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건대 하늘의 도움으로 부디
권영상
작은형수님 생신이 다가온다.
음력으로 오월 초나흘. 단오 하루 전날이다. 작은형님이 살아계실 때는 생신 날짜를 몰랐다. 가신 뒤에야 알게 됐다. 그로부터 나는 몇 번 형수님 생신에 찾아뵈었다.
초나흘이 되려면 아직 열흘쯤 남았지만 올해는 좀 일찍, 그러니까 내일 뵈러 갈 참이다. 보름 전에 작은형수님과 통화할 때만 해도 생신에 내려가겠다고 말씀 드렸었다.
그때 형수님은 마당에서 넘어져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그것도 연세 많은 분들이 가장 경계하는 고관절 손상으로 중환자실에 계셨다. 나는 간병인을 통해 어찌어찌 형수님과 간신히 통화를 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간 형수님을 영영 뵙지 못 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나를 휩쌌다.
형수님 목소리가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어눌하고 힘이 없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희망을 드리려고 생신에 찾아뵈러 가겠다는 말씀을 드렸었다. 올해로 형수님 연세가 여든 하나. 장수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턱없이 젊지만 상태가 위중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생신 때까지 늑장부릴 게제가 아니었다.
지난 해 까지만도 건강하셨다. 농사일을 손수 하시지는 못 해도 철철이 수확하신 산물을 챙겨 보내셨다. 두릅 철이면 두릅, 햇감자 철이면 햇감자, 옥수수 철이면 옥수수, 참깨 밭에 참깨도 가꾸셔서 참기름을 짜 택배로 보내셨다.
“이렇게 보내드릴 수 있어 너무너무 행복하네요.”
그 어느 때부터 작은형수님은 택배 보내는 일을 ‘행복’이라 하셨다. “어머니 못하시던 일을 제가 해 드릴 수 있으니 그게 행복이지요.” 형수님 목소리에 행복이 묻어있었다.
작은형님과 막내인 나 사이엔 15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작은형님은 나를 업신여기지 않으셨고, 늘 존중해주셨다. 내가 이집트나 인도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따로 나를 불러 나의 여행담을 즐겨 듣곤 하셨다.
그런 때문인지 작은형수님도 어머니가 연로하셔서 막내인 내게 못 다 하신 일을 대신 챙겨주는 걸 즐거워하셨다.
작은형수님은 지난 십여 년 동안 내 생일을 챙기느라 해마다 ‘생일 택배’를 따로 보내셨다. 생일 택배 속엔 생일 밥을 지을 찹쌀과 붉고 고운 팥과 시장에서 사신 동해안 마른 미역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단 한 번도 그냥 넘기신 적 없는 생일축의금!
“마음만 보내주셔도 형수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드릴 때마다 형수님은 매번 똑 같이 대답하셨다.
“즐거워서 보내드리는 거니 나의 이 행복을 빼앗지 마세요.”
여태까지 작은형수님이 보내신 택배 속 그 많은 행복은 형수님이 직접 가꾸고 만드신 거였다. 그것은 형수님과 함께 한 긴 여름날과 한숨과 땡볕과 고단한 생애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형수님의 행복을 택배 속에서 하나하나 꺼낼 때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다.
그 작은형수님이 지금 중환자실에서 나와 잠깐 집에 와 계신다. 사흘 뒤엔 다시 입원해야 한다니 시간을 늦잡죌 때가 아니다.
형수님 입에 맞는 음식이며, 좋은 날 출입할 때 입으실 옷이며, 생신 선물을 준비하는 마음이 즐겁지만은 않다. 기도하건대 하늘의 도움으로 부디 다시 일어나셔서 택배 보내는 행복을 오래오래 누리셨으면 좋겠다.
<교차로신문>2023년 6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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