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의 나이 관용의 나이 권 영 상 청계산을 오르다 골짝물 곁에 잠시 쉬었다. 우기의 산속이라 습도탓인지 가슴이 답답했다. 무거운 다리를 막 뻗으려는데 누군가 윗 능선길에서 “야호!” 하고 외친다. 40대쯤의 여자 목소리다. 요사이는 야호!를 외치면 산에 몸을 대고 사는 것들이 놀란다며 막고 ..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0
나는 때로 행복하다 나는 때로 행복하다 권 영 상 가을이 끝나갈 무렵에 애완 토끼 한 마리를 분양 받았다. 내가 아니라 어린 딸애가 그래왔다. 저의 엄마와 앵무새를 사러가겠다고 나가더니 한 옹큼만한 애완 토끼를 뜻밖에 안고 돌아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딸아이와 나는 토끼 이름을 난나로 지어주었다...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0
엄마, 찬장 속 고구마 먹어도 돼요? 엄마, 찬장 속 고구마 먹어도 돼요? 권 영 상 나는 복이 많아서인지 근무하는 직장이 조촐한 산 언덕에 있다. 산 언덕엔 오밀조밀 작은 집들이 들풀처럼 겹겹이 자리하고 있다. 그 겹겹이 싸인 집들 사이로 골목길은 또 헝클어진 핏줄처럼 숨어있다. 그 골목길이 좋아 나는 한길을 두고도 ..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0
후배가 흘린 눈물 후배가 흘린 눈물 권 영 상 동지를 하루 앞둔 날, 후배한테서 저녁을 먹자는 전화가 왔다. 다급한 사정이 있나보다 해 그러마,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후배는 글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북방계 외모에 보기좋게 기른 구렛나룻과 알맞은 턱수염, 그리고..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0
자, 이쪽에 서라 자, 이쪽에 서라 권영상 “애 데리러 나가봐요.” 연신 비 오는 창밖을 내다보던 아내가 나를 조른다. 밤이 늦다. 11시다. “어른도 이 밤에 혼자 다니기 무서운데...” 비스듬히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나를 아내가 은근히 또 재촉이다. 방학 중이어도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애는 늘 ..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0
딸을 가진 세상의 모든 아버지 딸을 가진 세상의 모든 아버지 권 영 상 간혹 키 큰 여학생을 보면 딸아이를 떠올린다. 우리 나래도 지금보다 한 2센티만 더 컸으면 하고. 코가 오똑하고 반듯한 여자애를 보면 역시 우리 나래의 코가 생각난다. 나래는 나를 닮아 코가 크고 뭉툭한 편이다. 뭉툭한 코가 따뜻한 인간미를 느..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0
오늘따라 못내 그리운 그날의 교실 오늘따라 못내 그리운 그날의 교실 권 영 상 소식도 없이 비가 내렸다. 가을날의 비 내리는 저녁 시간이 금방 진한 갈색 나무빛 어둠으로 변한다. 도서관을 나섰다. 우산도 없이 빗길을 내려서려니 괜히 망설여진다. 그러나 괜히 망설일 뿐이지 나로서는 더 다른 선택이 없었다. 비를 맞으..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0
어머니가 주고 가신 먹과 벼루 어머니가 주고 가신 먹과 벼루 권 영 상 어머니께서는 절 보고 그러셨지요? 미안하다고. 부모가 자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제가 그런 말을 부모의 입을 통해 들어도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어떻든 그날, 어머니가 제게 그런 말씀을 한 연유는 알고 있답니..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0
대숲집 옥자 대숲집 옥자 권 영 상 우편물을 부치러 우체국에 들렀다가 그 길로 이천행 버스를 탔다. 16년 전, 이천에서도 버스로 꽤나 들어가는 시골학교에 나는 잠시 머무른 적이 있었다. 그 곳이 가끔은 자꾸 그리웠다. 그러나 찾아간 시골마을은 내 기억 속의 마을이 아니었다. 아파트도 들어섰고, ..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0
그간에 에미가 사묻 부끄러웟다 그간에 에미가 사묻 부끄러웟다 권 영 상 말하자면 나는 소년기와 청년기를 매우 힘들게 보냈다. 그게 꼭 어머니 탓이라고 할 수야 없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 시절을 어머니의 손길 밖에서 컸다. 이런 저런 이유로 어머니는 내가 중학 2학년 무렵부터 무려 7년간을 병원 생활을 하셨다. ..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2.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