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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로가 사라졌다(연재 15)

(월요 이야기 동시 연재)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11. 선화공주와 서동  아버지가 용이었다  어둠이 수북수북 내리는 밤.풀잎 오두막집 앞 연못물이 흔들리면서 그 속에서 용이 나왔다.용은 몰래 풀잎 오두막집에 숨어 들어갔다.그리고 새벽닭이 울 때쯤오두막집에서 나와 연못물을 흔들며 조용히 못 속으로 사라졌다.그 후, 풀잎 오두막집에서 애기 울음소리가 났다.사내아이였다.아이는 이름도 없이 풀잎처럼 자랐다.아버지가 누구냐, 물으면 아버지가 용이라 했다.이름도 없는 풀잎 오두막집 아이는 어머니랑 둘이 뒷산에서 마를 캐어 먹고 살았다.마를 캐어 먹고 산대서 사람들은 풀잎 오두막집 아이를 맛둥방, 서동이라 불렀다.   소문이 국경을 넘어오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님이 그리 예쁘다네.”“예쁘기만 할까. 마음..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14)

(월요 이야기동시 연재)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14)  이야기의 바다를 건너다 10. 처용 역병  신라 헌강왕, 그 시절의 3월은 울담마다 살구꽃이 피었다.왕은 살구꽃 피는 마을 너머 개운포 바다가 떠올랐다.“3월 바다가 보고 싶도다!”왕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도 그럴 것이 왕에겐 고민이 있었다. 역병이다. 역병은 백성을 괴롭혔다. 역병이 휩쓸고 간 자리엔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고 쓰러졌다. 왕도 신하도 마음 놓을 날이 없었다. 그런 때였으니 3월 봄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말도 괜한 말은 아니다.짬을 낸 어느 날, 왕은 신하들과 개운포 바다에 이르렀다.살구 꽃잎 지는 분홍 봄 바다는 풍랑 뒤처럼 잔잔했고, 지친 몸이 차츰 살아날 무렵,왕은 떠나온 경주로 다시 무거운 행렬을 돌렸다.사건은 바로 그때 터졌다..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13)

(월요 이야기 동시 연재)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13)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9.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엉덩이를 만져 보다  “대왕마마, 어전 회의에 나오소서.”신하들은 꽝 닫힌 대전 문 앞에 모여와 어전회의 참석을 재촉했다.오늘만도 벌써 세 번째다.경문왕은 속 모르고 재촉하는 신하들 말이 싫어 귀를 틀어막았다.“마마, 시급한 나랏일을 마냥 늦출 수는 없나이다.”신하들은 또 닥달했다.신하들의 청은 백번 맞다.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왕은 자신의 은밀한 사정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대들끼리 하라지 않았소!”왕은 짐짓 태연한 척 그들을 내쳤다.극성스레 재촉하던 신하들도 끝내 돌아갔다.자꾸 커져가는 두 귀가 왕을 괴롭혔다.‘이건 너무도 망칙한 일이야!’왕이 된 이후, 어찌된 일인지 두 귀가 커지더니 지..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12)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8. 만파식적 섬이 온다  “섬이 온다! 섬이 온다!”바닷가에서 놀던 아이들이 소리쳤다.먼 바다에서 거북머리를 한 섬이 뭍을 향해 오고 있었다.그 소리에 놀라 강아지들이 뭘뭘뭘 쫓아 나왔다.마을 솟대 위에 앉았던 오리들이 왝왝왝 날아왔다.어른들이 워디! 워디! 하며 걸어 나왔다.다들 바닷가에 서서 이 놀랍고 신기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세상에 섬이 떠다니다니!”사람들은 넋을 놓았다.“섬이 감은사 쪽으로 가고 있다!”흰 파도를 일으키며 섬은 마치 커다란 배처럼 그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소문은 발 달린 망아지처럼 마을 경계를 넘었다.개울을 건넜다.언덕을 넘었다.그리고는 궁궐 담장을 넘어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그때가 신문왕 2년 서기 682년.“섬 하나가 감은사 쪽으로 가고 ..

풀독이 오르다

풀독이 오르다권영상   팔과 발목 부위가 빨갛게 붓는다.모기에 물린 자국처럼 몹시 가렵다. 풀독이다. 처음엔 이게 모기에게 물린 거려니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모기에게 물린 것과 다른 점이 있다. 빨갛게 부은 상처가 촘촘하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가려움과 아픈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는 물집도 생긴다. 어린아이라면 긁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요 열흘 전에도 그랬다.그때는 풀독이란 걸 아예 몰랐으니 벌레 물린 데 바르는 물약과 파스만 발랐다. 사흘이 지나도록 효과가 없었고, 통증은 더 기승을 부렸다.  참을 수 없어 서울로 올라와 병원을 찾았더니 ‘풀독’이라고 했다.시골에서 자랐으니 풀독이란 말은 들어봤다. 하지만 풀독에 걸려 보기는 처음이었다.남들은 옻나무 곁을 지나거..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11)

(월요 이야기 동시 연재)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7. 보희의 오줌 보희가 꿈을 팔다   “내 꿈 얘기 좀 들어볼래?”보희가 동생 문희 방으로 살그머니 들어섰다.바느질을 마치고, 반짇고리 실패에 바늘을 꽂을 때였다. “어떤 꿈이길래?”문희는 일어나 뜰 안으로 난 창문을 열었다. “서악에 올라 오줌을 눈 꿈이야.”문희와 나란히 서서 창밖을 내다보며 보희가 꿈 이야기를 시작했다.“언니가 오줌을?”오줌이란 말에 문희가 싱긋 웃었다.“근데 밤중에 왜 서악까지 올라가 오줌을 눈 거야?”“그러니까 꿈이지.”“그래서 어떻게 됐어? 언니.”창밖 함박꽃 봉오리도 오줌 꿈 이야기에 솔깃 부풀어 올랐다. “얼마나 많이 누었던지 오줌이 흘러내려 서라벌이 찰랑찰랑 넘쳤어.”언니도 우스운지 웃었다.“에이, 망측해라. 근데 서..

카테고리 없음 2024.08.12

햇살 속엔

햇살 속엔권영상  햇살 속엔얼마나 따스한 손길이 들어 있길래봄눈을 다 녹이고도언 땅에풀씨를 돋게 하실까. 햇살 속엔얼마나 많은 빛깔이 들어 있길래꽃씨마다 꽃빛을 넣어 주시고나중엔노을로 하늘빛을 물들이실까. 오, 햇살 속엔얼마나 많은 생명이 숨어 있길래바람과 벌레를 키우시고도 마침낸아가들 가슴에푸른 꿈을 키워 주실까.   월간 2024. 8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10)

(월요 이야기 동시 연재)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6. 평강공주와 온달 북주가 쳐들어오다  “어머니! 어머니!”대문 밖에서 돌아온 젤로가 다급하게 어머니를 불렀다.“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아요!”어머니가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왔다.긴장한 표정이었다.“얘야, 이럴 때일수록 차분해야 한다.”어머니 평강공주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너무 놀라지 마라. 지금 북주가 쳐들어오고 있다더라.”“북주라면 중원의 넓은 땅을 가진 나라인데 왜 우리 땅을 넘본대요?”“우리 고구려를 이기지 않고는 중원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그럼, 어머니! 우리가 그렇게 힘이 센 나라인가요?”“그렇다. 우리는 고구려다. 젤로야, 너는 고구려의 아들이고.”“어머니, 고구려의 아들은 힘이 세죠? 그쵸?”“그렇다.”“고구려..

내 몸에 찍힌 추억

내 몸에 찍힌 추억권영상   아내가 안성으로 내려오는 날이라 수박을 한 덩이 사두었다.냉장고에 쏙 넣을 수 있는, 둘이 먹기에 마침맞은 조고마한 수박이 마트에 따로 있었다. 예쁘게 생긴 그놈을 잘 씻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아내가 내려올 시간을 기다린다.서울 집 근처에 있는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백암까지 한 시간이다.진천행 버스는 길옆 정류장에 사람을 내려놓고는 이내 가는 버릇이 있다. 누구나 그렇듯 버스가 떠나고 난 자리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은 외롭다. 그걸 생각해 개울 둑길에 차를 세워놓고, 정류장 표지 기둥에 기대어 서서 아내를 기다린다.  묘한 게 인생이다.30대 초반, 그때의 신혼 생활도 오늘 같았다. 그때 나는 동해시에 있는 묵호읍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아내는 성남시에 직장을 두고 있었다. 청..

참새야, 미안해

참새야, 미안해권영상  참새 깃털하나길섶에 떨어졌다. 오늘밤요만큼참새가 추워하겠다.  -‘깃털’  솔직히 참새에 대해 미안한 게 많다. 내가 쓴 시들 때문이다.참새들은/ 지도를 가지고 있지./ 그걸로 마을의 경계를 넘지 않고 / 편안히 사는 데 쓰지.// 개똥지빠귀도 지도를 가지고 있지./ 그걸로 마을의 경계를 넘어/ 험난한 시베리아로/ 날아가는데 쓰지. ‘지도’라는 시다.  듣기에 따라서는 텃새와 철새의 숙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도에 얽매여 경계를 넘지 못하는 참새들을 은근히 비꼬고 있다. 나는 그때 그걸 발표해놓고 혹시 어떤 참새분이 쩝쩝 입맛을 다실까봐 걱정했다.  ‘참새의 하늘’이란 시에서는 참새는 마을 초가지붕 높이 이상의 푸른 하늘을 탐내지 않는다고 쓴 적도 있다. 그 시 역시 빈정거림이 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