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들려주는 동시이야기

굴렁쇠

권영상 2015. 4. 28. 20:53

 

 

 

 

 

굴렁쇠

정우해                 

 

 

내 동무는 굴렁쇠

뜻 맞고 정들은

내 동무는 굴렁쇠.

놀 때두,

심부름 갈 때두,

언제나 안 떨어지는

내 동무는 굴렁쇠.

학교 길 십 리도,

굴렁쇠 앞세우고 나서면

먼 줄을 모르지요.

 

 

읍내에서 일을 보고 돌아오시던 아버지가 굴렁쇠 하나를 구해오셨지요. 굴렁쇠란 자전거 바퀴처럼 생긴 둥근 테 모양의 쇠입니다. 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는 집치고 그 무렵 굴렁쇠 없는 집이 없었습니다. 굵은 철사 도막의 끝을 디귿자로 구부려 바퀴에 대고 굴리면 굴려지는 게 굴렁쇠입니다. 조금만 연습하면 누구나 굴리기 쉬운 게 굴렁쇠지요.

 

처음 굴릴 땐 주로 마당을 돕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그러다가 마당이 좁고 답답해지면 마당을 나가 우물터를 돌아오고, 우물터가 너무 가깝고 만만해지면 그 다음엔 마을 큰길로 나갑니다. 굴렁굴렁굴렁 도랑에 놓인 다리를 건너고, 보리밭을 지나고, 교회당을 지나고, 마을 점방을 지나고, 이발소를 지나고, 동회를 지나다가 그만 멈추어 섭니다.

너무 먼데까지 왔습니다. 여기까지 달려온 건 굴렁쇠 때문입니다. 굴렁쇠가 동무해 주어서 이 낯선 데까지 온 겁니다. 오늘은 이쯤에서 돌아갑니다. 그리고 내일이 오면 못 다 간 그 너머의 길로 가보게 되겠지요.

 

그럴 때쯤 학급 굴렁쇠 굴리기 대회가 있었습니다. 방죽을 따라 먼 읍내 십 리 길을 돌아오는 대회였지요. 쉰 명 아이들과 함께 굴렁쇠를 굴리며 방죽을 달리던 일이 눈이 선합니다. 그때의 일등상품은 훌라후프처럼 바퀴가 큰 굴렁쇠였습니다. 그보다 더 멋진 상품은 없었지요.

 

<소년> 2015년 7월호 글 권영상

 

 

'시인이 들려주는 동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샘물이 혼자서  (0) 2015.06.27
풀잎  (0) 2015.05.21
초롱불  (0) 2015.03.24
선물  (0) 2015.02.25
논갈이  (0) 2015.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