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민달팽이를 만난 아침

권영상 2013. 8. 7. 14:52

 

 

민달팽이를 만난 아침

권영상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앞베란다 문을 연다. 겨울내내 화분이란 화분을 베란다에 내놓았다. 겨울볕이 짧아도 거실보다는 낫겠지 싶었다. 치자나무, 행운목, 마삭줄, 주목, 알로에, 선인장이 그들이다. 그들 말고도 주말농장에서 날라온 쪽파며 부추가 상자째 자라고 있다. 그들이 베란다에서 살고 있으니 베란다 공기는 방안 보다 푸른 빛이다.

 

서늘한 기운을 받으며 문을 여는데 베란다 타일 바닥을 기는 놈이 있다. 민달팽이다. 호기심이 일어 쪼그려 앉아, 뿔을 세우고 가는 녀석을 본다. 얼핏 보면 금방 찍, 누어놓은 닭똥 같다. 징그럽다. 순간 멈칫 하다가도 달팽이지, 하고 앉는다. 빨래 건조대로 가는 우리들의 길을 제 습성대로 느릿느릿 건넌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베란다에 민달팽이가 있다. 대체 이 녀석이 어떤 경로로 베란다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아내가 수퍼에서 사온 야채에서 옮아 온 것인지, 꽃가게에서 화분을 사올 때 묻어온 것인지. 아, 어쩌면 주말농장에서 뽑아온 김장배추를 당장 어쩌지 못하여 베란다에 들여놓았었는데, 그때 함께 따라왔을지 모르겠다. 어느 때에 보면 기린 선인장이나 난 화분 위에 하얀 체액이 반짝반짝 묻어 있었다. 그게 달팽이 체액인 줄 알고부터는 이 베란다 안에 달팽이가 우리와 함께 살고 있구나, 하며 산다.

 

 

 

어떨 때엔 베란다 상추잎에 벌레 갉힌 자국이 있었다. 또 어린 상추 순이 송두리째 없어지기도 했다. 그때는 웬 벌레겠지, 했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민달팽이 짓이 분명하다. 지난 겨울에 들여놓은 부추 상자의 부춧모도 눈에 띄게 사라졌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내 집 안에 달팽이가 살아갈 생태계가 있다는 것에 흥분이 된다.

 

 

 

예전, 아버지는 오랍뜰에 종지무를 묻어 두셨다. 봄이 오면 종지무꽃이 하얗게 피었다. 냉기가 흐르는 봄에 피어 그런지 희어도 희어도 그렇게 꽃이 흴 수 없다. 그 무렵이면 들판 보리밭 위에선 종달새가 목을 놓아 울었다. 동녘 추녀의 그림자가 창호지 맑은 문에 비칠 때까지 뱃종뱃종뱃종 울었다.

 

 

 

종달새가 울면 고개를 젖혀 뽀오얀 하늘을 턱이 아프도록 쳐다봤다. 날이라도 맑으면 파란 하늘 위에 탄환처럼 작은 점 하나가 날아올랐다가 울음을 딱 그치면 정점을 친 돌멩이처럼 보리밭으로 뛰어내렸다. 그 때, 아리도록 파란 종지무 줄기에 달팽이가 있었다.

 

 

걸음이 워낙 느려 아침해가 꽤 뜰 때까지 종지무 줄기에 붙어있다. 그쯤에서 봄볕의 온기를 느끼면 다시 구물구물 지표로 내려온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눈높이에서는 달팽이를 만날 수 없었다. 달팽이란 놈은 늘 숨어사는 은자와 같았다.

 

 

 

“바쁜 아침에 세수 안 하고 뭐해!”
아내가 또 채근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린애처럼 달팽이 가는 길 앞을 손끝으로 콩콩 울려본다. 내 신호를 들었는지 느릿느릿 방향을 튼다. 괜히 이 아침, 달팽이처럼 좀 느려터져 보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 개고, 샤워하고, 밥 먹고, 양치하고, 옷 갈아입고, 가방 챙겨들고 20분만에 후다닥 나간다. 벌써 수십 년을 아침마다 시간과 싸움하듯이 살아왔다. 그렇게 부랴부랴 집을 나가다 보면 잊고 나온 게 있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그 사이 벌써 잠긴 문을 두드려 열고 소리친다.
“어제 입은 바지 속에 지갑 있나 좀 봐줘!”

 

현관에 들어서면서 나는 또 습관처럼 서두른다.
그렇게 해서 되돌아 뛰어나가는 나의 일상이 벌써 몇 십 년인가.

 

(교차로신문 2011년 3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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