비탈은 더욱 좋다. 거기엔 남향보다 북향을 좋아하는 나무숲이 있기 때문이다. 생강나무, 진달래, 귀룽나무, 오리나무 등이 그들이다. 이들 나무는 대개의 나무들과 달리 남향을 꺼린다. 남향엔 무제한으로 받을 수 있는 햇빛이 있지만 햇빛 때문에 수분이 머무는 시간이 짧은 게 문제다. 그런 탓에 이들 나무는 햇빛보다는 물기를 머금고 있는 서늘한 북향을 가려 산다. 요사이 산을 바라보면 산빛이 붉다. 정확히 말하면 자주에 가까운 붉은빛이다. 오리나무가 개화하기 때문이다. 오리나무도 꽃 피냐 하겠지만 오리나무도 꽃 핀다. 말은 쉽게 하지만 나도 오리나무꽃은 보지..

봄을 준비하다

봄을 준비하다 권영상 시시각각 봄이 다가오고 있다. 봄을 맞기 위해 뜰안 낙엽을 갈퀴로 그러모은다. 낙엽 더미 속에도 봄은 바쁘다. 작약 새순들이 뾰족뾰족 돋아난다. 동네 어르신들 말로 함박꽃이라고 부르는 이 작약은 꽃 피는 6월을 위해 벌써 잠에서 깨어났다. 발긋발긋한 새순에 물이 올라 통통하다. 수선화가 불현 떠오른다. 봄 한철 잠깐 피고 사라지는 수선화는 자칫 꽃 핀 자리를 잊기 쉽다. 그런 탓에 함부로 밟다가 새 움을 부러뜨린다. 생각난 김에 갈퀴를 들고 찾아갔는데 그들은 나보다 한 걸음 빨랐다. 꽃망울을 물고 부리부리하게 나와 있다. 겨울이 떠난 자리에서 노란 주름 꽃을 피우며 봄을 즐기는 꽃이 수선화다. 그들은 텁텁한 봄 기운을 싫어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새파란 냉기를 좋아한다. 가만두어도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