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의 <상상 동시 가게> 가을호
우리는 지금 시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AI가 성장하면서부터 세상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바뀌고 있네요.
AI가 사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생각하는 AI가 태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면 아이들을 달이나 목성으로 체험학습 보내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고구려나 발해가 번성하던 시절로 되돌아가 보거나 수메르의 길가메시 왕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오게 될 지도 모르겠네요.
휴대폰으로 책이며 케이크며 자장면이며 벌거 별거 다 즉석 첨부해 보내는 세상이 온다면, 그런 상상도 한번 해 봅니다.
우리는 지금 조금씩 조금씩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11. 요청
매미들이
벗어놓고 간 옷이
여기저기
숲속 나무둥치에 걸려있네요.
내년엔
옷이 모자라는 이웃을 위해
기증한 후
떠나가기를 요청해 보겠습니다.
-사랑나무나눔회
12. 멋진 달님
달님은
멋을 좀 아는 분이다.
때로는 눈썹만 살짝 그렸다가
얼굴이 반쪽이 되도록 살을 뺐다가
둥그렇게 웃어보이다가
오늘은 실금처럼 몸매가 가늘다.
어떨 때는
붉은 옷을 멋지게 소화해 내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돋을무늬 청색 치마로
신비로운 멋을 뿜어내기도 한다.
조심스런 생각이지만
달님은 확실히 예사로운 분이 아니다.
여태껏 이만큼
자신을 멋지게 바꿀 줄 아는 분을
우리는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 달님연구소
13. 달님지기를 구합니다
보름달로
이주해 가실 분을 찾습니다.
그 동안 살던 토끼는
너무 연로하여 귀환하였습니다.
그 분의 빈자리를 지켜주실
젊은 달님지기를 찾습니다.
달님이 길은 잃지 않는지
시간을 놓치지 않는지
그 일을 보살펴 드리면 되지요.
밤마다 달님 쳐다보시는 분이 많은 만큼
옷차림이 깨끗해야겠어요.
외로움을 이겨낼 만큼
건강해야 하고
달님을 찾는 지구촌 방문객들에게
친절을 베풀 줄 아는 분이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14.오늘을 수선해주세요
보내주신
소중한 오늘을
실수로 잘못 사용하였습니다.
너무 설레는 마음에
섣불리 다루다가 그만 망가뜨렸네요.
고쳐보려 애썼지만
망그러진 부분을
되돌려 놓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오래 전부터 바라던
그 미래라서
함부로 버릴 수 없군요.
새 것처럼 고쳐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오늘을 보내드립니다.
수선과 함께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5. 서쪽, 꿈으로 가는 배
꿈을 꾸고 싶으시다고요?
그렇다면 초승달 밤배를 타세요.
초승달 밤배는 서쪽, 꿈으로 가는 배입니다.
그 배를 타시면
당신을 꿈의 나라로
안전하게 모셔다 드릴 겁니다.
불편을 덜어드리기 위해
저희 초승달 밤배는 여러분의
따스한 잠자리 베개 맡을 경유합니다.
잠이 오려 오려 할 때면
초승달 밤배가 조용히 뱃고동을 울리며
당신을 찾아갈 겁니다.
서쪽, 꿈이 있는 나라로 가는
티켓을 내시면 승선이 가능하며
귀항은 아침 6시 20분.
색깔있는 꿈을 기대합니다.
-초승달 밤배주식회사
계간 <동시먹는달팽이> 2023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