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달새가 돌아올 무렵
권영상
지하전철역에서 집으로 가는 방향은 두 갈래다. 나는 늘 집과 조금 더 가까운 3번 출구를 이용한다. 그곳으로 나오면 죽 직진하여 5.6분 거리에 집이 있다. 그런데도 가끔 좀 먼 4번 출구로 나올 때가 있다. 오늘이 그렇다.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조용한 전철 안이 꼼틀, 했다. 옆자리 사내의 호주머니에서 종달새 울음소리가 났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그것도 지하전철 안에서 듣는 종달새 소리라니! 내 귀가 그 소리에 솔깃했다. 사내가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종달새 소리가 구름을 벗어난 것처럼 맑고 요란하게 울었다.
사내가 통화를 마치고, 다시 호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없던 일처럼 그 이전의 시간 속으로 돌아갔다. 저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손잡이에 매달려 침묵했다. 상황이 그러한데도 내 귀에선 여전히 그 빗종빗종빗종 종달새 소리가 들렸다.
전철은 몇 정거장을 더 달렸고, 나는 내가 내릴 역에서 내렸다. 지하 계단을 오르는 내 발길이 나도 모르게 늘 가던 3번 출구가 아닌 4번 출구를 향하고 있었다. 내 발이 지난겨울, 눈 속에서 본 보리밭을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말이 보리밭이지 한 평 남짓한 대리석 보리밭 화단이다. 화단은 모 학습지 빌딩 마당에 있다. 웬만한 빌딩이라면 그 앞에 제법 호가하는 조각 작품을 세워놓거나 명품 반송쯤 심어놓고 위엄을 과시할 텐데 거긴 다르다. 어떤 때는 목화씨를 심어 하얀 목화 꽃을 보여주고, 어떤 때는 옥수수를, 또 어떤 때는 밀이나 보리가 패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언젠가 그 화단을 돌보고 키우는 이를 만난 적이 있다.
“힘들 때 고향을 생각하시라고…….”
그러라고 고향 정서를 느끼게 하는 씨앗을 심는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그분의 말대로 고향을 생각하러가는 거다. 출구에서 불과 200여 미터. 나는 쉬엄쉬엄 그 보리밭에 당도했다.
그야말로 한 평도 안 되는 쪼끄만 대리석 화단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보리이랑이 열두 이랑. 이랑마다 보리가 파랗게 자라고 있었다. 혹한을 난 보릿잎에 살짝 손을 대어본다. 보리의 초록물이 내 손에 들 것 같이 싱그럽다.
흙 한 점 디딜 데 없는 이 도시, 종달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위압적인 빌딩들, 눈을 감으면 쏟아져 들어오는 자동차 소음, 그리고 시멘트 길을 때리는 구둣발 소리……. 그 속에서도 보리는 그 옛날의 변치않는 고향 동무들 같이 나를 맞는다. 나는 잠시 보리 곁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내가 아홉 살이거나 열 살쯤의 나로 돌아가는 듯하다.
보리밭을 두고 다시 가던 길을 간다.
보리밭이 없어지면서 종달새도 고향의 들판에서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보리를 보면 종달새가 떠오르고, 뽀오얀 봄하늘이 떠오른다. 멧둔지 근처 풀밭에 염소를 매어놓고 돌아설 때면 종달새는 높은 하늘에서 소스라치듯 울었다.
봄 하늘 높은 층계를 딛고 오르며 아침마다 울던 종달새에게 꼭 하나 미안한 것이 있다. 대체 무엇에 쓰자고 그랬는지 보리 이랑에 틀어놓은 종달새 둥지를 보면 고 따스한 알을 한두 개씩 훔쳐냈다. 철이 없어 그랬을까. 그때는 왜 그랬는지, 왜 미안한 줄 몰랐던지…….
건널목에 초록 신호가 켜진다. 건널목을 건너는 머리 위 하늘에서 불현 종달새 울음소리가 빗종빗종 쏟아져내리는 것 같다. 어느덧 3월이다. 전 같다면 종달새가 돌아올 무렵이다.
<교차로신문> 2021년 3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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