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가진 세상의 모든 아버지
권 영 상
우리 나래도 지금보다 한 2센티만 더 컸으면 하고. 코가 오똑하고 반듯한 여자애를 보면 역시 우리 나래의 코가 생각난다.
나래는 나를 닮아 코가 크고 뭉툭한 편이다. 뭉툭한 코가 따뜻한 인간미를 느끼게 해준다고 가끔 일러준다. 그러나 마음으론 오똑한 코를 가진 딸로 낳아주지 못한 걸 늘 미안하게 생각한다.
모임에서 세련되게 멋을 내어 옷을 입은 여류 글쟁이를 가끔 만난다. 우아하게 멋을 낸 이들을 보면 우선 내 기분이 좋다.
그날 하루가 보람이 있고, 행복하다. 그럴 때마다 우리 나래도 커서 한껏 멋을 낼 줄 알기를 바란다. 아이에게는 분수에 맞게, 또는 옷 한벌이라도 겸손하게 입혀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적지 않다.
그러면서도 속으론 우아하고 멋있게 옷을 차려 입을 줄 알기를 바란다. 실생활에 맞지 않아 좀 불편하더라도 그런 옷 한 벌쯤은 꼭 사주고 싶다.
나래는 노래 부르기를 잘 한다.
언젠가 등산을 하면서 노래 한곡을 신청한 적이 있다.
그때가 나이로 열여섯이었는데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노래 한 곡을 열창해준 적이 있다.
나래는 시튼 동물기를 즐겨 읽곤했다. 나는 그걸 보고, 커서 동물학자가 되거나 동물애호가가 되기를 바랐으며, 덧셈을 잘 하는 걸 보았을 때는 나중에 수학자가 되려나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다. 떨어진 옷단추를 다는 걸 보고는 의상디자이너가 되려나 했고, 초급영어 읽는 걸 보고는 국제사회에 나가 커다란 인물이 되려나 했다.
나래는 운동하기를 좋아한다.
1킬로미터 달리기를 좋아한다. 제 인생을 활기차고 행복하게 가꾸는데는 건강만한 게 없다. 나래의 미래가 그럴 것 같아 나는 좋다.
나래가 예의바른 딸로 성장하길 나는 바란다.
그러면서도 햇살 한톨이니, 밀짚모자니 호밀밭 같은 말을 사랑하면 더욱 좋겠다. 빨간 뺨도 좋은 말이지만 파란 무순도 좋은 말이다. 솔밭길, 휘파람새, 얼레빗, 달팽이, 종려나무, 클라리넷, 개똥지빠귀 같은 말도 좋다. 뜰방이니 콩자반이니 하는 말들을 사랑하며 산다면 더욱 좋겠다.
노는 토요일 같이 한가한 때면 공원을 걷거나 여행을 하면 좋겠다.
멋진 남우 브래드피드가 나오는 ‘흐르는 강물처럼’이나 주윤발 주연의 ‘와호장룡’같은 영화를 좋아하면 더욱 좋겠다. 비록 딸아이지만 세상에 나가 자신있게 살려면 은은한 남성의 아름다움도 알아야 할테니까.
오늘도 플라타나스 길을 따라 퇴근을 하며 딸아이가 멋있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건 나만의 욕심일까. 딸을 가진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다 그렇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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