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대봉시나무를 심으며
권영상
안성으로 가는 길에 나무시장에 들렀다. 지난해 겨울, 뜰안 소나무 없앤 자리가 비어있다. 나무가 비면 빈 채로 그냥 두고 보는 것도 좋다. 나무가 있을 때 못 보던, 그 너머의 세상을 볼 수 있는 이점도 있다. 그렇기는 해도 울타리 바깥과 안의 경계가 사라져 허전하다.
“그 자리에 대봉시나무 심어요.”
아내가 요지부동 못하게 대봉시나무로 못을 박았다.
대봉시가 붉게 익어가는 뜰안의 가을 풍경은 보기에도 좋다. 빨간 감잎 단풍도 좋지만 주렁주렁 익어가는 감을 볼 때면 아, 가을이다! 하는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기왕 심을 거면 큰 나무로 심자는 거다. 우리도 점점 나이 먹어 가는데 어린 나무를 심어 언제 감을 먹겠냐는 그 말엔 나도 동감이었다. 솔직히 10년 20년을 기약할 수 없는 게 우리다.
예전 고향 아버지도 감나무 한 그루를 두고 싶어 하셨다. 아버지는 감나무 대목으로 먼저 울밖에 어린 고욤나무를 심으셨다. 그때 아버지 연세가 일흔을 넘기셨을 때다. 고욤나무가 어느 정도 클 때쯤 외삼촌을 불러 감나무 접을 붙이셨다.
“언제쯤이면 감 먹을 수 있어요?”
우리는 일흔 넘은 아버지가 살아생전 이 감나무의 감을 잡수실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물었다. 그 말에 아버지는 느이들 대에 따 먹으라고 심는 거다 하셨다
그때 나는 그 까마득한 ‘느이들 대’를 생각하는 것이 힘들어 아예 감나무 감을 잊고 말았다. 그때만 해도 고향집은 대대로 사는 집이니 나무 하나 심는 데도 대체로 멀리 내다보셨다.
우리는 나무시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무를 보러 나섰다. 그때 우리 눈에 나무보다 먼저 들어온 게 있었다. 까치집이다. 까치집은 놀랍게도 주차 구획선에서 크는 나트막한 느티나무 위에 있었다.
왜 하필 여기일까. 이곳이라면 나무시장과 종묘가게, 모종시장과 화분시장을 오가는 중간에 있어 그야말로 사람들이 붐비는, 까치로 보자면 위험한 곳이다. 그곳에 기껏 한 해 살고 말 우리가 보기에도 이제는 충분한 둥지를 둥그렇고, 탄탄하게 지어올린다. 하루를 살더라도 집을 제대로 만들어 살려는 까치의 본능이 놀라웠다.
우리는 까치집을 지나 나무시장에 들어섰다. 수많은 나무들 중에서 대봉시나무를 찾았다. 원하던 대로 나이가 좀 든 나무를 골랐다. 그러나 가격표를 보고 우리는 한발 물러섰다.
“큰 나무보다 작은 묘목을 심어 키우는 재미가 실은 더 좋아요.”
안내하는 이가 우리 표정을 읽으며 옆에 있는 어린 묘목을 가리켰다.
아내의 표정이 금방 심드렁해졌다.
“아니, 이 이십만 원짜리로 주세요.”
나는 호기를 부리듯 좀 전의 대봉시나무를 턱으로 가리켰다.
“아니!” 하면서 아내가 내 말을 밀막았다.
그 사이 마음을 고쳐먹었는지 까치집 이야기를 꺼내며 어린 묘목 한 뿌리를 잡아올렸다.
결국 어린 대봉시나무 묘목을 사들고 안성으로 내려왔다. 넓게 구덩이를 파고 어린 대봉시 묘목을 심었다. 지금은 비록 작고 어리고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보잘 것 없는 나무지만 이 나무에 대봉시에 대한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한 걸음 물러서서 대봉시나무가 자라오를 먼 훗날의 하늘을 그려본다. 봄이면 감꽃이 피고, 여름이면 그 그늘에서 책을 읽고, 가을이면 붉은 대봉시가 익는 풍경이 떠오른다.
<교차로신문>2021년 3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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