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파는 골목길
권영상
아침이 또 춥다. 벗어놓은 목도리가 간절히 생각난다. 내가 유난히 추위에 대한 엄살이 있기는 하지만 춥기는 춥다. 그건 혹독했던 지난 겨울에 대한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창가에서 운동장을 내다보니 아이들은 추운 줄 모르고 농구를 한다. 나도 운동삼아 쓱쓱 두 팔을 벌리며 운동장으로 나갔다. 아이들 열기 때문일까. 바람이 약간 소로로 할 뿐 오후의 볕이어서 그런지 봄볕은 봄볕이다. 살갗에 떨어지는 볕이 따스하다.
내친 김에 교문 바깥을 내다봤다. 노란 봄볕이 내 손을 잡아당긴다. 봄볕을 따라 교문을 나섰다. 저쪽 골목 끝에 봄꽃을 파는 차가 한 대 와 있다. 볕 좋고 목이 좋은 남쪽 커브길이다. 나는 성큼성큼 그쪽으로 갔다.
작은 트럭 위에 앵초, 수국, 고무나무, 철쭉, 제랴늄, 만데빌라 등의 꽃화분들이 쪽 놓여있다. 얼른 저를 데려 가세요, 그러는 모양새다. 꽃들이 앙증맞다. 노랗고 빨간 앵초꽃이 곱다. 꽃빛깔이 반짝, 눈에 띄도록 산뜻하고 밝다. 정말이지 얼른 하나 골라들고 싶을 만큼 귀엽고 깜찍하다. 수국도 손뼉만한 놈인데 벌써 보랏빛으로 요란히 피었다. 제랴늄이나 만데빌라는 눈이 매울 정도로 빨갛다.
마치 고추냉이를 먹은 입안처럼 활활 탄다. 겨울내내 회색빛 건물만 보아와 그런지 앙증맞은 봄꽃 화분들 때문에 이 도회의 골목이 잔뜩 봄에 젖는 듯 하다.
“야, 봄이 왔구나!”
지나는 사람들이 꽃을 보며 한 마디씩 인사를 건넨다. 소녀 적 친구를 만난 듯 반색한다. ‘꽃, 예쁘네.’, ‘앙증맞기도 해라.’, ‘꽃구경 좀 해 볼까.’, ‘귀엽기도 하지.’ 라며 모여든다. 말소리가 풍선처럼 가볍다. 유리대롱처럼 맑다. 안뜰의 햇볕처럼 환하다. 묵은 외투를 벗어낸, 무거운 목도리를 벗어낸, 기어이 겨울을 이겨낸 자의 감격의 목소리다. 예쁜 봄꽃에 물 든 것마냥 투명하고, 빛나고, 들떠 있다.
바야흐로 봄이다.
나는 꽃 트럭에 바짝 다가갔다. 괜스리 이 앙증맞은 봄을 내 책상머리에 가져다 두고 싶다는 욕심이 일었다. 이왕이면 좀 큼직한 화분이 났겠다 싶어 큰 제라늄을 골라들 때였다.
“오, 여기에 봄이 와 있네!” 하며 시장을 보아가던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왔다.
“작은 걸 사서 크게 키우는 재미지뭐.”
그러더니 덥썩 한 녀석을 골라 들었다. 수국이었다. 수국 중에서도 제일 작은 놈이었다. 그분의 그 소박한 생각에 반해 나도 얼른 작은 제라늄 화분으로 바꾸어 들었다. 얼마냐며 화분을 내밀었다. 자동차 백밀러쯤에 숨은 듯이 서 있던 꽃 주인아주머니가 그제서야 나왔다. 분홍색 스웨터를 입었는데도 봄꽃에 묻혀 그분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다.
“이천 원이에요.”
꽃 주인이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나는 꽃값을 내고 다음 사람을 위해 얼른 돌아섰다. 내 두 손안에 쏙 들어와 있는 제라늄을 본다. 불과 2천원어치의 곱고 향기나는 봄이다. 볼수록 예쁘다. 봄을 사들고 오다가 뒤를 돌아다 보았다. 사람들이 봄을 사러 꽃 자동차 쪽으로 간다. 제 엄마 손을 끌어당기는 유치원 아이, 마을버스를 타려고 서 있던 사람들도 그리로 간다. 자장면을 배달하고 오던 오토바이도 한쪽 발로 멈추고 서서 봄꽃을 건너다 본다. 누렁 강아지도 자동차 밑에 내려놓은 로즈마리와 부부초 봄향기를 킁킁킁 맡는다.
골목으로 제일 먼저 봄을 가져오는 건 꽃을 파는 자동차다. 양재동 꽃시장 꽃이 너무 비싸 광명시에서 사 온다는 이 봄은 하루에 마흔 개쯤 팔린단다. 이 작은 제랴늄이 봄에 목말라 하는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의 마음을 파릇파릇 살아오르게 하길 빌어본다.
(교차로신문 2011년 4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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