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들려주는 동시이야기

첫봄

권영상 2015. 10. 29. 11:54

 

 

 

 

 

첫봄

박고경

 

  

땅바닥을

텅!

내려디디면

    

물숙하니

들어가는

힘나는 첫봄.

 

 

 

 

 

 

새해가 오면 봄도 멀지 않지요.

먼 남쪽으로 잔뜩 기울어진 해는 점점 위로 올라옵니다. 하루에 쌀알 반만큼씩 북반구를 향해 올라온다고 했습니다. 그 해가 어느 날 쿵, 하고 이 땅에 햇살보따리를 풀어놓으면 봄이 되는 것입니다.

예전 아이들은 그때까지 놀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 날리던 연을 멀리 날려버립니다. 물오리를 잡겠다며 갯숲을 뒤지던 일도 그만 둡니다. 그 대신 서리 내린 보리밭으로 가 보리를 밟아줍니다. 뿌리가 들떠 있는 보리를 밟아주지 않으면 보리는 말라죽지요.

설도 쇠었으니 나이도 한살 더 먹습니다. 나이 한 살 더 먹은 만큼 밥도 더 먹습니다. 밥 한 그릇 꽝꽝 먹은 만큼 아버지를 따라 나무를 하고, 아버지를 따라 손수레에 외양간 거름을 싣고 눈바람 몰아치던 밭에 내다부립니다. 땅은 긴 겨울 잠만 잔 것 같지만 두렁두렁 밭기슭에 겨울풀을 파랗게 키우고 있습니다.

나이 한살 더 먹었으니 쉬지 않는 땅처럼 나도 일찍 일어나야지요. 스스로 이불을 개고, 스스로 그날 할 일을 계획할 줄 알아야지요. 쌀알 반만큼씩 위로 위로 해가 올라오듯 어제보다 더 부지런해져야지요. 이 모두 바쁜 봄을 맞이할 채비입니다.

2016년 첫봄!

이제 첫봄이 멀지 않았네요.

(소년 2016년 1월호 글, 권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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