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시 참깨동시 481

신포도

신포도에 대하여 권영상 이솝우화 속에 살던 여우가 마을로 내려왔다. 그 사이 꽤 많이 늙어 보였다. 늦게나마 여우가 마을을 찾은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듯했다. 잘 익은 포도를 따려다 못 따고 돌아설 때 여우가 했다는 이솝의 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러나 그건 솔직히 여우를 비겁하게 만든 이솝의 나쁜 거짓말이었다. 그 이후, 여우는 아무 까닭 없이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어쩌면 그때 그 일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 여우가 마을로 내려왔는지 모르겠다. 2023년 봄호

도깨비방망이 크기도 하지

도깨비방망이 크기도 하지 권영상 도깨비방망이 크기도 하지. 혼자서는 못 메지. 둘이 메어야지. 둘이서는 못 메지. 셋이 메어야지. 방망이 속에 금이 한 수레. 떡이 한 가마 집이 열두 채. 도깨비방망이는 무겁기도 하지. 셋이서는 못 메지. 넷이 메어야지. 넷이서는 못 메지. 다, 여, 일고, 여덜, 아오, 열 열이 메어야지. 권영상 동시집 사계절출판사 2019

책이 된 나무

책이 된 나무 권영상 나무가 어느 날 나를 찾아왔다. 그는 지난날과는 전혀 다른 얼굴로 내 곁에 왔다. 꿈을 쫓던 수많은 가지들을 버리고 마음에 품었던 오직 한 가지, 책이 되어 돌아왔다. 한 장 한 장 이야기로 채워진 나무의 책장을 넘긴다. 그늘을 펴놓고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던 나무가 이렇게 이야기를 품고 내게로 왔다. 격월간 2022년 11월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