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산중에서 눈빛 형형한 고양이를 만나다

권영상 2016. 5. 12. 10:39

산중에서 눈빛 형형한 고양이를 만나다

권영상

 




가파른 길을 두고 좀 에도는 산길을 천천히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느낌이 이상해 고개를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파른 길 위쪽에 고양이가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슴에 검정 얼룩 무늬가 있는 고양이다. 솔숲을 빠져나와 오리나무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이쯤에서 가끔 고양이를 만났다. 만날 때마다 섬뜩함을 느꼈다마치 내가 나타날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동네 산이긴 해도 인적 없는 산중에서, 그것도 나를 굽어보듯 빤히 내려다 보는 고양이와 딱 마주치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몸에 소름이 돋았다. 경험은 없지만 깊은 산록에서 호랑이와 마주 선 느낌이 이럴지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나는 고양이가 살생하는 걸 보며 컸다. 쥐를 잡거고, 새를 잡거고, 암탉을 물어잡는 걸 보았다. 내가 고양이한테 느끼는 이 섬뜩함은 어쩌면 육식동물의 날카로운 살육 때문이 아닐까.





고양이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빤히 나를 내려다 보았다. 응시력이 나를 포획할 듯 좀 스산했다. 눈싸움에서 져선 안 된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어 나도 빤히 고양이를 올려다 보았다. 고양이가 크고 번쩍이는 눈빛을 계속 내게 쏘았다. 섬찟함을 참지 못해 얼른 발 아래 돌멩이 하나를 집어 던졌다. 고양이가 휙 비키는 대신 능글맞도록 느릿느릿 걸어 저쪽 산등성이 너머로 가버렸다.



길고양이가 산에 올라와 야생 고양이가 된 듯 했다. 이 얼룩무늬 고양이를 여기서 본지 오래 됐다. 잊혀질만하면 가끔씩 슬그머니 내 주위에 나타났다. 잊혀질만 하다는 말은 내 입장일 테고, 고양이로는 매번, 내가 산을 오를 때마다 내 시선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 나를 지켜보았는지 모른다.





오늘은 비가 내린다.

잠이 묻은 아침 정신을 깨우려고 우산을 들고 산에 올랐다. 솔숲을 막 벗어나는 그쯤이었다. 나를 향하고 있는 알 수 없는 시선을 느꼈다. 우산을 슬며시 내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 이런 풍경이라니! 가끔 보던 그 얼룩무늬 흰 고양이가 아카시나무를 타고 있었다. 아마 사냥 중인 듯 했다. 아카시나무 위쪽을 쳐다봤다. 산비둘기다. 비둘기가 키 높이쯤 되는 삭정이에 올라앉아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 산비둘기를 잡을 모양이었다. 나는 눈을 떼지 않고 고양이를 바라봤다. 고양이가 비둘기와 반대 쪽을 타고 소리없이 올랐다. 수직의 나무를 타고있을 뿐 그건 마치 평평한 담장 위를 걷는 것과 전혀 다를 게 없는 자연스런 보행이었다. 산비둘기는 자신의 발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고양이와 비둘기의 거리가 불과 60센티미터. 몸을 웅크리는가 하더니 아니었다. 고양이가 화살처럼 휙 튕겨져 나가 산비둘기를 덮쳤다.





! 속으로 내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산비둘기가 혼비백산 날아올랐다. 너무도 놀라운 순간이었다. 산비둘기가 날아오르는 사이 고양이는 한 바퀴 원을 그리듯 허공을 돌아서는 젖은 땅에 가볍게 내려섰다. 그의 입에 비둘기 깃털이 물려있었다. 이 잠깐 사이, 비둘기는 목숨을 건졌고, 고양이는 이 우중의 산에서 아침 식사거리를 잃었다.




그 경황에도 고양이는 다 안다는 듯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도 고양이를 봤다. 고양이가 , 이 정도야그런 표정으로 나를 빤히 보더니 돌아섰다. 자신을 과시하는 듯한 예의 그 느릿느릿 걸음을 걸어 숲속으로 사라졌다.

고양이가 사라지고 나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고양이가 그 동안 나를 비둘기처럼 자신의 공격대상으로 꼼꼼히 노려보았던 건 아닐까. 포획할 듯 노려보던 그 형형한 눈빛이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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