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가볍게 하늘을 난다 새들은 가볍게 하늘을 난다 권영상 파란 하늘에서 깃털 하나가 내려온다. 두 손을 모두어 깃털을 받는다. 작은 내 손 안에 포근히 내려 앉는 깃털. 실바람처럼 가볍다. 가벼운 것일지라도 새들은 가끔씩 깃털을 버리는가 보다. 버릴 것은 버리면서 가볍게 하늘을 나는가 보다. 권영상 동시집 미리내 1996 수록 내동시 참깨동시 2024.01.08
새끼 염소 새끼 염소 권영상 새끼염소 머리에 뿔났다. 밤톨만하다. 그때부터 새끼염소는 자꾸 나를 들이받는다. 딴은 믿는 데가 있다 이거다, 할아버지같이 늙은 밤나무를 보아도 그냥 못 간다. 달려가 한번 들이받는다. 2023 내동시 참깨동시 2023.11.27
양을 만났죠 양을 만났죠 권영상 양을 만났죠. 잠이 안 올 때 이불 속에서 세던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 네 마리, 양 다섯 마리....... 그 양들을 여기 대관령 목장에서 만났죠. 밤마다 만난 양들이어서 양들은 멀리서도 나를 얼른 알아보고 달려왔죠. 나는 잠이 안 오는 날의 밤처럼 양들을 세었죠.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 네 마리, 양 다섯 마리, 양 여섯 마리...... 나는 그만 스르르 잠에 들려고 하죠. 풀밭에서의 낮잠 달콤하겠죠. 계간지 2023년 겨울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3.10.24
토끼풀 손목시계 토끼풀 손목시계 권영상 토끼풀이 힘을 합쳐 시계 가게를 열었어요. 지금 들판엔 풀꽃시계를 만들기에 딱 좋은 토끼풀 꽃이 한창입니다. 풀꽃시계를 만들면 손목에 직접 차시거나 좋아하는 분에게 채워드리실 거죠? 너무 어려 아직 사랑이 뭔지 모른다거나 너무 나이가 많아 사랑이 뭔지 잘 아는 분들이 선호하는 토끼풀꽃 시계. 점심을 끝내거든 곧장 토끼풀밭으로 나오세요. 토끼랑 함께. 출간 예정 동시집 수록 내동시 참깨동시 2023.10.18
비 오는 날의 발자국 비 오는 날의 발자국 권영상 시멘트 길 위에 찍어놓고 간 누군가의 발자국. 그 발자국에 가을 빗물이 고인다. 발자국을 두고 간 그 사람은 어디 살고 있을까. 지금 그의 양말이 고요히 빗물에 젖고 있을지 모르겠다. 발이 축축해지는 것 같아 자꾸 발을 문질러주고 있을지 모르겠다. 가을비 오는 날 내 발도 거리로 나가고 싶어 한다. 어쩐지 양말이 젖는 것 같다. 2023년 겨울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3.10.11
깜빡 깜빡 권영상 바쁘다 보면 누구나 깜빡할 때가 있죠. 꽃씨들도 깜빡 봄을 잊고 한 해를 그냥 넘기는 일, 부지기수죠. 제가 앵무새인 걸 깜빡 잊고 안녕, 잘 다녀와! 그렇게 사람처럼 말하는 앵무새들, 알고 보면 많죠. 초승달마저 때로는 제가 쪽배인 줄 알고 깜빡, 개울물 위를 동실동실 떠다니는 거 다들 보셨죠? 깜빡 한다고 괴로워 마세요. 일요일 아침을 깜빡 월요일 아침으로 착각해 서둘러 일어나던 일. 누구나 그런 일 다 있죠. 2023년 동시 재능기부 내동시 참깨동시 2023.10.06
멀어진 순복이 멀어진 순복이 권영상 순복이와 길에서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요즘 잘 지내니? 하고 물었다. 나를 한번 쓱 쳐다보던 순복이가 이제 알 거 없잖아! 그러고는 휙 가버린다. 조금 멀어진 우리 사이. 2023년 동시 재능기부 내동시 참깨동시 2023.10.06
참새의 하늘 참새의 하늘 권영상 참새는 사람 사는 집 지붕보다 더 높이 날지 않는다. 참새는 이쪽 대추나무에서 저쪽 사철나무 울타리를 건너다닌다. 참새는 하늘을 탐내지 않는다. 참새의 하늘이라면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그 정도 높이다. 2023년 동시 재능기부 내동시 참깨동시 2023.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