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꽃처럼 한없이 피어보고 싶다
권영상
봄비 그친 뒤, 창문을 연다.
건너편 산이 봄물이 들어 연둣빛으로 우련하다. 아파트 마당은 봄비 끝에 꽃이 지천이다. 남향에 선 목련은 개화가 한창이고, 북향에 선 목련은 꽃부리가 터져나기 직전이다. 핀 지 사나흘 된 살구꽃은 절반이 지고 있고, 홍매화는 건재하다.
긴 겨울의 일상은 이 창 너머를 바라보며 시작 되었다. 마음 놓고 세상을 나서지 못하는 시절이고 보면 늘 거실 창문 앞에 서서 다가올 봄을 기다렸다. 그때 제일 먼저 내게 봄을 전해준 건 건너편 산의 오리나무 꽃이다. 오리나무에 웬 꽃이냐 할 테지만 눈 녹고 매운 바람 슬그머니 물러서면 오리나무는 긴 꼬리 모양의 꽃을 주렁주렁 매단다. 가까이서 보면 모르지만 먼데서 보면 산은 오리나무 꽃으로 은은히 붉다.
오전 9시, 비 그친 산을 향해 집을 나선다.
엘리베이터 안에 나보다 먼저 꽃잎들이 날아 들어와 있다. 살구나무 분홍 꽃잎이다. 아파트 마당 역시 함박눈 내린 듯 흩날린 살구꽃잎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관리실과 보안등 옆에 선 살구나무 세 그루가 봄비와 바람과 어울려 저질러놓은 장난이다. 이들을 불러 따끔하게 야단을 한번 쳐도 좋겠다. 나는 꽃잎을 밟지 않으려고 까치발로 걸어 간신히 아파트 뒷문을 빠져나간다.
느티나무 오솔길에 봄풀이 파랗다.
세상으로 뛰쳐나가지 못해 우물쭈물하는 사이 봄풀들은 눈 쌓였던 땅을 밀치고 나왔다. 힘없고 두려움 많은 것은 사람들이다. 사람들만 코로나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주저 망설여왔다.
샘터에 들어서자, 봄비에 벚꽃이 만개했다. 꽃도 꽃도 참 야단스럽다. 살면서 나도 꽃처럼 이토록 야단스레 피어본 적이 있었는지. 남은 생애의 어느 봄날, 나도 꽃처럼 한없이 피어보고 싶다. 비에 젖은 벚꽃은 희고 청초하다. 흰색이 저 혼자 만들어내는 형언할 수 없는 화려함에 감탄한다. 단 이틀, 잠시 안성에 다녀온 사이 서울의 봄이 비에 뻥 터졌다. 벚꽃 어우러진 산길을 입장료도 없이 부푼 마음으로 오른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전혀 다른 군락의 나무들이 나온다. 귀에 좀 낯설겠지만 귀룽나무다. 그걸 산버들이라 하거나 이팝나무라 하는 이들이 있다. 산버들이라 하는 까닭은 아닌 봄에 푸른 잎을 피우기 때문이다. 이 산을 제일 먼저 푸른 봄물로 물들이는 나무라면 당연히 귀룽나무다. 생강나무, 오리나무, 산수유 모두 꽃을 먼저 피우는 데 반해 귀룽나무는 잎을 먼저 피워 세상의 봄을 알린다. 그런 연후에 꽃을 피운다. 귀룽나무를 이팝나무라 오해하는 까닭은 그 꽃숭어리가 희고 이팝나무만치 꽃이 그득하기 때문이다.
귀룽나무 숲으로 들어선다. 아랫세상과는 전혀 다른 낯선 세상이다. 숲은 이들이 연출해내는 연둣빛 향연으로 지금 축제 중이다. 마치 풀빛 낙원에 들어선 느낌이다. 환하고 눈이 어려 내가 먼 옛날의 소년으로 돌아간 듯하다.
산 정상엔 그 좋던 생강나무 꽃도 지고, 산수유 꽃도 진다. 아쉽지만 이들이 지지 않으면 벚꽃도 없고, 복사꽃이며 팥배나무 라일락꽃도 없다. 떠나보내야 할 것은 보내야 자두꽃도 피고 배꽃도 핀다. 빈자리는 꽃차례를 기다리는 다음 꽃이 채운다. 꽃이 지지 않으면 새로이 피어날 꽃도 없다. 그것은 너무도 소중한 세상의 이치다. 그런 탓에 시인은 낙화마저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이라 노래한다.
<교차로신문> 2021년 4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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