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낮달이 뜬다 내 몸에 낮달이 뜬다 권영상 개울가 모래밭에 누웠다. 모래밭에 물길을 내며 개울물이 쫑쫑쫑 내 귀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마른 땅이 젖듯 내 몸이 촉촉이 젖는다. 아주 오래 전 내 몸을 비집고 죽은 듯 숨어 살던 버들치. 우렁이 그리고 그 위를 날던 물총새. 그들이 파득파득 살아난다. ..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6
하모니카를 부는 풀벌레 하모니카를 부는 풀벌레 권영상 깊은 밤 뒤뜨락 풀벌레들이 뚤뚤뚤 뚜르르 하모니카를 분다. 등불같이 커다란 달님 아래서 누가 또 그리워 하모니카를 부나. 잠든 밤 참대숲 풀벌레들이 뚤뚤뚤 뚜르르 하모니카를 분다. 초롱불빛 파아란 별님 아래서 누굴 또 못 잊어 하모니카를 부나.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6
겨울바람은 바쁘다 겨울바람은 바쁘다 권 영 상 겨울바람은 바쁘다 대머리 아저씨 머리칼을 날려선 한 올 한 올 세어 보고, 발 시린 아이 옷자락을 들추어선 꼭꼭꼭 단추는 끼웠는지, 연탄 집 아저씨 빵모자 구멍은 안 뚫렸는지, 우체통은 그 자리에 잘 있는지, 신호등은 차례차례 불빛을 내놓는지, 이발소 ..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6
감자를 캐며 감자를 캐며 권영상 아빠와 나란히 이랑을 타고 감자를 캡니다. 호미를 당길 때마다 주먹만 한 감자가 쑥쑥 흙을 헤치고 나옵니다. 와, 크다! 내가 기뻐 소리칩니다. 정말 재미나구나! 아빠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덩달아 고리칩니다. 아, 기쁨이 땅 속 어두운 데서 만들어져 우리들 손안..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6
손수건 손수건 권 영 상 새로이 산 손수건은 곱고 깔끔하긴 하지만 눈물은 받아들이지 못하지요 적어도 손수건이 손수건이려면 깔깔한 성질은 마땅히 버려야지요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때 엄마의 낡은 치맛자락같은 부드러움 손수건이 손수건일테면 그래야겠지요 알맞게 낡은 뒤에야 한방울 ..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6
봄 하늘 봄 하늘 권영상 이슬비가 온다. 머리카락에 내려앉아도 도무지 무게를 모를 이슬비가. 하늘은 이렇게 가벼운 이슬비도 모두 내려놓는다. 집으로 돌아올 때에 보니 비 내리던 하늘이 그림 속 물감처럼 파래졌다. 저렇게 하늘이 파래지려고 봄 하늘은 이슬비마저 촘촘촘 내려놓았다. 권영..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6
빈둥빈둥빈둥 빈둥빈둥빈둥 권영상 바람 부는 날 숲에 가 보면 안다. 나무들이 온종일 빈둥거린다. 빈둥빈둥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논다. 일없는 나룻배처럼 빈둥빈둥 빈둥거린다. 바람 부는 날에는 새들도 바람을 타며 하늘 모퉁이를 빈둥거리며 논다. -그렇게 놀아서 나중에 뭐가 되려고! ..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6
비 오는 날 비 오는 날 권영상 하늘은 목욕하기 좋도록 버려진 꼬막 껍질에 빗방울을 채워 놓는다. 네모진 사금파리에도 개미들 목욕하기 좋도록 가득히 빗방울을 채운다. 움푹 빠진 송아지 발자국에도 콩콩 찌르고 간 이모 뽀족구두 구멍에도 빗방울을 채운다. 꼬맹이 벌레들 목욕하기 딱 좋도록.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6
아빠는 신이 나서 아빠는 신이 나서 권영상 아빠, 컴퓨터게임 할 줄 알아요? 그러면 아빠는 모른다, 모른다 하며 손사래를 치신다. 아빠, 목화가 뭐예요? 목화? 그거 말이다. 아빠도 심어봤는데…… 아빠는 마치 살아나는 샘물가 바람처럼 즐거워하신다. 누에도 먹었다는데 아빠도 먹어 봤어요? 그럼, 그걸 ..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