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아침 겨울아침 권영상 박새가 고욤나무 마른 가지에 앉아 운다. 쓰티 쓰티 쓰티 씃! 볼다구니 하얀 박새 머리 위로 바슬바슬 싸락눈 온다. 쓰티 쓰티 쓰티 씃! 춥다. <맥> 9월호 내동시 참깨동시 2012.10.09
서울로 올라온 바람 서울로 올라온 바람 권영상 바람은 고층빌딩보다 시골 숲에서 노는 게 더 좋다. 시멘트길 보다 풀꽃을 쓰다듬고 다니는 시골길이 더 좋다. 어쩌다 서울로 올라온 바람은 재미가 없다. 빌딩숲을 쏘다녀도 쏘다닌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빌딩 모서리에 손이 다 닳고 옷이 다 닳았다. <맥&g.. 내동시 참깨동시 2012.10.09
또이 럿 뭉 갑 엠 또이 럿 뭉 갑 엠 권영상 -신짜오! 내 짝 민중이는 학교만 오면 날 보고 즈네 엄마 나라 말로 아침 인사를 한다. 민중이 외갓집은 베트남이다. -신짜오! 나도 민중이 엄마 나라 말로 인사를 해 준다. -또이 럿 뭉 갑 엠! 그러면 민중이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너를 만나 기뻐. -<동시마.. 내동시 참깨동시 2012.09.23
민중이가 부럽다 민중이가 부럽다 권영상 우리 동네 베트남 아줌마 카오엔은 천만에요!를 처마네요! 한다. 그때마다 카오엔 아줌마 아들 내 친구 민중이는 신이 나 어쩔 줄 모른다. 엄마, 처마네요가 아니고 천! 만! 에! 요! 천만에요, 한번 해 봐! 엄마. 나는 그런 민중이가 부럽다. 너는 것두 모르냐! 그러.. 내동시 참깨동시 2012.09.23
봄 봄 권영상 숲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누가 찔레덩굴 뒤에 앉아 그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여기로 오시려면 플라나터스 가로수 길을 따라 오다가 샘물터에서 곧장 왼쪽으로 도세요. 이곳 지리를 잘 아는 멧새가 직박구리와 지금 통화 중이다. <시와 동화> 가을호 내동시 참깨동시 2012.09.23
반쪽달 반쪽달 권영상 밤하늘에 반쪽달 떴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내 마음의 반쪽이다. 반쪽달을 내려와 가슴에 꼭 끼운다. 딸깍, 이가 맞는다. <시와 동화> 가을호 내동시 참깨동시 2012.09.23
길을 멈추면 길을 멈추면 권영상 가다가 길을 멈춘다. 멈추면 못 듣던 소리가 들리지. 풀벌레 소리 씃쓰쓰, 풀섶에 떨어지는 가을 풀씨 소리 탈깍. 가다가 길을 멈추면 안 보이던 게 보이지. 해바라기 밑둥이에 나와앉아 하늘을 보는 달팽이. 달팽이를 빙 돌아 가는 작은 개미들. 가다가 길을 멈추.. 내동시 참깨동시 2012.09.17
내 무게 내 무게 권영상 살구나무에서 뛰어내릴 때 나는 들었다. 쿵, 하고 땅이 울리던 소리. 내 무게를 지구가 느낀다. 권영상 동시집 <엄마와 털실뭉치>(문학과 지성사) 중에서 내동시 참깨동시 2012.07.19
오이씨 같은 달 오이씨 같은 달 권영상 오이씨 같은 달이 하나 구름을 열고 나온다. 나무들이 살아난다. 집들이 일어선다. 멀리 산들이 걸어온다. 아, 이 작은 오이씨 달빛 하나로 마을이 꽃잎처럼 푸득푸득 펴진다. 내동시 참깨동시 2012.07.18
나뭇잎 나뭇잎 권영상 나무가 심장 하나를 뚝 떨군다. 그걸로 오슬오슬 떠는 어린 벌레를 감싼다. <서울신문, 그림과 시가 있는 아침> 2011.12.17) 내동시 참깨동시 2012.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