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시 참깨동시 488

양을 만났죠

양을 만났죠 권영상 양을 만났죠. 잠이 안 올 때 이불 속에서 세던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 네 마리, 양 다섯 마리....... 그 양들을 여기 대관령 목장에서 만났죠. 밤마다 만난 양들이어서 양들은 멀리서도 나를 얼른 알아보고 달려왔죠. 나는 잠이 안 오는 날의 밤처럼 양들을 세었죠.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 네 마리, 양 다섯 마리, 양 여섯 마리...... 나는 그만 스르르 잠에 들려고 하죠. 풀밭에서의 낮잠 달콤하겠죠. 계간지 2023년 겨울호

토끼풀 손목시계

토끼풀 손목시계 권영상 토끼풀이 힘을 합쳐 시계 가게를 열었어요. 지금 들판엔 풀꽃시계를 만들기에 딱 좋은 토끼풀 꽃이 한창입니다. 풀꽃시계를 만들면 손목에 직접 차시거나 좋아하는 분에게 채워드리실 거죠? 너무 어려 아직 사랑이 뭔지 모른다거나 너무 나이가 많아 사랑이 뭔지 잘 아는 분들이 선호하는 토끼풀꽃 시계. 점심을 끝내거든 곧장 토끼풀밭으로 나오세요. 토끼랑 함께. 출간 예정 동시집 수록

비 오는 날의 발자국

비 오는 날의 발자국 권영상 시멘트 길 위에 찍어놓고 간 누군가의 발자국. 그 발자국에 가을 빗물이 고인다. 발자국을 두고 간 그 사람은 어디 살고 있을까. 지금 그의 양말이 고요히 빗물에 젖고 있을지 모르겠다. 발이 축축해지는 것 같아 자꾸 발을 문질러주고 있을지 모르겠다. 가을비 오는 날 내 발도 거리로 나가고 싶어 한다. 어쩐지 양말이 젖는 것 같다. 2023년 겨울호

깜빡

깜빡 권영상 바쁘다 보면 누구나 깜빡할 때가 있죠. 꽃씨들도 깜빡 봄을 잊고 한 해를 그냥 넘기는 일, 부지기수죠. 제가 앵무새인 걸 깜빡 잊고 안녕, 잘 다녀와! 그렇게 사람처럼 말하는 앵무새들, 알고 보면 많죠. 초승달마저 때로는 제가 쪽배인 줄 알고 깜빡, 개울물 위를 동실동실 떠다니는 거 다들 보셨죠? 깜빡 한다고 괴로워 마세요. 일요일 아침을 깜빡 월요일 아침으로 착각해 서둘러 일어나던 일. 누구나 그런 일 다 있죠. 2023년 동시 재능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