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간 거리 세 시간 거리 권영상 여기서 세 시간 거리. 할머니 집 밤하늘은 다르다. 더 캄캄하다. 풀벌레가 울어 더 조용하다. 별들이 자두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더 반짝인다. 할머니, 저 별들도 할머니가 키우셨나요? 워디. 저절로 컸지. 2022년 11월 45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11.01
그의 손 그의 손 권영상 앞서 문을 열고 나가던 사람이 열린 문을 잡고 잠시 나를 기다려준다. 고맙습니다! 그 열린 문의 손잡이를 받아 나가면서 내 뒤를 따라 나오는 한 사람을 본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내게 손잡이를 넘겨주던 손. 그 고마운 손을 그 한 사람에게 넘긴다. 2022년 겨울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10.21
밤은 언제나 밤은 언제나 권영상 밤은 조심스럽다. 조금만 부주의해도 딸깍, 그릇 부딪는 소리를 낸다. 밤은 잠들지 못 한다. 조금만 부주의해도 꼭 잡은 별을 이크, 놓쳐버린다. 밤은 마음 쓰인다. 조금만 부주의해도 부엉이 부엉, 한숨지으며 운다. 2022년 겨울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10.21
엉덩이 엉덩이 권영상 여기 엉덩이가 있다. 방귀를 뀌고, 아픈 뱃속을 해결하느라 냄새를 풍기는. 여기 또 다른 엉덩이가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꾹 눌러앉아 끝까지 버텨내는 엉덩이. 이 엉덩이가 있어 마음에 품은 뜻을 마침내 꽃 피워낸다. 2022년 겨울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10.21
예감 예감 권영상 아침이 너무 늦지 않게 왔다. 창문을 연다. 아침이 밝은 옷차림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안녕! 나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온 아침을 맞는다. 오늘 하루 꼭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2022년 겨울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10.21
귤 귤 권영상 볼록한 햇살주머니를 놓아두고 갔다. 엄마가 내 책상 위에. 햇살주머니에서 노란 향기가 꼬물꼬물 기어나와 내 코를 간질인다. 나는 햇살주머니를 풀어 햇살 한쪽을 꼭 깨문다. 내 몸에 반짝, 봄이 켜진다. 새콤한. 2022년 겨울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10.14
개명 개명 권영상 뽕나무가 이름을 바꾸었다. 살아오면서 뽕나무는 수없이 많은 놀림을 받았다. 어디로 방귀 뀌지? 그러며 엉덩이 쪽을 살필 때면 울고 싶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뽕나무는 마침내 이름을 바꾸었다. 오디나무로. 오디나무에 날아오는 오디새. 오디물 들어 빨간 부리. 그의 이름은 벌써 시가 되었다. 2022년 겨울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10.14
고양이 난나 고양이 난나 권영상 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난나는 담박에 보았지. 야아옹, 난나는 내 눈물을 떨어뜨릴까봐 내 곁에 가만히 다가와 닿을락 말락한 거리에 앉았지. 그리고는 내 슬픈 눈길이 가 닿는 곳을 함께 바라봐 주었지. 2022년 겨울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10.14
내가 잠든 사이 내가 잠든 사이 권영상 깊은 밤 어쩌다 잠에서 깨어 불을 켠다. 책상에 삐뚜름하게 기대어 놓은 가방이 몸을 비튼 해 잠들어 있다.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양말은 쪼그리고 앉아 아직도 슬픔에 잠겨 있다. 밀고 나온 그 모습 그대로 돌아앉아 잠이 든 책상의자. 내가 잠든 사이 불편하게 밤을 보내는 나의 것들. 2022년 겨울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10.14
별 시시콜콜함 별 시시콜콜함 권영상 우리는 시시콜콜하지. 떡볶이 맛이 짜니 맵니 양말 목을 접니 마니 손 씻고 물 묻은 손을 튕기느니 다느니. 만나면 우리는 시시콜콜에 빠지지. 뽑기처럼 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쏙쏙 뽑아내는 일은 재밌지. 어디 뭐 시시콜콜한 거 없을까 하고 늘 뒷구멍으로 숨어다니는 우리는 시시콜콜 고양이들. 왜 그렇게 시시하냐구? 그야 우린 별 시시콜콜 고양이들이니까. 시시콜콜. 2022년 내동시 참깨동시 2022.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