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건 손수건 권 영 상 새로이 산 손수건은 곱고 깔끔하긴 하지만 눈물을 받아들이지 못하지요. 적어도 손수건이 손수건이려면 깔깔한 성질은 마땅히 버려야지요.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때 손 안에 포근히 잡히는 엄마의 낡은 치맛자락 같은 부드러움. 손수건이 손수건이려면 그래야겠지요. 알..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0
내 마음이 조용해질 때 내 마음이 조용해질 때 권 영 상 아침마다 세숫물 안에서 만나는 사람 두 손을 세숫물에 담그면 그 사람은 달아난다. 나는 여기 남아 있는데 그는 달아나 세숫물 밖으로 사라진다. -엄마, 이걸 봐요. 그 사람이 없어졌어요. -그럼, 한참을 기다려라. 네 마음이 맑아질 때 다시 돌아올 테니. ..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0
4월이 오면 4월이 오면 권 영 상 4월이 오면 마른 들판을 파랗게 색칠하는 보리처럼 나도 좀 달라져야지. 솜사탕처럼 벙그는 살구꽃 같이 나도 좀 꿈에 젖어 부풀어 봐야지. 봄비 내린 뒷날 개울을 마구 달리는 힘찬 개울물처럼 나도 좀 앞을 향해 달려봐야지. 오, 4월이 오면 좀 산뜻해져야지. 참나무 ..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0
내 꿈은 이미 내 꿈은 이미 권영상 바람이 분다. 민들레 씨가 울타리를 타넘는다. -꿈은 가지고 떠나는 거니? 차돌멩이가 부러운 듯 물었다. -내 꿈은 이미 저쪽 들판에 가 있다구.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0
아무리 크면 뭐하겠어 아무리 크면 뭐하겠어 권영상 산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 안에 옹달샘 하나는 있어야 산도 산이라 할 수 있지. 아무리 하늘이 크다 해도 그 안에 별 하나 없다면 하늘은 정말 하늘도 아니지. 들판이 아무리 크면 뭐하겠어. 그 안에 들꽃 한 송이 피지 않는다면 들판은 들판도 아니지. 정말이..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0
무게 무게 권 영 상 가만히 목덜미에 무게가 느껴진다. 누군가 나를 누른다. 손을 올려 그 ‘무게’를 집어내린다. 머리카락 한도막이다. 내 몸이 이 가벼운 무게에 못 견뎌 한다. 권영상 동시집 <실끝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지>(국민서관) 중에서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0
감잎은 정말 착해 감잎은 정말 착해 권 영 상 떨어진 감잎에 강아지가 똥을 눈다. 감잎이 그 순간 두 눈을 꼭 감고 온몸을 옹크린다. 콩, 강아지 똥이 떨어진다. 강아지 똥에서 찡, 흩어지는 냄새. 강아지가 침을 뱉듯 쨀끔 오줌을 눈다. 바람이 강아지와 함께 코를 막고 저만큼 달아난다. 그 사이 감잎이 강..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0
아기를 안으면 아기를 안으면 권 영 상 너를 꼬옥 안으면 내 가슴이 가득히 차오른다. 요만큼만 벌리는 내 두 팔로도 나는 세상을 안은 듯이 뿌듯하다. 이 두 팔의 안쪽으로 샘물처럼 찬찬히 고여오는 기쁨. 너를 꼬옥 안은 내 두 팔 안에 눈부신 아침이 있다. 권영상 동시집 <아흔아홉 개의 꿈>(미리..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0
새들은 가볍게 하늘을 난다 새들은 가볍게 하늘을 난다 권 영 상 파란 하늘에서 깃털 하나가 내려온다. 두 손을 모두어 깃털을 받는다. 작은 내 손 안에 포근히 내려앉은 깃털. 가벼운 것일지라도 새들은 가끔 깃털을 버리는가 보다. 버릴 것은 버리면서 가볍게 하늘을 나는가 보다.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0
바람은 바람은 권영상 바람은 언제나 그랬다. 길을 두고 숲으로 왔다. 나무 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구덩이를 헛디뎌 절룩이며 왔다. 때로는 찔레 덩굴에 몸을 긁히면서도 바람은 멀쩡한 길을 두고 언제나 험한 숲으로 왔다. 그런데도 바람의 숨결은 늘 새로웠고 달려가는 방향은 분명했다. 동시집..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