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805

이 계절의 좋은 시 읽기

이 계절의 좋은 시 읽기 이 계절의 좋은 시 읽기 소개글을 넣어주세요. cafe.daum.net [이화주 추천]권영상/소리 열매(2023년 가을호) (추천 이화주) 소리 열매 권영상 여름이 오면 맴맴이라는 소리 열매가 열리기 시작한다. 그 노래하는 열매는 이 숲의 나라 나무마다 주렁주렁 열려 맴맴 맴부랑 굵어간다. 그 맛은 달콤하게 익는 오디 맛이 아니라 귀가 먹먹할 정도로 짜르르르, 그에게서 푸른 파도 소리가 난다. 여름방학이 오면 이 마을 어떤 아이들은 그물 아구리가 큰 장대를 들고 맴맴맴이라는 소리 열매를 살곰살곰 따러 다닌다. ―《시와소금》, 2023년 봄호 ■ 시 읽기 권영상 시인의 시는 어디서 만나든 감탄을 자아낸다. 그의 시는 마치 ‘독자를 잃어갈까 봐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

문학비평 2023.09.03

나비를 기다리며

나비를 기다리며 권영상 그간 장마가 길었다. 폭염도 심했다. 그런 탓일까. 나비가 통 보이지 않는다. 한번 비 왔다 하면 그냥 비가 아니라 폭우가 쏟아졌고, 한번 더웠다 하면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올여름은 유난했다. 그러니 나비 같이 약한 생명들이 견뎌내기 힘들었을지 모른다.올여름이 얼마나 유난했냐 하면 그 독하던 미국선녀벌레가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 때에 문득 사라졌다. 미국선녀벌레란 2009년에 우리나라에 유입 된 해충으로 나무들 어린 가지에 하얗게 내린 눈처럼 달라붙어 즙을 빠는 벌레다. 알에서 깨어나 조금 자라면 선녀같이 하얀 날개로 톡톡 날아다니고, 이게 성충이 되면 탈피하여 작은 매미처럼 온갖 나무에 촘촘히 달라붙어 수액을 빤다. 이들 때문에 농촌이 너남없이 몸살을 앓는 형편이다. 농약으..

7일간의 여름 한때

7일간의 여름 한때 권영상 매미 울음소리가 창문을 타고 밀려 들려온다. 오래된 아파트라 숲이 많다. 숲 안엔 매미들도 많다. 매미들은 숲에만 머물지 않는다. 가끔 창문 방충방까지 날아와 거실 안에다 대고 그 특유의 여름노래를 부른다. 그래도 시끄럽지 않다. 오히려 날아갈까 봐 가만가만 자리를 비킨다.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1시 반쯤이면 산책삼아 아파트 후문 느티나무 숲길로 나간다. 숲이 온통 매미 울음소리로 출렁거린다. 어떻게 들으면 소낙비 소리 같고, 강물소리 같고, 해저음처럼 거대한 지축을 흔드는 소리 같다. 그러다가도 또 어찌 들으면 잔잔한 호수에 나와 선 듯 고요하다. 놀라운 거는 이 커다란 울음도 다른 생각에 잠시 빠지면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 엄청난 목청으로 숲을 들먹이는 데..

지구와 지구인의 엇박자

지구와 지구인의 엇박자 권영상 “저기 저 나무들 좀 봐. 이상해.” 옆자리에 앉은 아내가 고속도로 변에 줄지어 서 있는 메타세콰이어를 가리킨다. 날씨가 너무 더위 말라죽는 게 아닐까, 아내가 재차 걱정이다. 얼핏 보기에도 나무 빛깔이 단풍이 든 것처럼 붉다. 아니 붉으데데하다. 길을 따라가며 서 있는 수십 그루의 메타세콰이어들이 지금 한창이어야할 초록색을 잃어가고 있다. 양지 인터체인지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안성 시골집으로 가는 국도에 들어섰다. 서울을 벗어났다고 특별히 시원하지 않다. 차창을 열 때마다 훅, 몰려들어오는 폭염에 놀라 얼른 창을 올린다. 지구 온난화 시대를 지나 지금은 ‘지구가 끓는 시대’라던 유엔기구 수장의 말이 실감날 정도다. 안성집에 들어서자마자 내 눈에 불쑥 띄는 게 있었다. 울타..

이비인후과가 있는 빌딩에서

이비인후과가 있는 빌딩에서 권영상 날이 조금 누그러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덥다. 창문을 열어놓고 잠을 자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붓는다. 활동을 하면 괜찮아지지만 아침마다 반복되는 게 불편하다. 아내가 이비인후과에 한 번 가 보라고 등을 떠민다. 마침 이런 저런 볼일도 있고 해 겸사겸사 집을 나섰다. 아파트 후문으로 향하는 관리소 뒷길에 들어설 때다. 단풍나무 그늘 등의자에 노부부가 앉아 있다. 그분들을 방해할까봐 조용히 지나쳤다. 병원을 향해 걸어가며 나는 들고 온 이런 저런 볼일들을 봤다. 모임에 낼 연회비를 빠뜨린 것이 있어 농협에 들렀다. 그쪽에 간 김에 고장난 샤워기를 철물가게에서 사고, 돌아오는 길에 이비인후과 병원이 있는 빌딩 안으로 들어섰다. 병원은 6층이었다. 나는 위층에 올라가 있는..

오래된 역사를 방문하다

오래된 역사를 방문하다 권영상 폭우로 유실된 다리가 20여 일만에 드디어 복구가 됐다. 나는 그 동안 14 킬로나 되는 먼 거리를 승용차로 빙 돌아다녀야 했다. 14 킬리미터라면 먼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이 더욱 멀게 느껴진 건 다리가 코 앞에서 유실 됐기 때문이다. 집에서 불과 200여 미터 거리다. 나는 그 길을 서울에서 엿새에 한 번꼴로 오갔다. 길은 말끔한 포장길이지만 다리는 오래 되어 부실했던 모양이다. 다리를 해체하기 전에 논의 일부를 메우고 둥근 콘크리트 관으로 임시 다리를 놓았다. 불편하기는 해도 그 길 외에 다른 길은 없었다. 그러던 게 지난 달 14일쯤이었다. 안성 집 앞까지 왔을 때다. 형광막대를 든 분이 길을 막아섰다. 그 분 뒤에 노란 접근 금지 테이프가 길을 가로질러 쳐져 있었다..

우울한 여름

우울한 여름 권영상 30대 후반의 일이다. 그때 내게는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시골로 이주하겠다고 했다. 그것도 서울서 먼 지리산 근방 산속 마을이었다.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될 자식을 학교 공부에 시달리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반 아이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자연을 접하며 성장할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방에서 서울로 갓 올라와 교편을 잡은 나로서는 멀쩡한 직장을 버리고, 자식을 위해 낯선 시골로 내려간다는 그의 말이 듣기에 조금 불편했다. 어디 가든 경쟁이란 있고, 오히려 자식을 세상에 뒤쳐지게 하는, 나중에 자식으로부터 원망 듣는 일이 될 지도 모른다며 나는 그의 결정을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직장을 버리고, 아내와 자식..

기껏 토마토 12개를 위해

기껏 토마토 12개를 위해 권영상 연일 폭우다. 폭우는 점점 거칠어지고 양은 해마다 많아진다. 우리나라가 지금 여름비의 한복판으로 질주하듯 달려들고 있다. 틈을 내어 바깥에 잠깐 나가 호미를 잡고 들어오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그때마다 찬물 샤워로 펄펄 끓는 몸을 식힌다. 거친 여름비와 폭염, 예년에도 이랬나 싶게 여름이 점점 거칠어진다. 안성 일을 보고 빗길을 달려 서울로 올라오면 또 안성 걱정이다. 거기엔 많지는 않아도 12포기 심어 키우는 토마토가 있고, 강낭콩 여섯 줄이 있다. 둘 다 장맛비에 약한 작물이다. 비가 내려 토양에 수분이 많아지면 토마토는 수분 흡수가 높아져 껍질이 터진다. 상처 난 토마토는 폭염에 견디지 못하고 이내 상한다. 강낭콩도 마찬가지다. 비에 쓰러져 꼬투리가 흙에 닿..

비 내리는 날의 산행

비 내리는 날의 산행 권영상 “비 내리는 한여름에 등산은 무슨!” 여름 산행을 위해 배낭을 꾸리는 나를 보면 아내는 늘 그랬다. 서울이 맑다고 설악산도 맑을까. 이 말은 내 산행을 가로막으려는 아내의 논리다. 그래도 나는 또 뭔 배짱이 있어 한번 간다면 가고 만다. “비 내리는 날의 산도 산이잖아. 덥지도 않고.” 나는 그쯤 말로 아내를 달래고 집을 나선다. 여름 등산은 당연히 비 아니면 쨍이다. 쨍한 날의 등산은 쨍해 좋지만 비 오늘 날의 등산은 또 나름대로 쨍한 날에 경험하는 못하는 기쁨이 있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나도 오랫동안 가급적 쨍한 날을 가려 산행을 해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겪는 게 있다.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인제 용대리나 양양 오색에 도착하고 보면 비를 만나기 일쑤다.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