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우리는 연민의 굴레 속에서 살아간다

권영상 2023. 5. 16. 12:21

 

 

 

우리는 연민의 굴레 속에서 살아간다

권영상

 

 

소나무 산비탈을 오르고 있을 때다.

머리 위에서 까치가 울었다. 쳐다보니 두 마리다. 두 마리가 내가 가는 방향의 소나무 가지를 건너뛰며 요란하게 울었다. 아마 내가 이들의 영역에 들어오는 걸 원치 않거나, 이들에게 모종의 불상사가 일어났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짖어대는 울음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잖고야 이렇게 다급하게 울 수가 없었다. 나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며 천천히 늘 오르던 길을 따라 올랐다.

 

 

웬걸, 저쪽 좁은 언덕길에 무언가가 움직였다.

털뭉치만한 새끼 까치였다. 나를 피한답시고 자꾸 내가 가는 언덕길을 앞서 걸어 올랐다. 새끼 까치와 나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어미까치 목청이 더욱 요란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저들 어미들이 내게 달려들 것 같았다.

돌아내려가기로 마음먹고 막 몸을 돌릴 때다. 새끼 까치가 길옆 찔레덩굴 그늘 밑으로 뛰어들었다. 그걸 보자, 나는 못 본 척 얼른 그 지점을 벗어났다.

 

 

그제야 짓궂게 울어대던 울음소리가 그쳤다. 근데 이번엔 그들 울음소리가 저쪽 언덕 위에서 요란하게 들려왔다. 찔레덩굴로 숨어든 새끼를 어떻게 보호할 생각은 않고 다른 곳에 날아가 또 저렇게 울어대다니!

그러는 내 머리에 또 한 생각이 퍼뜩 들었다.

피치 못할 사건이 저 언덕 위에서 또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구나 싶었다.

언덕 위 커다란 아카시나무 우듬지엔 두어 채 까치집이 있다. 내가 그 언덕까지 올라가도록 까치들은 숨넘어갈 듯 그 아래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울었다. 이 숲에서 필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숲을 들여다보았다.

숲 사이로 뭔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누렁 고양이었다.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나무 사이로 지나가는 그의 입에 새끼 까치 한 마리가 물려 있었다. 고양이 꼬리를 물고 늘어질 듯 어미까치가 그 뒤를 바짝 따라가며 짖어댄다.

오늘 이들 까치집에 누군가의 침입이 있었던 모양이다.

 

 

독수리거나 새매거나 아니면 산에 사는 저기 누렁 고양이일지 모른다. 그들은 까치집에서 크는 새끼 까치를 노리고 까치집을 덮쳤거나 내가 모르는 어떤 힘으로 새끼 까치들을 자극한 게 틀림없다. 이 난데없는 침입에 새끼들은 저 높은 둥지에서 뛰어내렸을 테다. 그 중 한 마리는 내가 오르던 길 앞까지 피신을 했고, 또 누구는 어느 숲에 은신을 했고, 또 누구는 고양이에게 잡혀 물려가는  좀전의 그 까치일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자, 고양이를 뒤쫓던 까치울음도 잦아들었다. 산도 다시 조용해졌다.

산이라고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한 게 아니다. 산도 사람이 사는 마을처럼 험한 일이 늘상 일어난다. 까치네 까치집도 오늘 아침 뜻밖의 사건에 풍비박산이 났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열자, 까치네 운명 같은 일이 이 안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스쿨존을 달리던 버스가 어린이의 목숨을 가져갔고, 어느 승용차는 네 살 아기 목숨을 빼앗기도 했단다.

이런 사건은 그 한 생명의 불행만이 아니다. 그 가정은 물론 그 사회 전체를 불행에 빠뜨린다. 우리는 날마다 이런 불행을 겪으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또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까치둥지의 평온이 파탄 난 걸 보면서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조용해지는 숲이나 나나 우리나 모두 연민의 굴레 속에서 일상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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