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나는 골목길 걷는 게 좋다

권영상 2012. 6. 21. 10:50

나는 골목길 걷는 게 좋다

                                         권 영 상

 

 

 

 

집으로 돌아갈 때는 언제나 좁은 골목길을 택한다.

버스길도 있지만 특별하지 않으면 골목길을 후적후적 걸어간다. 학교가 산언덕에 있으므로 골목은 내리막길이며 또한 좁다. 좁기 때문에 양쪽으로 늘어선 집들의 담장은 나트막하다. 고개를 빼지 않아도 집안이 다 들여다 보이고,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담장 너머 방안의 소리가 환히 들린다.

 

 

누구네 집이든 담장 위엔 화분이 쪽 놓여 있다. 방과 담장이 붙어있는 집은 화분을 좁은 골목길에 내어놓고 키운다. 작년에 키웠던 다알리아, 분꽃, 파초 등속의 묵은 화분은 오래 된 친구처럼 아직도 골목에 그대로 있다. 내가 그들 때문에 걸음을 천천히 늦출 때였다.

 

 

돌멩이를 툭툭 차며 오는 사내아이 둘이 있었다.

예닐곱 살은 됐을까. 사내아이 둘은 또 어떤 골목길에서 오락게임이나 하고 오는 길인지 절친해 보였다.

“요즘은 우리 아빠 장난이 너무 심해서 걱정이야!”

그 중 머리가 굵은 아이가 차고 오던 돌멩이를 꾹 밟고 서서 말했다. 그 아이의 표정이 매우 걱정스러워 보였고, 걱정스러움 때문인지 심각해 보였다.

 

“저번엔 안방에서 물구나무서다 형광등 깨먹었어.”

아이들 곁을 비키던 나는 그만 멈추었다. 귀가 솔깃했다. 나는 골목길 묵은 화분에 발을 얹었다. 구두끈을 매는 체하며 아이들의 말을 엿들었다.

“형광등 깨먹은 거 보고 우리 엄마가 뭐랬는 줄 알어?”

옆의 아이가 대답 대신 코를 훌쩍였다.

“일곱살 먹은 나만도 못하대!”

그러는 그 아이는 자랑스럽기보다 걱정스러워 했다.

 

“우리 아빠 저번에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았다.”

코를 훌쩍이던 아이가 질세라 이야기를 꺼냈다.

“서커스 한다고 의자에 올라가 한발로 서다 의자 부쉈거든.”

코를 훌쩍이던 그 아이가 제 아버지 흉내를 내다 픽, 쓰러졌다.

 

그걸 보던 나는 더는 참을 수 없어 킥킥거리며 자리를 떴다. 의자를 부서지게 해 아내한테 빗자루로 얻어맞는 아이의 아버지가 떠올라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의자에 올라가 양팔을 벌리며 잘난 체 했을 아이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언젠가 우리 교실 아이들에게 아버지에게 성적표를 보이면 어떤 반응을 하는지를 적어보게 하였다. 그중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버지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이것도 성적이라고 받아왔냐? 아빤 공부해라 소리 한번 안 듣고도 전교에서 일등만 했다. 일등!”

또는 이렇게도 말했다.

“아빤 너만했을 때 할아버지 농사일 밤낮 없이 도와드렸다. 그러고도 시험만 보면 상위권이었다.”

이토록 잘난 체 하는 아버지가 자식 앞에서 형광등을 깨고, 서커스를 한다며 의자를 부숴먹는다, 그러다 아내한테 야단까지 맞는다. 이건 아버지로서의 체면이 구겨져도 보통 구겨지는 일이 아니다.

 

“엄마가 그러는데 장난만 안 치면 울 아빠 괜찮은 사람이래.”

그렇게 말하던 아이의 표정 어디에도 아버지를 무시하거나 깔보는 데가 없었다.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친밀감을 느끼고, 자랑스러워 으쓱, 하는 모습이었다.

골목길을 거의 다 내려오는데 파란 색 슬레이트 대문집에서 사내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찬장 속 고구마 먹어도 돼!”

저녁밥 시간을 참지 못하는 아이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퇴근길이 늦은 나도 갑자기 배가 고팠다.

배가 고파도 버스를 타지 않고 골목길을 걸어 내려오는 일은 좋다.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사는 사람들의 따뜻한 목소리가 언제나 내 마음을 끌기 때문이다. 더는 듣지 못했지만 찬장 속 고구마 먹어도 되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아이에게 이렇게 타일렀을 테다.

 

“밥 다 됐으니 조금만 참아라.”

참을성이 없던 내게 해주시던 어렸을 적 내 어머니의 목소리다.

그러고 보니 유년의 내 어머니를 이 골목길에서 다시 뵙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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