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다행
권영상
시름시름 말라가던 뜰 앞의 단풍나무가 지난해 여름 끝내 죽었다. 그늘이 제법 좋던 덩치 큰 나무가 왜 그랬을까. 한쪽 가지가 시들시들 말라가더니 지난 해 여름, 남은 가지마저 잎을 떨어뜨리고 생을 마감했다. 봄 가뭄 탓이려니 하고 흠뻑 물을 주어도 봤지만 끝내 그의 생을 되돌리지 못했다.
죽은 나무라 두고 볼수록 좀 흉했다. 톱을 들고 단풍나무 근방을 서성거렸지만 그때마다 돌아섰다. 단번에 베려면 베겠지만 나무를 그 만큼 키워내는 일이란 또 어렵다. 좀 흉해도 그냥 세워두면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 것 같아 베지 못하고 겨울을 넘기고 봄을 맞았다. 뜰보리수가 제일 먼저 꽃을 피우고, 자두나무며 모과나무, 철쭉이 요란히 꽃을 피울 때도 그림자처럼 멀뚱히 서 있는 단풍나무를 베어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두었다. 베어내고 대목을 세우면 될 일을 나는 그렇게 망설였다.
죽은 단풍나무 곁에 청포도를 심으면 어떨까. 철쭉꽃이 한창일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청포도를 심어 덩굴을 올리면 청포도도 살고, 죽은 단풍나무도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울서 내려오는 길에 양재 꽃시장에 들러 청포도 두 그루를 샀다. 예전 고향집 가까이에 살던 남종이 아저씨네 청포도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남종이 아저씨네 마당귀엔 아름드리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었다. 근데 그 커다란 살구나무를 타고 우듬지까지 기어 올라간 녀석이 있었다. 청포도 덩굴이었다. 살구가 노랗게 익어 떨어지고 나면 그 자리엔 청포도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었다. 어쩌다 남종이 아저씨네 집 앞을 지나면 어린 우리들은 청포도 송이를 쳐다보며 침을 삼켰다.
“청포도 먹고 싶자?”
뒤뜰에서 일하던 남종이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장대를 들고 나오셨다. 아저씨는 긴 장대를 세워들고 주렁주렁 익은 청포도를 따 우리들 손에 한 송이씩 놓아 주셨다. 아, 그때에 맛보던 그 새콤한 청포도 맛이라니! 그 맛을 잊지 못해 가끔 찾아가면 갈 때마다 아저씨는 청포도를 따 주시곤 했다.
어떻든 그 때에 맛보던 남종이 아저씨네 그 새콤한 청포도가 떠올랐다. 나도 청포도 덩굴을 단풍나무에 올려 주렁주렁 청포도가 열리는 걸 보고 싶었다. 혹 그 옛날의 우리들처럼 이 청포도를 보고 침을 삼키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한 송이씩 따주는 남종이 아저씨가 되고 싶었다.
나는 싣고 온 청포도 묘목을 죽은 단풍나무 곁에 정성껏 심었다. 포도 덩굴이 자라 저기 높은 우듬지까지 가 닿을 때를 생각하려니 괜히 마음이 급해졌다. 꽃모종 판에 옮길 데가 없어 그냥 둔 나팔꽃 모종이 있다. 그걸 급한 대로 단풍나무 곁에 심어두면 목마른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청포도 순이 천천히 자라는 동안 나팔꽃은 쉼 없이 자라 올 여름이 오기 전에 이 단풍나무를 온통 초록덩굴로 감싸 안을 것이다.
나는 즐거워졌다. 단풍나무 곁에 뺑 돌아가며 나팔꽃 모종을 했다. 앞으로 한 달쯤 뒤면 죽은 단풍나무가 나팔꽃 덩굴로 살아날 테고, 나는 보랏빛 나팔꽃을 아침마다 싫도록 볼 것이다. 이쯤 되면 단풍나무를 안 베기 천만다행이다. 그냥 두었기에 죽은 나무도 살리고, 심을 데 없던 나팔꽃이며 청포도에 대한 기억도 살리고, 나도 꽃 보며 사는 기쁨을 누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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