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 비 오는 날에 권영상 창 밖을 바라본다. 들판 먼 데서부터 봄처럼 내리는 비. 뒷짐을 지고 바라보던 아버지처럼 나도 뒷짐을 지고 비를 보는 오후. 어디를 가는지 열차는 비에 젖은 아버지처럼 조용히 들길을 간다. 언제나 쟁기를 들고 비를 기다리시던 아버지. 어디쯤을 가고 계실까. 낮.. 내동시 참깨동시 2012.07.18
아침버스에서 아침버스에서 권영상 추운 날 아침 아침 버스의 차가운 의자에 앉다가 뜻밖에도 따스하게 밀려오는 그 누구인가의 체온을 느낀다. 이 자리에 앉았다가 따스한 체온을 남겨 두고 내린 사람은 누구일까. 추운 겨울의 한 모퉁이를 녹여주는 이 의자에 앉아 나도 다음 사람을 위해 더 따스한 .. 내동시 참깨동시 2012.07.18
바람 떠 안기 바람 떠안기 권영상 거센 바람이 강을 건너 달려옵니다. 나무들이 제일 먼저 그 바람의 무게를 온 몸으로 떠안습니다. 다음으로 키 큰 수수밭의 수수들이, 그 다음으론 수수이랑 곁의 푸른 쑥대들이 바람의 무게를 조금씩 조금씩 떠안습니다. 그리곤 메밀밭을 돌아 담장 밑의 작은 풀꽃, .. 내동시 참깨동시 2012.07.18
기차역이 있는 바다 그림 기차역이 있는 바다 그림 권영상 바다가 보고 싶으면 크레파스로 바다를 그려요. 시골 기차역을 낀 동해안 뿍뿍 경적이 울리는 바다를 그려요. 4절 스케치북 그 속에 동해 바다가 너울너울 들어가 출렁거리는 바다를 그려요. 하얀 은모래밭 소나무 숲 사이 푸른 깃발을 든 역장의 손짓으.. 내동시 참깨동시 2012.07.03
손이 천개라도 <추수하는 사람들, 1565, 피테 브뤼휄, 팬널에 유채, 119x163 cm, 메트로폴리탄 뮤제움, 뉴욕 > 손이 천개라도 권 영 상 손이 천개라도 모자라겠다! 안마당 고추멍석에서 고추를 말리는 가을 햇살이 종종댄다. 가을 햇살은 바쁘다. 엉덩이 한 번 붙이지 못하고 참깨 멍석으로 겅중 뛴다. 뒤..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6
손 손 권 영 상 펴면 아무것도 없는 빈 들판 바람만이 지나가는- 그러나 그 손으로 등을 두드려주면 마음이 든든해지고 그 손으로 악수를 청하면 내 마음이 건너가는 다리가 된다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6
먼지 묻은 연필 먼지 묻은 연필 권영상 책상을 옮기다가 책상 뒤에 떨어져 누운 연필을 줍다 무심히 주워 든 먼지 묻은 연필 먼지를 닦고 빈 종이에 글씨를 쓴다 또박또박 풀려 나오는 글씨 연필을 잊고 지낸 동안에도 연필은 나의 글씨를 잊지 않았다.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6
네 잎 클로버 네 잎 클로버 권영상 너는 토끼풀 밭 펼쳐진 길을 지날 때마다 냉큼 허리를 굽혀 자, 여기! 그러며 네 잎 클로버를 따 내게 준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도 여기, 네 잎 클로버! 그러면 너는 너의 초록빛 행운을 잡아 오히려 내게 내민다 나로서는 볼래야 보지 못하는 행운이 네 눈길 안에는 ..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6
배꼽 배꼽 권영상 / 그림 : 이순구 핫핫핫... 너무 웃어 배꼽이 빠지거든 그 배꼽을 집어들고 책상 위에다 굴려 봐. 대굴대굴 잘도 구를 거야. 책상 위에 볼을 붙이고 배꼽을 보면 구멍 사이로 재미난 세상이 보일 걸. 엄마의 뱃속, 엄마 뱃속으로 오기 전 너는 무언지 아니? 송아지거나 코뿔소거..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6
고만큼 고만큼 권 영 상 아기가 놀라지 않을 만큼 고만큼 엄마는 고만한 목소리로 자장가를 부르시고, 아기가 잠 깨지 않을 만큼 고만큼 엄마는 고만한 소리로 달각달각 설거지를 하시고. 내동시 참깨동시 2012.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