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겠다
류선열
개미가 줄을 졌다
비오겠다.
바람이 스산하다
비가 오겠다.
지금쯤 울엄마
이랑 세겠다.
콩밭 매다 말고
남은 이랑 세겠다.
새들이 낮게 난다
비오겠다.
먹구름 모여든다
비가 오겠다.
지금쯤 누야는
염소 몰고 오겠다.
하얀 염소 깜장 염소
껄쭉껄쭉 오겠다.
아버지는 늘 밭에 가 사시지요. 감자밭 이랑에 김 매고, 보리밭에 깜부기 뽑아주고, 콩밭에 콩이 크면 옥수수 대궁이에 옥수수 매달려 누릿누릿 익지요. 그걸 돌보려면 아버지는 밭에서 점심을 잡숫고, 어둠이 내리도록 콩밭을 맨 뒤 컴컴한 얼굴로 돌아오시지요.
농사짓는 집 아이들은 아버지를 보려면 밭에 가야지요. 호미를 들고 밭에서 고추랑 옥수수랑 열무랑 같이 사시니까요. 아버지만인가요? 엄마도 그렇지요. 농사짓는 집 애들도 학교 갔다오면 소 몰고, 염소 몰고 방죽에 나가 풀을 먹여야지요.
그러다가 옥수수잎에 후두두 비 내리면, 개울물에 탐방탐방 빗방울 지면, 소뿔에 토닥토닥 빗방울 내려서면 밭에 간 엄마는 옥수수잎 새에 숨고, 아버지는 콩잎 뒤에 숨고, 애들은 소를 두고 방죽 돌틈에 냉큼 숨지요.
비 오는 것 좀 봐요. 달리기 선수들처럼 들판을 뛰네요. 저쪽 도랑 너머 벼포기 한창 크는 논벌로 달아나네요. 한 줄금 후딱 비 뿌리고 간 하늘에서 쏟아지는 따가운 햇빛. 저기 동쪽 하늘을 좀 봐요.
“무지개다!”아이들이 돌틈에서 뛰쳐나오며 소리치네요. 어른들도 푸른 물 뚝뚝 지는 밭에서 나오며 무지개를 보네요. 그 소리에 들판이 언제 그랬냐는 듯 보송보송해집니다.
(소년 2016년 7월호 글 권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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