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비 내리는 날의 산행

권영상 2023. 7. 13. 19:41

 

 

비 내리는 날의 산행

권영상

 

 

비 내리는 한여름에 등산은 무슨!”

여름 산행을 위해 배낭을 꾸리는 나를 보면 아내는 늘 그랬다.

서울이 맑다고 설악산도 맑을까. 이 말은 내 산행을 가로막으려는 아내의 논리다. 그래도 나는 또 뭔 배짱이 있어 한번 간다면 가고 만다.

“비 내리는 날의 산도 산이잖아. 덥지도 않고.”

나는 그쯤 말로 아내를 달래고 집을 나선다.

 

 

여름 등산은 당연히 비 아니면 쨍이다. 쨍한 날의 등산은 쨍해 좋지만 비 오늘 날의 등산은 또 나름대로 쨍한 날에 경험하는 못하는 기쁨이 있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나도 오랫동안 가급적 쨍한 날을 가려 산행을 해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겪는 게 있다.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인제 용대리나 양양 오색에 도착하고 보면 비를 만나기 일쑤다. 산행은 그렇다.

 

 

고산 아래 낯선 숙소에서 맞이하는 비 내리는 밤은 여행자를 긴장하게 한다.

그럴 때면 버너와 코펠을 들고 뜨락에 나와 커피 물을 끓인다. 코펠을 둥그렇게 감싸며 피어오르는 파란 가스 불꽃, 그 불꽃을 무연히 바라보는 시간만큼 마음의 근심을 잊게 하는 것도 없다. 나이 들면서 오랫동안 번거로운 취사도구며 침낭은 두고 다녔다.

그래도 간편한 가스버너와 코펠만은 넣어 가지고 다닌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고적감이 밀려올 때 커피물 끓이는 일도 고적감 뒤에 얻는 소박한 행복이다. 버너와 코펠, 아무리 산행이 힘들어도 빠뜨릴 수 없는 마지막 장비가 아닌가 싶다.

 

 

그 어떤 여행자도 비 내리는 캄캄한 밤과 마주하면 마음이 심란하다. 그럴 때에 코펠 안에서 볼볼볼 끓어오르는 작은 물방울을 보는 일도 좋다. 코펠 바닥에서 생겨나고 사라지고 생겨나고 다시 사라지는 그 끝없는 반복의 단조로움.

그런 단조로운 반복은 나를 상념의 세계로 안내한다.

살아온 어느 지점으로 나를 데려간다. 그 어느 산길로, 그 어느 미술관 뒷길로, 사랑으로, 눈 내리는 겨울로, 어느 밤을 달리는 열차의 객실로, 어느 단풍나무 숲길로…….

 

 

아침에 눈을 뜨면 비는 여전히 억수로 내린다.

우의를 걸치고 빗속에 들어선다. 몸이 섬뜩한 비장감을 느낀다. 계곡물은 간밤에 내린 비로 우렁차고, 바윗돌을 굴릴 듯 거세다. 그 물길을 따라 꾸준히 걸어 오른다. 물살에 길이 끊어진 곳에서는 바지를 벗고, 신발 끈을 다시 묶고, 굴러 내린 바윗돌을 빙 돌아 산등성이를 향해 오른다.

가파른 능선에 올라서면 비로소 비도 그친다. 외설악에서 일어난 하얀 산안개가 유연히 능선을 타고 넘는다. 사위는 금방 산안개에 둘러싸이고, 하얀 안개 위로 불쑥불쑥 솟은 산봉우리들이 여기저기 얼굴을 내보인다.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쯤 자옥한 안개 속에서 금강초롱, 마타리, 솜다리들이 호젓이 꽃 피고 있을 테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산의 전부는 아니다. 생명은 지리한 장맛비 속에서도 본연의 습성을 버리지 않는다.

 

 

하루 일정이면 될 코스를 비 때문에 늦어져 대피소나 산장에서 숙박할 때가 있다.

인적이 끊긴 깊은 산, 홀로 산장에 머무는 일은 적막 그 자체다. 그럴 때에도 커피물을 끓이기 위해 켜 놓은 가스버너의 파란 불은 적잖은 위로가 된다. 불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이 지상을 떠나가 살게 될 먼별을 생각한다. 거기서도 나는 여전히 혼자 산을 타고, 혼자 길을 걷고 있을지 모르겠다.

 

<교차로 신문> 2023년 7월 13일자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울한 여름  (0) 2023.07.24
기껏 토마토 12개를 위해  (0) 2023.07.18
점심에는 감자를 먹다  (0) 2023.07.05
비 내리는 날의 풍경  (0) 2023.06.30
기다림이 끝나는 신호  (0) 2023.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