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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상 '상상 동시가게' 연재동시 3회

권영상의 가을호 우리는 지금 시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AI가 성장하면서부터 세상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바뀌고 있네요. AI가 사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생각하는 AI가 태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면 아이들을 달이나 목성으로 체험학습 보내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고구려나 발해가 번성하던 시절로 되돌아가 보거나 수메르의 길가메시 왕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오게 될 지도 모르겠네요. 휴대폰으로 책이며 케이크며 자장면이며 벌거 별거 다 즉석 첨부해 보내는 세상이 온다면, 그런 상상도 한번 해 봅니다. 우리는 지금 조금씩 조금씩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11. 요청 매미들이 벗어놓고 간 옷이 여기저..

한가위 추석 잘 쇠세요

한가위 추석, 잘 쇠세요 누가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해마다 한가위 추석이 슬며시 오네요. 누가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하늘은 커다란 달덩이를 선물처럼 보내오고요. 누가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대추나무는 대추를 붉게 익혀 놓고 토란은 토란국 먹기 좋게 살을 찌웠네요. 누가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세월은 내 얼굴 위에 주름살 하나 슬며시 올려놓았군요. 누가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가을은 노란 볕을 부어내리시고 파란 가을을 저렇게 높은 하늘에 펼쳐 놓았네요. 세월은 가고 오는 것 누군가에게 감사합니다. 그 말을 해야할 때가 왔습니다.

버리고 싶은 이름

버리고 싶은 이름들 권영상 짬 좀 내어 논벌에 나가 봐야지, 했는데 여태껏 그 일을 못했다.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벼가 익는 논벌이다. 그런데도 뭐가 바쁜지 내일, 내일, 하다가 오늘에야 틈을 냈다. 요기 대여섯 집을 지나면 언덕이 나오고 언덕을 넘으면 논벌인 벽장골이 펼쳐진다. 신발 끈을 조일 겸 따가운 가을볕을 피해 나무 그늘에 들어섰다. 거기 앉아 풀린 운동화를 조이고 일어서며 보니 나를 가려준 나무가 뽕나무다. 논벌을 내다보는 밭둑에 커다란 뽕나무 한 그루. 가끔 이 길을 지나다녔지만 여기에 뽕나무가 서 있는 줄은 몰랐다. 괜히 뽕나무를 한 바퀴 빙 돌아본다. 예전 딸아이가 어렸을 때다. 나무만 보면 아빠랍시고 나무 이름을 가르쳐주던 때가 있었다. 밭 가생이에 선 뽕나무를 보자, 이게 뽕나무다, ..

상상의 힘과 스토리텔링

상상의 힘과 스토리텔링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발표자, 권영상) 1. 일연, 어떤 분인가 일연은 고려 21대 희종 2년(1206) 경상도 경산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꿈에 어머니의 몸에 사흘 동안 해가 비춘 뒤 태어났다고 한다. 이 해는 칭기즈칸이 몽골제국을 건설한 해이며, 일연은 태어나면서부터 고려 무신정권(1170년-1270년)과 몽골 침입(1231년-1270년)의 한 복판에서 살았다. 9살에 현 광주광역시 인근 무량사로 출가하였으며, 14살에 설악산 진전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22살에 승과에 합격하고 대구 비슬산을 중심으로 수행하였다. 78세에 국사가 되었고, 이듬해 왕의 곁을 물러나 지금의 군위에 있는 인각사로 내려왔다. 군위에는 아들을 출가시킨 뒤 홀로 70년을 사신 노모가 있었다. 그러나 안타..

문학비평 2023.09.19

고양이를 혼내키면 호랑이가 온다

고양이를 혼내키면 호랑이가 온다 권영상 무심코 창문 밖을 내다본다. 그 놈이 간다. 털빛이 하얀 능글맞은 길고양이다. 데크 앞, 텃밭 이쪽과 저쪽으로 내가 늘 지나다니는 마당길을 마치 제 길처럼 가고 있다. “이 놈!” 소리쳐 을러메어본다. 발걸음을 멈춘 흰털 고양이가 데크 난간 사이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더니 대꾸하기 싫은 모양이다. 세상에 초연한 표범처럼 유유히 가던 길을 간다. 전엔 이 놈! 하면 놀라 냅다 달아나던 녀석이 요샌 들은 척 만 척이다. 내가 저를 향해 쫓아가는 흉내를 내도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실없이 왜 그러냐는 투로 느긋하게 걸어 울타리 사이로 빠져나간다. 아니, 저 놈이! 항상 안달하는 쪽은 나다. 영물이 그렇듯 고양이도 나이 먹을수록 사람의 심리를 꿰뚫는 듯하다. 요기 대여섯 집 마..

개구리에겐 껑충이 있다

개구리에겐 껑충이 있다 권영상 점심을 먹고 일어설 때다. 거실에 난데없이 개구리 한 놈이 나타났다. 그는 보란 듯이 껑충 뛰어 접어놓은 매트 위에 올라앉았다. 그러더니 또 붕 날아 방바닥에 뛰어내렸다. 아니 웬 개구리래? 나도 아내도 깜짝 놀랐다. 물가에서 노는 개구리를 방안에서 만나다니! 날벌레 때문에 출입문에 방충망을 설치해 놓았는데 잠시 열린 사이로 들어온 모양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방안에 뛰어든 개구리는 정말 처음이다. 토끼라면 혹 모를까. 왕방울 눈을 가진 풀빛 참개구리다. 덩치가 크고, 잘 생겼다. 징그럽거나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린 시절에 데리고 놀던 그 친숙감이 깨어났다. 고향집 앞으론 꽤 큰 물도랑이 흘렀는데 고마리 풀숲엔 개구리가 많았다. 장난기가 돌면 그 큰 개구리들..

아동문학가 권영상 선생님과 함께

특집 1. 작가 인터뷰 (11) 아동문학가 권영상 선생님과 함께 -대담 엄소희 엄소희: 선생님, 안녕하세요? 바쁘실 텐데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지요? 권영상: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엄소희 시인과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저도 반갑고 고맙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 선생님, 동시 쓰신지 오래 되셨지요? 음, 1979년에 등단하셨으니 올해로 44년이나 되셨네요. 저도 동시를 쓰면서 늘 궁금한 게 있어요. 동심이에요. 동시가 동심을 바탕으로 쓰여지는 시라는 건 누구나 아실 텐데. 초보적인 질문 같지만 동심이란 뭔가요? 권: 저도 그걸 한 마디로 말씀드리기가 머뭇거려집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소개해요. 아빠를 배웅하러 엄마랑 공항..

문학비평 2023.09.08

전기가 나갔다

전기가 나갔다 권영상 어제다. 아파트 관리소에서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안전검사와 보완공사로 오늘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정전이라는 내용이었다. 그건 며칠 전부터 엘리베이터 게시판에서 보아왔다. 그때만 해도 아, 그런 모양이구나 하고 말았다. 근데 오늘, 아침 산행을 마치고 9시쯤 돌아와 보니 사람들이 아파트를 떠나고 있고, 엘리베이터는 멈추어 있었다. 계단을 걸어 오르는 내게 정전의 현실감이 느껴졌다.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가려던 곳을 떠올렸으나 막상 가려니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았다. 식사나 하려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나의 바깥 세상과 관계해 보려는 생각을 버렸다. 그리고 가을이 들어서고 있는 오늘 하루를 차분히 생각했다.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거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