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오장환
누나야, 편지를 쓴다.
뜨락에 살구나무 올라갔더니
웃수머리 둥구나무
조그맣게 보였다.
누나가 타고간 붉은 가마는
둥구나무 샅으로 돌아갔지.
누나야, 노랗게 익은
살구도 따먹지 않고
한나절 그리워햇다.
* 웃수머리- 윗마을, 동구나무- 정자나무
* 샅 - 여기서는 ‘나뭇가지 사이로’의 뜻
누나가 멀리 시집을 갔지요.
내가 어렸을 적엔 나를 업어주었고, 길이 먼 학교길을 오갈 때엔 손을 잡아주었지요. 엄마가 집에 없을 땐 밥을 해주었고, 내 옷이 더러워지면 빨래를 해주었지요. 내가 아플 때엔 머리맡에 앉아 내 이마에 손을 얹어주던 누나였지요. 무엇보다 누나는 남동생인 나를 위해 읍내에 있는 상급학교 다니는 걸 포기했습니다.
엄마 같던 누나였지요. 그 누나가 커서 시집을 갔지요. 기차를 타고 갈 만큼 먼 곳으로.
언젠가 혼자 책상 맡에 앉아 숙제를 할 때였습니다. 읍내 기차역에서 길게 기적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누나가 타고 가며 내게 오랫동안 손을 흔들어주던 그 기차의 기적소리였습니다. 나는 갑자기 누나가 생각나 마을 산언덕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먼 곳에 있는 기차를 볼 리 없었지요.
“누나!”
누나를 불러보고는 혼자 돌아오며 울었습니다.
집에 돌아와도 공부가 안 되고, 놀아도 노는 것 같지 않게 누나가 그립기만 했지요. 그럴 때에 편지종이를 내놓고 나도 책상 맡에 앉아 누나에게 편지를 썼댔습니다. 그때는 오누이 사이가 그랬습니다.
(소년 2015년 10월호 글 권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