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잎의 피리
한정동
그 누가 부는지요.
갈잎의 피리
사람은 안 보이고
강 건너 저 편
이따금 파란 물결
넘실거리면
오라구 가라군지
갈새가 운다.
강가엔 아지랑이
졸고 있는데
그 누가 부는지요,
갈잎의 피리
예전이지요. 봄이 되면 갯가에 소 먹이러 나가지요. 소도 한겨울 외양간에 갇혀 소죽만 먹었으니 입맛이 있을 리 없지요. 입맛을 돋우는 데는 봄풀만한 게 없습니다. 갯가엔 새로 돋은 풀이 지천입니다. 뽀얗게 쑥이 크고, 달개비가 크고, 소루쟁이가 크고, 여뀌가 크고, 왕바랭이가 크고, 매듭풀이 크는 갯가 뚝방은 풀빛으로 파랗게 뒤덮혀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요. 연한 풀빛을 보면 왠지 마음이 설레지요. 알 수 없는 먼 곳이 그리워지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가 그리워지기도 하지요.
뚝방에 소를 풀어놓습니다. 소도 맛있는 풀 맛을 보느라 한동안은 먹는 일에 바쁘지만 소라고 뭐 사람과 다를까요. 뚝방에 배를 깔고 앉아 나처럼 갯물 건너 마을을 바라봅니다. 아지랑이에 아물아물 흔들리는 집들과 산과 그 너머 구름을 바라봅니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소를 두고 삐이삐잇 물새들 우는 갈대숲으로 내려가지요. 갈대들도 이제 막 5월의 산뜻한 봄볕을 받고 자라올라 잎이 연할 대로 연합니다. 그 연한 갈잎 한 장을 떼어 들고 들어줄 사람 하나 없는 갯숲을 향해 갈잎피리를 붑니다. 5월은 자꾸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때입니다.
(소년 2016년 5월호 글 권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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