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은 정상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다
권영상
지난 해 여름 이야기입니다.
깜깜한 밤, 고성행 직행버스가 인제 용대리에 서자, 나는 내렸습니다. 그때가 10시 무렵. 내설악의 늦은 밤은 그야말로 칠흑 같았습니다. 10여년 만에 찾아오는 설악이었습니다. 나는 그 예전에 묵었던 민박집을 찾아갔지만 그 자리에 민박집은 없고 음식점만 하나 놓여있었습니다. 나는 다시 한길로 나와 매표소를 향해 컴컴한 길을 걸어 올랐습니다.
“주무실 겁니까?”
희미한 외등 밑에서 젊은 사내가 나를 불렀습니다.
나는 그 젊은 사내의 목소리에 이끌려 그만 그 집에서 민박을 했습니다. 그게 문제였습니다. 밤새도록 개구리 울음소리에 시달리느라 잠 한 숨 편히 자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짐을 싸들고 나와 보니, 내가 머무른 집이란 게 논 한가운데에 있는 섬 같은 컨테이너 박스였습니다.
“아저씨, 개구리 노래 잘 들었어요?”
젊은 사내는 없고, 사내의 딸인 듯한 어린 소녀가 아침인사를 했습니다.
“그래. 아주 즐겁게.”
그 소녀의 맑은 인사를 깨뜨릴 수 없었습니다.
아침을 먹은 나는 음식점에서 만들어준 주먹밥 한 덩이를 배낭에 넣고 길을 떠났습니다. 마을 청년회에서 운영한다는 셔틀버스를 타고 백담사 입구에서 내렸습니다. 거기서부터 나는 수렴동계곡의 청초한 물소리와 함께 걸었습니다.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서면 숨어있던 제 1바이올린의 협주곡처럼 느닷없이 계곡 물소리가 떠오르고, 내려서는가 하면 깜물, 물소리조차 사라지는 수렴동계곡 길을 걸었지요.
때로는 솔향기 가득한, 마치 잘 닦인 평원을 가듯 하는 소나무 오솔길도 걸었지요. 길섶엔 보라색 노루오줌이 이정표처럼 맞아주었고, 간혹 산악 까마귀가 반가운 나머지 나무 우듬지를 건너뛰며 노래를 들려주었지요.
영시암 아래 계곡에서 일부러 쉬었습니다. 여유를 가져보려고 일부러 찬 계곡물에 발을 씻고, 일부러 ‘봄날은 간다’도 흥얼거렸습니다. 젖은 발을 닦고 다시 산을 오르다가 아름드리 소나무 갈림길 앞에 섰습니다. 오른쪽은 봉정암 길이고, 왼쪽은 오세암 길입니다. 마등령을 넘어 비선대로 가야할 나는 오세암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제 봉정암 길은 자신이 없습니다. 전만해도 나는 당연히 그쪽 험한 길을 택했지요. 설악에 들어선 이상 아무리 험난하다 해도 대청봉은 올라야지요. 대청봉을 만나고 천불동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 나의 오랜 코스였지요.
나는 오세암 길을 걸어 올랐습니다. 혼자 길을 가는 외로운 나그네처럼 산줄기를 타고 오르다가 일행을 만났습니다. 하얀 모시옷을 입으신 할머니와 그분의 예순은 넘었을 아드님입니다. 멀리 전라도 영광에서 길을 떠났는데 오세암을 찾아가는 길이라 했습니다.
“조용한 오세암 부처님이 좋아서.”
그러시는 할머님이 내 보기에 관음보살님 같기도 하고, 그분의 나이 드신 아드님은 오세암 다섯 살 먹은 오세동자처럼 참 착해 보였습니다.
우리는 오세암 가파른 길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습니다. 수백 살 나이를 자셨을 주목나무는 왜 그리도 정정한지 우리 목숨이 왜소해질 뻔했습니다. 음습한 골짜기에서 피어오르는 흰 산안개가 우리 셋을 감쌌다가 풀었다가 했습니다. 우리는 늙은 주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났다가 헤어졌다가 하며 오르다가 끝내는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오세암에 들렀다가 부지런히 마등령을 향해 올랐습니다.
가파른 바윗길을 더는 힘이 부쳐 걸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알맞은 바위를 찾아 걸터앉았습니다. 거기 앉아 가져온 주먹밥을 내놓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음료 한 컵을 마시며 내가 걸어 올라온 이 험난한 바윗길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길은 나무숲 사이로 빤히 내려다보입니다.
오세암에서 여기까지는 20여분 거리, 그러나 그 20분 거리는 평지길 2시간을 걸은 것만큼 험난합니다. 나는 저 가파른 길 위에 숱하게 땀방울을 떨어뜨렸습니다. 저 길을 걸어 오르는 무겁고 지친 내 발에게 나는 자꾸 물었습니다. 이 외로운 길을 왜 왔는지에 대해. 지난 10여 년 동안 나는 여기까지 오지 않고도 잘 살았습니다. 바위에 앉아 그 지나간 10년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해마다 한두 번씩 이 산을 오르던 그 이전의 세월들을 생각했습니다.
등산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등산은 정상을 향해 가는 듯 하지만 실은 걸어 지나온 길에 가 있음을 느낍니다. 몸은 나무숲 우거진 고산으로 가고 있지만 마음은 낮은, 우리들이 먹고사느라 힘겨웠던 그 일상으로 자꾸 돌아가는 것을 느낍니다. 정상을 향해 오르면서도 마음은 정상에 있지 않습니다. 힘겹게 걸어온 과거의 길에 가 있습니다.
등산이란 멀리 떨어진 산중에 와 지나온 세월과 지나온 인생을 조용히 돌아다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내 경험으로는 그렇습니다. 산정을 향해 올라가면 갈수록 마음의 한 쪽은 내가 걸어온 먼 과거의 길로 자꾸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밥 한 덩이를 먹고 나는 다시 1320 미터 마등령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뗐습니다. 그렇게 또 오르다가도 힘들면 잠시 잠시 앉아 쉬는 나를 보며 놀랍니다. 내가 앉아 있는 방향이 정상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걸어온 아래쪽을 향하고 있음을 봅니다. 사는 일도 그럴 것 같습니다. 목표한 것만 쳐다보며 살면 그건 너무 힘들겠지요. 힘들다 못해 슬프겠지요. 내 인생이 나를 이렇게 혹사하는 것인가 해서 우울해지겠지요.
나는 쉬엄쉬엄 걸어 마등령에 올랐습니다. 올해는 여기가 나의 정상입니다. 내년엔 또 얼마나 나의 정상이 낮아질까요. 나는 능선을 타고 곧장 동쪽으로 걸어 비선대에 닿았습니다. 비선대에 내려섰을 때도 내 눈은 내가 걸어온 능선을 먼저 둘러보았습니다. 등산은 앞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되돌아보는 습성을 키워준다는 점에서 좋습니다.
비선대에서 대학 동창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강릉에서 차를 타고 왔고, 나는 서울에서 이 설악을 넘어와 서로 만났습니다. 모두들 내가 넘어온 저 푸르고 높은 마등령 길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내가 보아도 내가 구름을 타고 온 듯 합니다.
나는 여기서 다시 개구리 올챙이 시절의 먼 과거로 돌아가게 되겠지요.
대포항 어디쯤에 가 소주에 물회를 먹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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