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파는 골목길 봄을 파는 골목길 권영상 아침이 또 춥다. 벗어놓은 목도리가 간절히 생각난다. 내가 유난히 추위에 대한 엄살이 있기는 하지만 춥기는 춥다. 그건 혹독했던 지난 겨울에 대한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창가에서 운동장을 내다보니 아이들은 추운 줄 모르고 농구를 한다. 나도 운동삼아.. 오동나무 연재 칼럼 2013.08.09
민달팽이를 만난 아침 민달팽이를 만난 아침 권영상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앞베란다 문을 연다. 겨울내내 화분이란 화분을 베란다에 내놓았다. 겨울볕이 짧아도 거실보다는 낫겠지 싶었다. 치자나무, 행운목, 마삭줄, 주목, 알로에, 선인장이 그들이다. 그들 말고도 주말농장에서 날라온 쪽파며 부추가 상.. 오동나무 연재 칼럼 2013.08.07
절규를 받아주는 숲 절규를 받아주는 숲 권영상 아파트 뒷문을 나서면 우면산으로 가는 오솔길이 나온다. 고속도로를 끼고 가는 길이다. 주변이 모두 느티나무 숲이다. 내가 알기에 심은 지 15~6년이 넘는 숲이다. 그런 탓에 숲이 깊다. 마을로부터 숲이 떨어져 있어 혼자 조용히 걷기엔 몹시 편안하다. 저녁 .. 오동나무 연재 칼럼 2013.08.07
한 십만 원 안 되겠니? 한 십만 원 안 되겠니? 권영상 퇴근을 하느라 충무로에서 4호선으로 환승을 했다. 자리가 없어 이쪽 출입문 곁 선반 기둥에 기대어 섰다. 전철을 기다릴 때부터 통화를 하던 사내가 맞은편에 와 서서 계속 통화 중이다. 두 역을 더 가서 그의 통화가 끝나자, 나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폈다. .. 오동나무 연재 칼럼 2013.08.06
꽃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꽃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권영상 책상 서랍을 열 때마다 목화송이를 봅니다. 서랍 귀퉁이에 목화 한 송이가 있지요. 소담스럽게 부풀어 올라 있습니다. 손으로 만지면 솜 안에 숨은 목화씨가 만져집니다. 오래 전, 고향 친척의 안마당에서 한 송이 얻어왔습니다. 하얗게 핀 목화를 .. 오동나무 연재 칼럼 2013.08.05
정종 한 병 정종 한 병 권영상 20대 후반 무렵이다. 대학은 마쳤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산다는 일이 좀 막막했다. 내 스스로 아버지 보기에 사람 구실을 못한다는 게 사뭇 부끄러웠다. 집안 살림이 빈곤해 금방이라도 밥벌이를 해야 할 형편은 아니었지만 멀쩡한 체신으로 빈둥거린다는 .. 오동나무 연재 칼럼 2013.08.05
베란다에서 크는 '타샤의 집' 베란다에서 크는 '타샤의 집' 권영상 겨울 방학이다. 창밖엔 눈이 하얗게 내려와 있다. 주차해 놓은 아파트 승용차 위에, 낙엽 진 단풍나무 위에, 길 건너 건물 옥상 위에 눈부시게 쌓여 있다. 하늘을 쳐다본다. 파란 하늘빛과 하얀 눈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 모처럼만에 보릿짚처럼 노란 .. 오동나무 연재 칼럼 2013.08.03
과장 뒤에 숨은 유머 과장 뒤에 숨은 유머 권영상 "옛날에 옛날에 방귀 잘 뀌는 며느리가 있었지." 옛날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해 놓으면 듣는 사람들 귀가 솔깃해진다. 옛날이야기라서 그렇고, 그 며느리가 며느리로서 삼가야 할 방귀를 잘 뀐다는 데에 호기심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아, 이 며느리가 시집을 오.. 오동나무 연재 칼럼 2013.08.02
엄마, 내 방 손대지마 엄마, 내 방 손대지마 권영상 방학을 맞아 딸아이가 집에 왔다. 반갑다. 넉 달만에 한 번씩 보는 딸아이는 이래저래 많이 성숙해온다. 말하는 품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의젓하다. 나이 스물을 훌쩍 넘겼으니 제 나이값을 하는 듯 하다. 그냥 밥을 먹기가 뭣한지 집에 오면 방학 두 달 동.. 오동나무 연재 칼럼 2013.08.02
행복과 불행의 차이 행복과 불행의 차이 권영상 작은형이 돌아가셨다. 일흔일곱. 갑작스럽게 다가온 암이 작은형의 목숨을 앗아갔다. 암 선고 소식을 듣자, 나는 작은형을 보러 강릉으로 내려갔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조카도 내려와 병석을 지키고 있었다. 형은 환자라기보다 늘 지켜보던 그 모습 그.. 오동나무 연재 칼럼 2013.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