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속삭임

권영상 2016. 4. 30. 10:10

속삭임

권영상

 

 


시골의 아침은 그냥 오는 법이 없다. 귀를 간질이듯 속살거리며 온다. 봄이 한창 무르익는 새벽 창밖에서 우는 참새소리가 그렇다. 귀이개로 귀지를 건져 올리듯 간지럽다. 종지만한 참새들은 소곤대길 좋아한다. 새벽잠이 없다. 길 건너 파란 대문집 대추나무가 참새들이 아침을 맞는 장소다. 참새 울음소리를 노래라 해야 하나 속삭임이라 해야 하나. 하여튼 참새들은 곤하게 잠든 나를 조곤조곤 깨운다. 자잘한 목소리로, 또록또록한 목소리로 어르듯이 나를 깨운다. 자연이 지어낸 자명종이다.




도회의 책상 위에 놓아둔 자명종과 다르다. 도회의 자명종이 송곳처럼 의식을 파고들거나 피로하게 한다면 시골아침의 참새는 소란하지만 소란하지 않고, 단조롭지만 단조롭지 않다. 한겨울 참새소리는 맵고 싸늘하지만 봄의 참새소리는 새로 돋는 풀잎처럼 통통하고 윤기 있고 풋풋하다. 마치 살찐 쑥맛처럼 은근하고 친밀하다. 맛있다. 귀 기울여 잘 들으면 참새소리에서 반짝이는 여울물 소리가 난다.



오늘은 눈을 뜨니 비가 온다. 빗소리가 도닥도닥 유리창을 두드린다. 대지를 깨우기 위해 오늘은 참새 대신 빗소리가 내 창가에 찾아왔다. 누운 채 빗소리를 듣는다. 웬만한 음악보다 좋다. 봄비라서 봄비답다. 발걸음이 소년의 걸음걸이처럼 재다. 장난치듯, 해찰하듯 가벼우면서도 귀엽다. 귀엽기만 한가? 때맞추어 내려주니 내심 흐뭇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늘이 어제 내가 한 일을 다 지켜본 게 분명하다.



어제는 오후 내내 나무를 심고 모종을 했다. 집둘레에 울타리를 두는 대신 듬성듬성 매실나무, 보리수나무, 자두나무, 모과나무를 심어놓았지만 한녘 허전했다. 방부목 울타리라도 둘러칠까 하다가 철쭉을 샀다. 승용차에 철쭉을 가득 싣고 와 아내와 둘이 집 둘레에 정성껏 심었다. 땅이 너무 말라 한 그루라도 잃을까봐 걱정걱정하며 공을 들였다. 철쭉을 다 심고 물을 주고, 그러고 나서 보니 집이 한결 아늑해 굳이 울타리를 하는 까닭을 알았다.



그 일을 마치고는 종묘가게에서 사온 토마토 14포기, 고추 25포기, 가지며 파프리카 모종을 냈다. 벌써 영상 29도를 오르내리는 기온이다. 비 올 때를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온상에서 키워낸 꽃모종도 했다.

저녁에 자면서 앞으로 며칠은 물주는 일에 매달려야겠다, 했는데 때맞추어 비가 내려주니 기뻐도 그냥 기쁜 게 아니다. 마른 내 몸에 촉촉하게 물이 차는 느낌이다. 흐뭇하다. 하늘이 하나하나 나의 일을 살갑게 지켜보고 있다는 게 고맙고 고맙다. 내가 할 일을 하늘이 이렇게 대신해 주니, 나는 또 나의 다른 일에 전념할 수 있다.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후연한 아침빛 사이로 제법 비가 온다. 차를 한 컵 끓여 마시고 다시 창기에 서니 비는 뜸해지고, 오호, 뜰앞 배롱나무 가지에 반짝이는 불씨 한 점 앉았다. 새다. 샛노란 가슴에 줄무늬 모자를 쓴 곤줄박이. 이른 아침 나를 찾아왔다.

곤줄박이가 쪼빗쪼빗! 운다. 배롱나무 연한 새잎이 그 소리를 듣느라 쫑긋 귀를 세운다. 나도 귀를 기울인다. 숨이 멎을 듯 달콤한 밀어다. 그러나 이것도 한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치는가 하더니 홀짝 날아간다. 새가 앉았던 가지는 텅 비고 말았지만 그 샛노란 울음소리만은 내 마음에 속삭임처럼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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