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반에 점필이가 있다
권 영 상
옆반에 점필이가 있다.
다른 애들보다 왜소하다. 턱이 좀 빠졌고, 눈이 퀭하다. 수업을 시작했는데도 점필이는 공부에 관심이 없다.
“점필이는 학교 왜 왔지?”
내 말에 연필 끝을 이빨로 물어뜯던 점필이가 대답한다.
“밥 먹으러요.”그 반에 수업이 있어 들어가면 점필이 책상 위는 늘 어지럽다. 겉장없는 책과 휴지와 잡동사니들을 쌓아놓고 산다. 학교에 놀러오는 셈이다. 점필이는 혼자 놀다가 뭐가 부족한지 옆짝 치훈이의 책상 속에 쑥, 손을 집어넣는다.
“뭐가 필요한데?”
책을 읽으며 메모를 하던 치훈이가 일을 놓고 점필이를 본다. 연필 깎는 칼을 달래나 보다. 칼을 건네준 치훈이는 아무 불평없이 제 일을 한다. 점필이는 또 뭐가 필요한지 이번에는 팔꿈치로 치훈이를 툭툭 친다. 노트에 막, 눈을 두던 치훈이가 다시 점필이를 바라본다. 이번에는 책상 속에서 연습장 한 장을 꺼내 준다. 점필이는 거기에다 뭔가를 분주하게 그린다.
그러더니 불쑥 옆 분단으로 걸어가 한참 메모를 하는 친구에게 뭔가를 달랜다. 친구는 암말없이 뭔가를 꺼내 점필이에게 건넨다. 나무젓가락이다. 점필이는 두 손으로 머리위에 나무젓가락을 세워들고는 제 자리에 와 앉는다. 연필칼로 뭔가를 그려넣은 연습장을 자른다. 다 자르고 난 점필이가 나무젓가락과 잘라놓은 종이를 번갈아 보더니 다시 옆짝 치훈이에게 손을 내민다.
짜증 한번 낼만 할텐데 치훈이는 군말이 없다.
당연한 일인 것처럼 가방에서 풀을 꺼내어 점필이에게 건넨다. 훌쩍이던 코를 훅, 들이마시며 점필이가 종이에 풀칠을 한다. 나는 슬며시 점필이 곁으로 다가갔다. 점필이가 흘끔 나를 올려다 본다. 겸연쩍게 웃더니 얼른 국어책을 꺼내 편다.
“점필이 뭘 만들고 있니?”나는 싱긋이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대장기요!” 그런다.
그러고는 오히려 안심이라는 듯 풀칠한 종이를 집어든다. 종이에 물고기 한 점이 그려져 있다. 그걸 나무젓가락 끝에 붙인다. 종이 깃발이 됐다. 점필이가 깃발달린 나무젓가락을 번쩍 치켜든다. 마구 흔든다. 공부를 하던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쿡쿡 웃는다. 몇 차례 그러고는 다들 자기 일을 한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자기 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신기하다. 날마다 공부 방해를 하는 점필이가 싫을만도 할텐데 그냥 넘겨주는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물고기 대장기라 멋있구나!”
나도 아이들처럼 한번 쿡, 웃어 주고는 돌아섰다.
서른 네 명의 공부하는 아이들과 한 명의 대장기를 만드는 점필이가, 글 읽는 서른 네 명과 글 모르는 한 명의 점필이가 만들어내는 교실 풍경이 아름답다 못해 그윽하다. 공부를 잘하는 치훈이만 해도 그렇다. 별난 아이들 같으면 옆짝을 바꿔 달라고 수차례 하소연했겠다. 그러나 치훈이는 3월부터 줄곧 점필이의 다정한 옆짝이다.
오후에 다른 반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데 점필이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반쯤 먹던 과자 봉지를 내민다. 감자칩이다.
“선생님, 대장기에 그린 거 물고기가 아니고 선생님이에요.”
과자봉지를 내 손에 던지고는 냅다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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