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한밤중 권영상 어쩌다 잠에서 깨어 창문 밖을 내다본다. 캄캄한 골목길 끝에 불이 환한 편의점. 저 안에서 혼자 밤을 지키고 있을 사람. 삼각 김밥 있어요? 하며 이슥한 밤길에 반갑게 찾아들어올 사람. 그 사람을 위해 한밤중 환한 편의점. 2022년 여름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04.05
꽃 꽃 권영상 5월이 뜰 안에 향수병을 놓고 갔다. 그 때가 지난 일요일 '이 향수는 깨끗한 햇빛과 바람과 흙과 물로 제조 되었음'이라 적혀있다. 사용 기간은 봄 한 철 제조회사는 뜰 안 꽃밭. 향수병 속에 코를 대어본다. 은은하면서도 깔끔하다. 엄마는 특별히 이 제품을 좋아하신다. 부작용이 전혀 없다는 거다. 고양 시민과 함께 하는 꽃 문화축제 2011년 05월 수록 내동시 참깨동시 2022.02.24
4월 4월 권영상 가을에 떠나갔던 참나무 잎들이 모두 돌아온다. 지금 숲속 참나무 역은 봄기차에서 내리는 연두빛 손님들로 붐비고 있다. 2022년 봄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02.14
혀 혀 권영상 앞니가 빠졌다. 부끄럽다며 내 손이 입을 가릴 때 혀는 찾아가 움푹 파인 그 빈자리를 어루만져 준다. 아무도 아는 체 하지 않을 때에도 혀는 찾아가 별일은 없는지 가만가만 쓸어보아 준다. 앞니가 빠졌다. 혀가 그 아픔을 함께 한다. 2022년 봄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02.14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권영상 어느 날 하느님을 만난다면 그분은 내게 이렇게 묻겠지요. 밥 먹었냐? 우리 아빠가 그런 사람입니다. 2022년 3월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01.24
참새의 하늘 참새의 하늘 권영상 참새에겐 참새들 하늘이 있지. 암만 욕심 부려도 동네 살구나무 우듬지 그 너머의 하늘을 넘보지 않지. 암만 급해도 사람 사는 집 지붕은 타넘지 않지. 볼일이 있다면 울타리를 건너 건너 빙 돌아가지. 2022년 3월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01.24
잠 자는 시계 잠 자는 시계 권영상 아침에 일어나보니 시계가 잠자고 있다. 새벽 세 시에 혼자 잠들었다. 내가 깨워주기를 바라는 거겠지. 마음 놓고 푹 잔다. 2022년 41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2.01.24
불 꺼진 밤 불 꺼진 밤 권영상 불을 끄자,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마음들이 천천히 모인다. 풀꽃! 풀꽃! 하던 마음이, 길고양이에 빠진 마음이, 잃어버린 가방 때문에 허둥지둥하던 마음이 모두 돌아왔다. 돌아온 마음들을 어루만져 준다. 불 꺼진 밤. 2022년 3월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1.12.21
그믐달 그믐달 권영상 누가 공중에 활을 던져두고 갔다. 예전, 한 어린 병사가 적군의 병사를 향해 활을 겨누다가 문득 고향의 어머니가 떠올라 버려두고 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2021년 겨울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1.11.16
추운 아침 추운 아침 권영상 참새가 모과나무에 날아왔다. 가지에 달린 시린 고드름을 부리로 똑 딴다. 꼬드득, 부리 속에서 부서지는 겨울 한 조각. 물 한 방울 찍어먹을 데 없는 추운 아침. 2021년 겨울호 내동시 참깨동시 2021.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