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시계
권영상
오늘, 탁상시계가 늘 해오던 임무를 멈추었다.
이럴 날이 올 줄 알았다. 느낌에 수명이 다 한 듯 하다. 그간 몇 번의 사고가 있었다. 결정적인 건 지난 금요일 줌 시상식을 앞두고 있을 때다.
담당자로부터 오후 7시 모임에 나와 간단한 인사말을 좀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후배가 문학상을 받는 시상식 자리였다. 그러잖아도 축하인사 한 마디쯤 해 드려야할 이유가 있어 시상식 시간을 기다렸다.
10분 전에 들어와 달라는 말대로 10분쯤 남겨놓고 줌 바로가기를 눌렀다. 아이디와 그쪽에서 준 비번을 넣으면 곧장 입장이 되었는데 뜬금없이 이메일 주소와 비번을 넣으라는 거다. 한번 넣은 비번이 틀리자 자꾸 틀렸다. 시계를 보니 7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아내가 내 방 문을 삐끔히 열었다. 벌써 7시 10분인데 왜 아직도 안 들어가고 있냐며 의아히 나를 바라봤다.
10분은 뭔 10분! 이제 7신데. 나는 탁상시계를 가리켰다.
그때에야 탁상시계의 느린 시간이 떠올랐다. 컴퓨터 하단 줄의 시간을 봤다. 7시 10분이 아니라 벌써 15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저쪽의 행사가 혹시 나 때문에 지연될까봐 휴대폰으로 사정상 불참할 수밖에 없다는 문자 메시지를 급히 보냈다.
지난번에도 탁상시계 때문에 모임에 턱없이 늦은 적이 있었다.
시계를 바꾸어야지, 하면서도 나는 그런 나의 생각을 또 밀막았다. 지금 살고 있는 나의 시간은 직장에 다닐 때의 시간과 턱없이 다르다. 좀 늦어도 되고, 좀 늦는다 해도 별 큰 문제 생길 일도 없는 느슨한 시간이다. 또 하나, 그 생각을 밀막는 이유는 시계에 켜켜이 쌓여있는 시계와 함께한 나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 탁상시계가 내 책상 위에 놓인 지 올해로 36년째이다. 그때 나는 전세로 얻은 집이긴 해도 깨끗한 아파트에 입주했고, 집들이로 직장 동료들을 초대했다. 그때의 내 직장은 서울로 이주한 첫 직장이었고, 그해 나는 딸을 얻었다. 이 탁상시계는 그때 같은 직장 같은 학과 동료들로부터 받은 집들이와 취업과 딸을 얻은 축하선물이다.
그날로부터 나는 이 탁상시계를 내 책상에 올려놓고 이 시계와 함께 그 긴 세월을 글을 쓰며 살았다. 있는 듯 없는 듯 제 자리에서 내 시간을 지켜온 탁상시계는 내 심장의 일부분처럼 하루도 쉬지 않았다.
깊은 밤, 시계는 나와 함께 강물 같은 긴 시간을 첨벙첨벙 건넜고, 때로는 거룻배를 타고 가듯 출렁출렁 알 수도 없는 먼 곳으로 흘러가 아침이면 다시 돌아왔다.
그 동안 나는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겨 여러 차례 병원을 드나들었다. 그런 때에도 돌아와 보면 탁상시계는 내 책상 위에서 나를 기다려 주었다.
시계라고 다 같은 시계가 아니다. 그 안에 흘러가는 시간의 무게가 다 다르다. 추억과 사랑과 고독과 인내와 가족의 숨결이 쌓여있는 시계와 그렇지 않은 시계가 같을 수 없다. 그러니 시계의 속도가 좀 느리더라도 내가 대중하여 시계를 읽으면 되지 않을까.
시계가 나의 시간을 지키며 여기까지 와 주었다면 이제는 내가 탁상시계의 시간을 돌봐 주어야할 것 같다. 바라건대 나의 남은 날도 이 탁상시계와 함께 하고 싶다.
내일, 탁상시계를 들고 시계 가게에 한번 가 봐야겠다. 고쳐쓸 수 있다면 내 성하지 않은 몸이 그렇듯 고쳐 써야겠다. 그리고는 먼 시간 속으로 그를 의지하며 함께 가야겠다.
\<교차로신문> 2023년 6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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