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토마토 12개를 위해
권영상
연일 폭우다.
폭우는 점점 거칠어지고 양은 해마다 많아진다. 우리나라가 지금 여름비의 한복판으로 질주하듯 달려들고 있다. 틈을 내어 바깥에 잠깐 나가 호미를 잡고 들어오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그때마다 찬물 샤워로 펄펄 끓는 몸을 식힌다.
거친 여름비와 폭염, 예년에도 이랬나 싶게 여름이 점점 거칠어진다.
안성 일을 보고 빗길을 달려 서울로 올라오면 또 안성 걱정이다. 거기엔 많지는 않아도 12포기 심어 키우는 토마토가 있고, 강낭콩 여섯 줄이 있다. 둘 다 장맛비에 약한 작물이다. 비가 내려 토양에 수분이 많아지면 토마토는 수분 흡수가 높아져 껍질이 터진다. 상처 난 토마토는 폭염에 견디지 못하고 이내 상한다. 강낭콩도 마찬가지다. 비에 쓰러져 꼬투리가 흙에 닿으면 꼬투리 속 강낭콩은 비에 불어 금방 싹을 틔운다.
올해에 처음 안 일이 있다. 쓰러지지 않고 멀쩡하게 서 있는 강낭콩 포기의 꼬투리도 비에 흠뻑 젖으면 매달린 채로 싹을 틔운다는 사실이다. 여름이야말로 씨앗이 발아하기에 너무나 좋은 수분과 온도를 무한정 제공하는 계절이다.
비가 내릴 때에 보면 여름 장맛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한 10여분만 퍼부어도 텃밭은 금세 빗물로 차오른다. 낮은 밭고랑으로 모여든 빗물의 물머리가 빠져나갈 방향을 잃으면 밭은 호수처럼 물에 잠긴다.
집 둘레로 빙 수로가 놓여있다. 수로를 빠져나가는 빗물은 계곡물 소리처럼 철철 요란하다. 비는 호박밭 호박순을 두드린다. 지붕을 험악하게 때리다. 빗물 통을 타고 내려오며 콸콸 목쇤 소리를 낸다. 무엇보다 요란한 건 마을 분의 천여 평 고추밭이다. 모두 비닐로 멀칭이 되어 있어 빗소리는 더욱 맹렬하다.
수직으로 내리쏟아지는 폭우는 무섭다.
이틀을 더 있다가 서울로 올라와 이쪽 일에 매달려 산 지 엿새가 지났다.
충청도와 남해안 지방의 비 피해가 연일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오늘도 100밀리가 넘는 비가 중부지방으로 쏟아진단다. 우사가 잠기고, 사람 사는 집이 매몰되고, 제방이 터진다.
괜히 안성에 두고 온 토마토 12포기가 근심이다.
“그 사이 12개는 익었을 텐데…….”
우리는 기껏 토마토 12개를 잃지 않으려고 차를 몰아 안성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면서도 토마토 12개를 놓칠까 걱정 걱정이다. 사람이 다치고, 살던 집이 매몰되고, 애지중지하던 가축을 잃은 이들의 비애에 댄다면 너무도 하잘 것 없는 12개의 토마토에 우리는 매달린다.
안성 집을 지척에 두고 길이 막혔다. 멀쩡하던 다리가 폭우에 휩쓸려 갔다. 그 현장을 보려니 토마토 12개에 대한 애착이 더욱 커졌다. 우리는 결국 처음 가보는 낯설고 먼 길을 돌아 돌아 기어코 집에 당도했다.
토마토는 걱정했던 대로 빗물에 터지고 상한 것은 상했고, 강낭콩은 두들겨 맞은 듯 이랑에 쓰러져 있었다. 나는 강낭콩을 뽑고, 아내는 거두어들인 토마토의 성한 부분을 잘라 어떻게든 버리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한다.
우리가 작은 것에도 아등바등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시간과 손을 내어 먼 길을 찾아와 정성들여 키운 작물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뉴스에 집을 잃고 농토를 잃은 이들의 비통해 하는 심정을 겪어보니 진심으로 알겠다. 그분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
교차로신문 2023년 8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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