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박성룡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잎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그러나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 버리거든요.
풀잎은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풀잎! 풀잎! 불러보면 또 불러보고 싶을 만큼 재미있고 싱그럽지요. 그런 소리를 만들자면 입안은 분주할 테지요. 혀를 돌돌돌 말았다가 풀고, 입술을 달싹 열었다가 닫고, 입바람을 홀짝 불었다가 멈추어야 하지요. 그러니 그 말 만드는 입은 얼마나 즐거울까요.
근데 좋은 이름을 가지면 이름에 걸맞은 좋은 노릇도 하나봐요. 풀잎을 하나 떼어 입술에 대고 불어보면 알지요. 풀잎에서 연둣빛 휘파람소리가 나지요. 휘파람소리만인가요? 아니라지요. 피리소리도 낼 수 있다지요, 풀잎피리. 심심할 때, 또는 누군가가 그리울 때 풀잎 한 장을 떼어 뽀오오, 불면 잠깐이지만 풀잎은 내 외로움을 달래어 줍니다.
그래서 풀잎은 아름다운 풀잎이 되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다 이름을 가지고 있지요. 경수, 진아, 형석, 정호, 대길, 윤희 그리고 가랑비, 얼레달, 솔바람, 간장종지, 뿔고둥, 홍방울새, 달팽이, 뜰방, 안드로메다, 카시오페이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양조위, 히말라야.......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이름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풀잎처럼 이름에 걸맞게 살려고 할 때 이름은 더욱 아름다워진답니다.
(소년 2015년 7월호 글 권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