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916

피아노를 듣는 밤

피아노를 듣는 밤권영상   창밖에 쪼매만한 상현달이 떴다. 테두리 흔적만 남은 명주실 같이 가는 달이다. 시계를 보니 9시 무렵.나는 어린 상현달에 끌려 다락방에 올라가 창을 열었다.집이 동향이니 달이 보일 리 없다. 대신 건너편 산으로 부는 컴컴한 참나무 숲 바람 소리가가득 밀려온다. 숲 바람은 피아노 연주곡처럼 한 차례 소란스럽게 다가와서는 다시 잠잠해지고, 잠잠해지다가 다시 소란을 떤다.나는 휴대폰에서 쇼팽의 녹턴을 꺼냈다.참나무 초록물이 잔뜩 든 밤바람 소리를 배경으로 피아노 소곡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시작 버튼을 누르고 어두컴컴한 숲을 바라본다.음악을 열면 음악에 빠지기보다 오히려 긴 상념에 빠진다. 나이를 먹어 더욱 생각이 많다. 나의 상념은 음악을 겉돌게 한다. 구성이 복잡할수록 더 ..

생각이 싫은 날

생각이 싫은 날권영상  생각하기 싫은 날이 있다.그 동안 복잡한 생각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글 쓴답시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생을 진절머리가 날 만큼 생각에 끄달리며 살다. 오늘은 안성집 데크에 페인트칠을 해야 하고, 토마토며 고추 모종을 해야 한다. 나는 동네 페인트 가게에 들러 목재 보호용 오일 스테인 4리터짜리 두 통을 주문했다. 주인은 내가 주문한 페인트 통의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잘 섞은 뒤 다시 뚜껑을 덮어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걸 차에 싣고 안성을 향했다. 1시간을 달려 백암 장터 근방에 차를 세우고 모종을 샀다. 토마토와 고추, 가지, 오이 등속을 종이상자에 넣어주는 대로 들고 와 차에 실었다. 그리고 상자 위에 신문지를 덮고 마트에서 산 양배추 한 덩이를 얹었다.점심을 해결하고 가기 ..

설해목

설해목 권영상 산속 샘터에서 10분 남짓 걸어 들어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그 갈림길에 이르기 바로 전이다. 버팀목에 의지한 채 산비탈에 서 있는 소나무를 바라본다. 15년생쯤 되는 나무다.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다. 내가 말하는 ‘아무 이상’이란 소나무가 시든다거나 살 가망이 없음을 뜻한다. 그 엄혹한 날로부터 벌써 달포가 지났다. 지금도 그때 일이 잊히지 않는다. 지난 2월 22일다. 그날 서울엔 폭설이 내렸다. 폭설 전부터 오랜 시간 찬비가 내렸고, 비는 다시 진눈깨비로 바뀌었다. 밤이 되면서 진눈깨비는 다시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자고 일어나 창문을 열면서 나를 탄성을 질렀다. “세상이 설국으로 변했구나!” 간단한 요기를 마치고 산에 올랐다. 산 역시 어마어마한 눈에 묻혀 있었다. 진눈깨비 끝에 내린..

봄밤, 산장의 여인

봄밤, 산장의 여인 권영상 “아무도 날 찾는 이 어없는.” 우리가 앉은 탁자 건너 건너편 여자분이 ‘산장의 여인’을 또 부른다. 부르긴 하지만 한 소절, 그쯤에서 노래를 그친다. 그리고는 음식점에서 노래 부르는 게 미안했던지 우리를 바라보며 “손님, 미안합니데이.” 한다. 반쯤 술에 취한 목소리다. 합석한 여자분이 언니, 올해 몇인데 손님 있는 음식점에서 노래 불러? 하며 농을 한다. “내가 몇 번 말해줘야 아냐? 이 언니가 소띠라구! 소띠!” 두 분은 우리가 이 음식점에 들어오기 전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동해안 사천에 일이 있어 내려왔다가 1박을 할 생각으로 여기 속초까지 왔다. 밤 8시 30분. 물치항 생선회 센터를 찾아가다가 혹시 싶어 이 불켜진 매운탕 음식점 안을 들여다봤다. 손님..

나를 만나러 가는 길

나를 만나러 가는 길 권영상 가끔, 또는 종종 동네 산에 오른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집을 떠나 온전히 홀로 있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가 늘 오르는 산은 말이 동네 산이지 큰 산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다 지니고 있다. 절벽이 있고, 골짝이 있고, 비 내리면 작지만 폭포가 생겨나고, 너무 으슥해 약간의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곳도 있다. 물론 하늘을 가리는 나무숲이 있고 가끔 고라니도 만난다. 그중에서도 으슥한 숲으로 길게 난 평탄한 오솔길이 좋다. 그곳에 들어설 때마다 떠오르는 곳이 있다. 수렴동 계곡을 따라가는 긴 산길이다. 수렴동 계곡은 백담사에서 봉정암으로 가는 계곡이다. 거기도 처음엔 울창한 숲속을 향하여 난 길고 평탄한 오솔길이 있다. 그..

오리나무가 붉게 꽃 피다

오리나무가 붉게 꽃 피다 권영상 남부순환로 앞에 서면 내 눈이 건너편 산으로 간다. 신호를 기다리며 먼데 산을 바라보는 일은 좋다. 특히 이맘쯤 북향의 산비탈은 더욱 좋다. 거기엔 남향보다 북향을 좋아하는 나무숲이 있기 때문이다. 생강나무, 진달래, 귀룽나무, 오리나무 등이 그들이다. 이들 나무는 대개의 나무들과 달리 남향을 꺼린다. 남향엔 무제한으로 받을 수 있는 햇빛이 있지만 햇빛 때문에 수분이 머무는 시간이 짧은 게 문제다. 그런 탓에 이들 나무는 햇빛보다는 물기를 머금고 있는 서늘한 북향을 가려 산다. 요사이 산을 바라보면 산빛이 붉다. 정확히 말하면 자주에 가까운 붉은빛이다. 오리나무가 개화하기 때문이다. 오리나무도 꽃 피냐 하겠지만 오리나무도 꽃 핀다. 말은 쉽게 하지만 나도 오리나무꽃은 보지..

봄을 준비하다

봄을 준비하다 권영상 시시각각 봄이 다가오고 있다. 봄을 맞기 위해 뜰안 낙엽을 갈퀴로 그러모은다. 낙엽 더미 속에도 봄은 바쁘다. 작약 새순들이 뾰족뾰족 돋아난다. 동네 어르신들 말로 함박꽃이라고 부르는 이 작약은 꽃 피는 6월을 위해 벌써 잠에서 깨어났다. 발긋발긋한 새순에 물이 올라 통통하다. 수선화가 불현 떠오른다. 봄 한철 잠깐 피고 사라지는 수선화는 자칫 꽃 핀 자리를 잊기 쉽다. 그런 탓에 함부로 밟다가 새 움을 부러뜨린다. 생각난 김에 갈퀴를 들고 찾아갔는데 그들은 나보다 한 걸음 빨랐다. 꽃망울을 물고 부리부리하게 나와 있다. 겨울이 떠난 자리에서 노란 주름 꽃을 피우며 봄을 즐기는 꽃이 수선화다. 그들은 텁텁한 봄 기운을 싫어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새파란 냉기를 좋아한다. 가만두어도 개..

안경이 사라졌다

안경이 사라졌다 권영상 안성에 내려가 며칠 머물다 올 걸 생각하고 가방을 쌌다. 책을 골라 넣고, 아내가 만들어준 반찬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려고 보니 안경이 없다. 가방을 내려놓고 입었던 옷을 뒤져보고, 책상 주변을 살피고, 혹시나 싶어 휴지통도 들여다봤지만 없다. 차에 두고 내렸나 싶어 차 안을 살폈지만 차에도 없다. 나중에 다시 살펴볼 테니까 어여 가라는 아내의 말에 차를 몰고 아파트를 나섰다. 참 이상한 일이다. 어제 오후까지 분명히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날 오후, 고장 난 블랙박스를 교체하기 위해 블랙박스 가게 주인이 왔었다. 나 말고도 아파트 주민 중에 블랙박스를 교체하는 분들이 있어 직접 아파트로 오겠다고 했다. 블랙박스 사용법을 자세히 알아보려고 안경을 쓰고 마당에 내려갔었다. 햇볕이 봄..

물려받는 옷

물려받는 옷 권영상 처형이 왔다. 이사 가기 전에 옷 정리부터 한다며 아내에게 물려줄 옷 한 가방을 들고 왔다. 그 옷을 넘겨주고 넘겨 받느라 지금 안방이 떠들썩하다. 언니 옷을 받아 입는 것이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나는 타인의 옷을 물려받거나 물려준 경험이 없다. 손위로 누님이 세 분이다 보니 물려받을 옷이 없었고, 내 체격이 우리나라 표준 체격이 아니다 보니 누가 옷을 물려준다 해도 내 몸에 맞을 리 없었다. 장갑이며 신발도 표준 크기로는 어림없었다. 기성품 옷 가게나 기성품 신발 가게는 나와는 너무 멀었다. 지금도 운동화 하나 구하려면 온 식구가 총 동원된다. 오프라인 신발 매장에서부터 온라인 매장까지 불을 켜고 뒤진다. 몇 번의 주문과 몇 번의 반품이 되풀이 되어야 간신히 ..

빛바랜 사진 액자

빛바랜 사진 액자 권영상 너무 성급한가? 왠지 봄 느낌이다. 순간 청계산 매봉이 떠올랐다. 나는 집을 나섰다. 양재역 근처에서 안양행 버스를 타고 인덕원에서 내렸다. 거기서 다시 청계사로 가는 택시를 탔다. 청계사에서 원터골로 가는 코스를 몇 번 산행해 본 경험이 있다. 청계사 주차장에서 내려 매봉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 올랐다. 이미 산도 봄 느낌이다. 생강나무 꽃눈이 노랗다. 길옆에 쌓인 가랑잎을 들추니 봄이 파랗게 숨어있다. 오랜만에 왔지만 산은 그대로다. 그때 그 바위를 타고 오르던, 척박한 바위 사이로 뿌리내리며 살던 그 다복솔 숲을 지나 매봉에 올랐다. 멀리 뿌연 하늘을 바라보려니 문득 고향이 아득하다. 아직 정초라 그런가. 고향이 떠오르고, 이제는 계시지 않는 부모님이 떠오른다. 나는 매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