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후배가 흘린 눈물

권영상 2012. 6. 20. 14:51

 

후배가 흘린 눈물

                                    권 영 상

 

 

 

 

 

 

 

지를 하루 앞둔 날, 후배한테서 저녁을 먹자는 전화가 왔다.

다급한 사정이 있나보다 해 그러마,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후배는 글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북방계 외모에 보기좋게 기른 구렛나룻과 알맞은 턱수염, 그리고 운동선수처럼 딱 짜여진 골격과 건장한 키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열등감을 느끼게 할 정도다.

 

그런 후배는 외모에 걸맞게 모 그룹을 들락였다.

약속 시간에 맞추어 나가면서 나는 후배가 혹시 해고의 위기를 겪는 게 아닌가 그런 엉뚱한 생각을 했다. 40대 초반의 나이라면 그런 시련의 차례가 올 듯도 싶었다.

 

약속 장소인 음식점에 후배는 나보다 먼저 나와 있었다.

자리를 잡고 한참을 앉았는데도 후배는 좀해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 짐작이 맞는 것 같아 조기 해고의 문제점을 성토하며 그를 위로했다.

“선배님, 저, 본래 직장 없어요.”

후배가 내 말에 놀란 듯 입을 열었다.

 

“홍보실에 다녔잖아?”

“잠깐 도와줬을 뿐이지 직장 생활은 엄두를 못 내요.”

후배는 결혼 초부터 직장이 있는 아내에게 자신은 집안일을 맡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뜻밖의 후배의 말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후배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아침엔 아내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밥을 하고, 아내가 입을 옷을 챙겨주고, 아내의 구두를 닦아 내놓는단다. 아내를 출근시키고 나면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시작한단다. 빨래도 무색옷 따로, 무색이 아닌 옷 따로, 양말과 발닦개 따로 이렇게 빨자니 너무 힘들다고. 그게 끝나면 깨어난 애기 돌보고, 점심 먹고 나면 저녁준비 하러 슈퍼에 가 아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준비하고..... 쉴 틈이 없단다.

 

“직장을 구해 나가잖구.”

나는 후배가 그렇게 사는 줄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아니에요. 집안일이 제 적성에 맞긴 해요. 우울증이 좀 있어서 그렇지.”

“근데 오늘 왜 부른 거야?”

나는 그게 궁금했다.

 

“저, 말이에요.”

후배는 운을 떼어놓고 망설였다.

“저, 저의 집에 말이지요. 서울 본사에 출장 온 처남이 와 있어요.”

처남이? 나는 그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그 처남이 후배가 차려준 반찬을 안 먹는다는 거다. 후배로선 처남의 입맛을 생각해 정성껏 반찬과 국을 만드는데 처남은 덮어놓은 반찬을 열지도 않고 나간다는 거다. 그래서 요즘은 우울증이 심해졌단다.

 

우울증은 몰라도 듣고 보니 괴로울만은 했다.

“제 아내를 통해 왜 반찬을 안 먹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냥, 이라 하더래요. 그러니 제가 괴롭지 않겠어요? 선배님, 그 ‘그냥’이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구렛나룻이 강건해 보이는 후배가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나는 거기에 대해 아무 대답도 해 주지 못했다.

“요 며칠 애기 돌보느라 바빠 요리책을 못 봤어요. 그랬더니 이렇게 애를 먹네요.”

그런 말을 하는 후배가 가엾기도 하고, 남자가 집안일을 자임해 왜 이렇게 궁상을 떨고 있냐, 하는 분개감도 일었다.

 

그것 외에도 후배는 고향에 계신 홀아버지를 모셔오고 싶다며 내 의견을 묻기도 했고, 아내가 다른 남자에 관심을 갖게 되면 어떡해야 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런 저런 이야기로 시간은 꽤나 흘렀다.

시간을 보던 후배가 일어날 듯 꿈실했다.

 

“애를 씻겨 잠재워야할 시간이에요.”

“이 시간이면 집사람이 와 있을 거 아냐?”

내 말에 후배는 손사래를 쳤다.

“그런 거 그 사람한테 못 맡겨요. 깔금하게 못 해서.”

일어나던 후배가 내게 중요한 정보라며 나즉한 목소리로 물었다.

“선배님, 내일이 동지라 그러는데 팥죽에 넣을 옹심이 말이에요. 그거 풀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글쎄에......”

나는 좀은 당황했다.

 

“찹쌀가루에 밀가루를 좀 섞으면 돼요. 사모님한테 일러드리세요.”

그 말을 마치고 후배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음식점을 나왔다.

후배는 바쁜 시간 내줘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부랴부랴 떠나갔다.

 

 

나는 그를 보내고 한참이나 그가 간 곳을 바라보다 돌아섰다.

“그냥이라니?”

나는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후배의 말을 다시 떠올리며 그 뜻을 생각해 봤다. 왜 후배의 처남은 그때 ‘그냥’이라는 대답을 내놓았을까.

 

권영상 산문집 <뒤에 서는 기쁨>(좋은생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