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까치집 컴퓨터와 까치집 권 영 상 운동장 곁, 커다란 은행나무 우듬지에 까치집이 있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 내다보면 괜히 시골 정취를 느낀다. 그깟 까치집 하나에 뭐 정취까지 들먹이냐 하겠지만 도심에서 까치와 까치집을 본다는 건 반갑다. 고향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 건너편엔 미루나무 ..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1
수묵화 속을 호젓이 걸어가는 사람 수묵화 속을 호젓이 걸어가는 사람 권 영 상 창을 여니 펑펑 눈이 내린다. 잘 마시지 않는 커피가 이럴 때면 생각난다. 촌스러운 아이처럼 커피 한잔을 타 들고 창밖의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본다. 일 년씩 사는 중에 이런 호사를 누리는 일이 몇 번인가. 그러나 그 호사스런 여유도 그저 잠..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1
배부른 영혼이 부끄러울 때 배부른 영혼이 부끄러울 때 권 영 상 뒤뜰에 화분 하나가 버려져 있었다. 그 마른 화분엔 목숨을 잃은 여린 나무 한줄기가 비틀려 있었다. 언젠가 서아시아의 어느 고성에서 본 부켄베리아였다. 죽은 줄 알았는데 가지 끝엔 오래된 추억처럼 작은 숨결 하나가 간신히 머물러 있었다. 왠지 ..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1
힘든 것도 다 한 때여 힘든 것도 다 한 때여 권 영 상 토요일 오후엔 김장밭에 가야한다. 배추를 묶어줄 때다. 비록 풀씨 한 톨만한 밭이지만 거기에 배추 서른한 포기와 무 마흔 여섯 개가 건장하게 자라고 있다. 올핸 뭐든지 풍년이란다. 풍년인 탓에 우리 밭의 무 배추도 튼실하다. “오늘 배추 묶어주는 거 잊..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1
어머니의 떨리던 손 어머니의 떨리던 손 권 영 상 고향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의 구순 생신이 가까워 오던 어느 날이다. 고향 어머니를 찾아 뵙고 다음 날 작별을 할 때였다. 나는 노쇠하신 어머니와 집 대문 밖에서 작별을 했다. 몸이 불편하신지라 그만큼 걸어나오시는 것만도 어머니에게는 큰일이었다...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1
나는 골목길 걷는 게 좋다 나는 골목길 걷는 게 좋다 권 영 상 집으로 돌아갈 때는 언제나 좁은 골목길을 택한다. 버스길도 있지만 특별하지 않으면 골목길을 후적후적 걸어간다. 학교가 산언덕에 있으므로 골목은 내리막길이며 또한 좁다. 좁기 때문에 양쪽으로 늘어선 집들의 담장은 나트막하다. 고개를 빼지 않..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1
옆반에 점필이가 있다 옆반에 점필이가 있다 권 영 상 옆반에 점필이가 있다. 다른 애들보다 왜소하다. 턱이 좀 빠졌고, 눈이 퀭하다. 수업을 시작했는데도 점필이는 공부에 관심이 없다. “점필이는 학교 왜 왔지?” 내 말에 연필 끝을 이빨로 물어뜯던 점필이가 대답한다. “밥 먹으러요.”그 반에 수업이 있어..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1
추석과 가을 운동회 추석과 가을 운동회 권 영 상 추석을 한 주일 앞두고 고향에 내려갔다. 내려간 김에 늘 가보고 싶던 초등학교에 들렀다. 거기엔 넓은 운동장이 그대로 있고, 흰색 벽의 교실이, 교실 앞 화단의 다알리아가, 높다란 국기봉엔 그 옛날처럼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운동장 한켠엔 ..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1
아내의 프라이드 90 아내의 프라이드 90 권 영 상 아내는 운전석의 문을 열지 못해 조수석으로 타넘어 차에서 내렸다. 문을 여닫는 잠금 꼭지가 헐거워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차 좀 바꾸시지?” 내 말에 아내는 20년을 채우고 바꿀 거란다. 벌써 오래전부터 들어온 말이다. 차를 산지 8년쯤 될 때 이제 좀..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1
부끄러움 한 덩이 부끄러움 한 덩이 권 영 상 “얼라리여어! 또 한 단을 베었다!” 아버지는 들에서 일을 하실 때면 가끔 '소리'를 하셨다. 그 넓은 들에서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는 고요한 가을 들판으로 날아갔다. 부끄러움을 한창 탈 나이에, 그것도 아버지와 단둘이 있는 논벌에서 아버지의 소리를 듣는 ..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