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집 5

사람을 더 믿는 새들

사람을 더 믿는 새들 권영상 차를 몰고 다랑쉬오름을 향해 달려 갈 때부터다. 조금씩 내리던 눈발이 거칠어졌다. 오름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겉잡을 수 없을 만큼 눈과 바람이 휘몰아쳤다. “저기 저 조그마한 오름이나 가 보고 말지 뭐.” 아내가 눈보라 사이로 보이는 아끈다랑쉬 오름을 가리키며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이런 날 다랑쉬오름을 오른다는 건 내가 보기에도 무리인 듯했다. 할 수 없지 뭐, 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무슨 까닭인지 눈보라가 조금씩 누그러졌다. 나는 아내를 달래어 꼭 한번 가 보고 싶었던 다랑쉬오름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좁은 계단 길을 걸어 오를수록 바람은 제주 바람답게 거세었다. 달리 바람을 피해 오를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였다. 계단 길 주변의 나무들도 바람 때문인지 키가 작았다. ..

어린 대봉시나무를 심으며

어린 대봉시나무를 심으며 권영상 안성으로 가는 길에 나무시장에 들렀다. 지난해 겨울, 뜰안 소나무 없앤 자리가 비어있다. 나무가 비면 빈 채로 그냥 두고 보는 것도 좋다. 나무가 있을 때 못 보던, 그 너머의 세상을 볼 수 있는 이점도 있다. 그렇기는 해도 울타리 바깥과 안의 경계가 사라져 허전하다. “그 자리에 대봉시나무 심어요.” 아내가 요지부동 못하게 대봉시나무로 못을 박았다. 대봉시가 붉게 익어가는 뜰안의 가을 풍경은 보기에도 좋다. 빨간 감잎 단풍도 좋지만 주렁주렁 익어가는 감을 볼 때면 아, 가을이다! 하는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기왕 심을 거면 큰 나무로 심자는 거다. 우리도 점점 나이 먹어 가는데 어린 나무를 심어 언제 감을 먹겠냐는 그 말엔 나도 동감이었다. 솔직히 10년 20년을 ..

한 해를 마무리 하며

한 해를 마무리 하며 권영상 점심을 먹고 창문을 연다. 오늘따라 길 건너편 범우리산의 까치집들이 또렷이 보인다. 산이라지만 산들과 뚝 떨어진, 바다로 말하자면 섬 같은 조그마한 산이 범우리산이다. 주로 참나무들이 모여산다. 잎이 무성할 땐 몰랐었는데 잎 다 지니, 품고 살던 까치집이 또렷이 드러난다. 모두 세 채다. 덩그러니 크다. 밤이면 그 산에 부엉이가 와 운다. 처음엔 혼자 듣는 부엉이 소리가 무서웠다. 그러나 지금은 자다가도 창문을 빠끔 열어두어 숲에서 우는 부엉이 소리를 듣는다. 잠이 안 올 때나 생각이 자꾸 깊어질 때 그때 울어주는 부엉이소리는 반갑다. 눈 내리는 새벽 추위에 최씨 아저씨네 소가 움머, 움머, 목이 쉴 정도로 울 때도, 싸늘한 하늘에 달이 혼자 외로울 때도 부엉이는 동행하듯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