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관용의 나이

권영상 2012. 6. 20. 15:06

 

 

 

관용의 나이

                권 영 상

 

 

청계산을 오르다 골짝물 곁에 잠시 쉬었다.

 

우기의 산속이라 습도탓인지 가슴이 답답했다.

 

무거운 다리를 막 뻗으려는데 누군가 윗 능선길에서 “야호!” 하고 외친다.

 

40대쯤의 여자 목소리다.

 

요사이는 야호!를 외치면 산에 몸을 대고 사는 것들이 놀란다며 막고 있다.

 

이 말이 맞는지 아니면 사람 편의주의로 생각하는 놀음인지… 어쨌든 별안간에 내지르는 외침이 듣기 좋은 건 아니다.

 

근데 그 목소리가 오늘은 좀 다른 느낌으로 내 마음에 닿았다.

 

산을 정복했다는 정복감으로 내지르는 소리는 분명 아니었다.

 

뭔가 가슴에 응어리진 울분을 풀어내는 것처럼 들렸다.

 

산이 아니면 맺힌 것을 풀어낼 마땅한 곳 조차 없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나는 흘러가는 물빛을 바라보며 또 한번 그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어쩌면 그 목소리의 임자는 산을 오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누구도 받아주지 않는 맺힘을 풀려고 왔을지도 모른다.

 

“야호!”

잠시만에 그 목소리가 또다시 흔들리며 날아왔다.

 

능선을 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꽤 많이 희미해졌다.

 

인생의 강물을 건널 때 그의 걸음걸이가 흔들리듯 그렇게 찡, 하는 여운을 남긴다.

 

목소리가 좀 희미해졌을 뿐 여전히 붉은 울음이 배어 있었다.

 

좀 쓸쓸한 비명 같기도 했다.

 

저 일을 산짐승을 구실로 막아내자는 건 배부른 호사가의 짓이 아닐까 싶었다.

 

길을 가다가도 꺾이거나 쓰러진 나무를 보면 잠시 그 앞에 멈추게 된다.

 

그렇듯 저이의 비명에도 귀 기울여줘야 하는 게 사람의 도리가 아닐까.

 

평소엔 싫던 그 “야호!”가 은근하게 기다려졌다.

 

골짝물이 벼랑에 떨어져 부서짐을 통해 맑아지듯 목소리의 임자도 그렇게 되길 바랐다.

 

그날의 산행은 내내 허전했다.

 

산을 내려오며 문득 내 나이를 발견했다.

 

관용의 나이가 내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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