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이가 부럽다 민중이가 부럽다 권영상 우리 동네 베트남 아줌마 카오엔은 천만에요!를 처마네요! 한다. 그때마다 카오엔 아줌마 아들 내 친구 민중이는 신이 나 어쩔 줄 모른다. 엄마, 처마네요가 아니고 천! 만! 에! 요! 천만에요, 한번 해 봐! 엄마. 나는 그런 민중이가 부럽다. 너는 것두 모르냐! 그러.. 내동시 참깨동시 2012.09.23
봄 봄 권영상 숲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누가 찔레덩굴 뒤에 앉아 그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여기로 오시려면 플라나터스 가로수 길을 따라 오다가 샘물터에서 곧장 왼쪽으로 도세요. 이곳 지리를 잘 아는 멧새가 직박구리와 지금 통화 중이다. <시와 동화> 가을호 내동시 참깨동시 2012.09.23
반쪽달 반쪽달 권영상 밤하늘에 반쪽달 떴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내 마음의 반쪽이다. 반쪽달을 내려와 가슴에 꼭 끼운다. 딸깍, 이가 맞는다. <시와 동화> 가을호 내동시 참깨동시 2012.09.23
길을 멈추면 길을 멈추면 권영상 가다가 길을 멈춘다. 멈추면 못 듣던 소리가 들리지. 풀벌레 소리 씃쓰쓰, 풀섶에 떨어지는 가을 풀씨 소리 탈깍. 가다가 길을 멈추면 안 보이던 게 보이지. 해바라기 밑둥이에 나와앉아 하늘을 보는 달팽이. 달팽이를 빙 돌아 가는 작은 개미들. 가다가 길을 멈추.. 내동시 참깨동시 2012.09.17
내 무게 내 무게 권영상 살구나무에서 뛰어내릴 때 나는 들었다. 쿵, 하고 땅이 울리던 소리. 내 무게를 지구가 느낀다. 권영상 동시집 <엄마와 털실뭉치>(문학과 지성사) 중에서 내동시 참깨동시 2012.07.19
오이씨 같은 달 오이씨 같은 달 권영상 오이씨 같은 달이 하나 구름을 열고 나온다. 나무들이 살아난다. 집들이 일어선다. 멀리 산들이 걸어온다. 아, 이 작은 오이씨 달빛 하나로 마을이 꽃잎처럼 푸득푸득 펴진다. 내동시 참깨동시 2012.07.18
나뭇잎 나뭇잎 권영상 나무가 심장 하나를 뚝 떨군다. 그걸로 오슬오슬 떠는 어린 벌레를 감싼다. <서울신문, 그림과 시가 있는 아침> 2011.12.17) 내동시 참깨동시 2012.07.18
비 오는 날에 비 오는 날에 권영상 창 밖을 바라본다. 들판 먼 데서부터 봄처럼 내리는 비. 뒷짐을 지고 바라보던 아버지처럼 나도 뒷짐을 지고 비를 보는 오후. 어디를 가는지 열차는 비에 젖은 아버지처럼 조용히 들길을 간다. 언제나 쟁기를 들고 비를 기다리시던 아버지. 어디쯤을 가고 계실까. 낮.. 내동시 참깨동시 2012.07.18
아침버스에서 아침버스에서 권영상 추운 날 아침 아침 버스의 차가운 의자에 앉다가 뜻밖에도 따스하게 밀려오는 그 누구인가의 체온을 느낀다. 이 자리에 앉았다가 따스한 체온을 남겨 두고 내린 사람은 누구일까. 추운 겨울의 한 모퉁이를 녹여주는 이 의자에 앉아 나도 다음 사람을 위해 더 따스한 .. 내동시 참깨동시 2012.07.18
바람 떠 안기 바람 떠안기 권영상 거센 바람이 강을 건너 달려옵니다. 나무들이 제일 먼저 그 바람의 무게를 온 몸으로 떠안습니다. 다음으로 키 큰 수수밭의 수수들이, 그 다음으론 수수이랑 곁의 푸른 쑥대들이 바람의 무게를 조금씩 조금씩 떠안습니다. 그리곤 메밀밭을 돌아 담장 밑의 작은 풀꽃, .. 내동시 참깨동시 2012.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