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조지훈
순이가 달아나면
기인 담장 위로
달님이 따라오고
분이가 달아나면
기인 담장 밑으로
달님이 따라가고
하늘에 달이야 하나인데.......
순이는 달님을 데리고
집으로 가고
분이도 달님을 데리고
집으로 가고
달이 환한 밤이면 하나 둘 아이들이 동네 우물가로 모여듭니다. 분이도, 순이도, 철수, 진달이, 오동이, 명자.......
“가위 바위 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부터 합니다.
그림자밟기 놀이라도 한번 해야 잠이 올 것 같은 밤입니다. 술래가 정해지면 아이들은 술래에게 제 그림자를 밟히지 않기 위해 달아납니다. 한길로 달아나다가 골목길로, 살구나무 밑을 기다가, 방앗간을 돌다가 에쿠나 잡힐 것 같으면 깡충, 담장 그늘에 뛰어듭니다. 뒤따라오느라 숨을 할딱대던 그림자도 이제 살았습니다.
술래는 가까이서 얼씬거리는 또 다른 그림자를 잡으러 뛰어갑니다. 달음박질 잘 하는 아이들에겐 달빛이 좋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그늘이 좋겠지요. 그러나 마냥 그늘속에 숨어선 안 돼요. 열까지 세는 동안 달아나지 않으면 술래가 되거든요. 그러니 달려라! 달려라! 숨차게 달리는 것만이 살 길입니다.
그렇게 놀다가도 누구네 엄마가 부르면 놀이는 끝나고 다들 뿔뿔이 집으로 돌아갑니다. 달님은 혼자 가는 아이들 밤길이 무서울까봐 순이랑 분이랑 제 집까지 다 데려다 주지요. 어디선가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납니다. 달밤이 이슥합니다.
(소년 2015년 11월호 글 권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