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 아부지 방귀 진수 아부지 방귀 권영상 진수 아부지 뿡, 방귀 뀌었다. 길목을 막아선 도깨비가 깜짝 놀란다. 이리 내놔! 도깨비가 진수 아부지 바지 주머니를 뒤진다. 없다. 진수 아부지 허리춤을 뒤진다. 없다. 숨길 거 없어. 얼른 내놔! 도깨비가 이윽고 진수 아부지 똥궁뎅이를 뒤진다. 권영상 동시집 사계절출판사, 2019 내동시 참깨동시 2023.01.03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울지 마라 권영상 개울둑에 앉아 울고 있을 때 도깨비가 나를 따뜻이 껴안아 줬지.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엄마 보고 싶지 않은 사람 어디 있겠니. 집으로 돌아올 때 그 도깨비 또 만났지. 내가 밟았던 풀잎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워 주며 울지 마라, 울지 마라, 달래고 있었지. 권영상 동시집 사계절출판사 2019 내동시 참깨동시 2023.01.03
나팔꽃 나팔꽃 권영상 나팔꽃은 제가 마치 세상의 모든 아침인 것처럼 새벽 끝에 핀다. 제가 마치 세상의 가장 빛나는 아침인 것처럼 파란 빛으로 문을 연다. 그뿐이 아니다. 나팔꽃은 제가 마치 세상의 모든 아침을 깨울 것처럼 요란한 나팔을 불며 온다. 격월간 11월 12월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11.15
책이 된 나무 책이 된 나무 권영상 나무가 어느 날 나를 찾아왔다. 그는 지난날과는 전혀 다른 얼굴로 내 곁에 왔다. 꿈을 쫓던 수많은 가지들을 버리고 마음에 품었던 오직 한 가지, 책이 되어 돌아왔다. 한 장 한 장 이야기로 채워진 나무의 책장을 넘긴다. 그늘을 펴놓고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던 나무가 이렇게 이야기를 품고 내게로 왔다. 격월간 2022년 11월 12월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11.15
서랍 서랍 권영상 서랍을 연다. 책상이 혀를 쏙 내민다. 분꽃씨 세 개를 달각, 놓아준다. 책상이 혀를 집어넣는다. 쫍! 권영상 동시집 2016 문학과지성사 내동시 참깨동시 2022.11.09
서리 내린 날 서리 내린 날 권영상 콩밭에 서리 내렸다. 서리에 콩밭이 흠뻑 젖었다. 이런 날이면 어김없이 콩잎이 노랗게 물든다. 이런 날이면 온종일 햇살이 곱다. 2022년 겨울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11.01
작별 인사 작별 인사 권영상 창밖에 펑펑 눈 내린다. 이제야 작별 인사도 못 하고 헤어진 매미가 생각난다. 귀뚜라미들과의 작별도 그랬다. 떠나고 난 오랜 뒤에야 아, 갔구나! 한다. 그 동안 무얼 하느라 잘 가렴! 그런 말도 못했을까. 창밖에 펑펑 눈 내리는 날. 2022년 겨울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11.01
세 시간 거리 세 시간 거리 권영상 여기서 세 시간 거리. 할머니 집 밤하늘은 다르다. 더 캄캄하다. 풀벌레가 울어 더 조용하다. 별들이 자두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더 반짝인다. 할머니, 저 별들도 할머니가 키우셨나요? 워디. 저절로 컸지. 2022년 11월 45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11.01
그의 손 그의 손 권영상 앞서 문을 열고 나가던 사람이 열린 문을 잡고 잠시 나를 기다려준다. 고맙습니다! 그 열린 문의 손잡이를 받아 나가면서 내 뒤를 따라 나오는 한 사람을 본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내게 손잡이를 넘겨주던 손. 그 고마운 손을 그 한 사람에게 넘긴다. 2022년 겨울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10.21
밤은 언제나 밤은 언제나 권영상 밤은 조심스럽다. 조금만 부주의해도 딸깍, 그릇 부딪는 소리를 낸다. 밤은 잠들지 못 한다. 조금만 부주의해도 꼭 잡은 별을 이크, 놓쳐버린다. 밤은 마음 쓰인다. 조금만 부주의해도 부엉이 부엉, 한숨지으며 운다. 2022년 겨울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