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 끝나는 신호
권영상
아침에 일어나면 텃밭 생강두둑부터 나가본다.
농사일이 힘들다 해도 생강 순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일만큼 힘들까. 아침저녁으로 물을 충분히 주지만 아직도 그들은 감감무소식이다. 강황 심은 두둑 역시 그렇다.
생강과 강황은 지난 4월 19일에 심었다.
심은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이들의 늦은 출현이 잔인하다. 성장하기 좋은 계절을 외면하고 두 달씩이나 컴컴한 땅속에 머물러 있다. 남쪽 아열대가 그들의 고향이라 해도 우리나라 5월과 6월 기온도 그리 만만치 않다.
지난해에도 그들을 기다리는데 봄을 다 바쳤다. 그때에도 새순이 나오는 데 50여일이 걸렸다. 그때는 처음이라 이들 두둑을 파헤쳐 보고 싶은 유혹을 수시로 느꼈다. 식탁에 올라오는 생강이며 강황에 이런 기다림이 숨어있음을 누가 알까. 그때에 겪은 경험이 있어 올해엔 일찌감치 씨앗을 구해 눈을 틔워 심었지만 마찬가지다. 두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근데 오늘 나가보니 어제까지 안 보이던 순이 뾰족뾰족 나온다.
고맙구나! 나도 모르게 고맙다는 말이 불쑥 튀어 나왔다. 나는 허리를 숙여 생강이며 강황 순을 들여다 본다. 뾰족하니 잎을 말아가지고 죽순처럼 나오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나는 일은 기쁘다. 그들 앞에 무릎을 꿇다.
텃밭을 돌아 나올 때다. 건너편 산에 검은등뻐꾸기가 왔다.
참나무 초록 숲에서 우는 그의 네 음절 목청이 유리병 속을 드나드는 바람처럼 투명하다. 맑다. 오랜 기다림 끝의 축복처럼 산뜻하다.
검은등뻐꾸기가 울면 모내기가 끝난다고 했는데 그 말고 하나 더 있다. 검은등뻐꾸기가 울면 지루한 기다림 끝에 생강이며 강황 순이 나온다.
생명이 세상에 나오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차야 나오는 거지 절대 늦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다 때가 되어야 나오는 편인데 사람만이 조급해할 뿐이다.
언젠가 봄날 장터에 나갔다가 나무시장에서 앵두나무 묘목을 봤다. 문득 고향 뒤란의 앵두나무가 떠올라 앵두묘목을 샀다. 앵두를 따먹던 그 옛날의 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뜰 안에 앵두나무를 심어 놓고 나는 앵두 익기를 기다렸지만 해마다 허사였다. 조닥조닥 앵두가 열리지만 언제 보면 익기도 전에 다 떨어지고 없다. 이식한 유실수나무 열매를 보자면 3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걸 몰랐던 거다. 금방 따먹겠는 내 욕심을 알고 앵두나무가 속으로 얼마나 웃었을까,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앵두나무 곁에 가까이 가기가 부끄럽다.
내 방 창가엔 보기좋게 으름덩굴이 자란다.
‘여보 이제 우리 으름 먹겠다.’
으름나무를 사들고 가던 어느 부인의 말에 솔깃해 으름이 뭔지도 모르면서 5년생 으름을 사다가 창가에 심었다. 해마다 줄기만 번창하게 자라 올랐지 으름은 열리지 않았다. 심은 지 9년을 넘긴 지난해 겨우 으름 하나가 열렸다. 지난해에 으름 노릇을 했으니 올해도 으름 노릇을 하겠다, 하며 기다린다.
작물이나 나무를 키우면서 내가 낳아놓은 자식이 자식 되는 일을 옆에서 기다린다. 생강이며 강황 순 기다리는 게 힘들다 하지만 자식 되는 일을 지켜보는 기다림은 가히 도의 길을 가는 것만큼 힘들다. 생강이며 강황 순이 나올 쯤 검은등뻐꾸기가 그 기다림의 끝을 알려주는 것처럼 사람의 일에도 빛나는 신호가 있어주면 좋겠다.
<교차로신문> 2023년 6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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