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크리스마스가 가까이 다가오는 밤

권영상 2014. 12. 18. 10:11

크리스마스가 가까이 다가오는 밤

권영상

 

 

 

 

 

냉장고 정리를 하러 왔던 아내가 볼일을 마치고 저녁답에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다. 기상 예보대로 벌써 눈발이 치기 시작했다. 눈이 와도 꽤 올 것 같았다. 다섯 시가 조금 지났는데도 창밖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내일 출근을 해야할 아내는 급기야 서둘렀다. 큰길로 나가는 농로에 눈이 쌓이기 전에 얼른 이 곳을 벗어나야 했다.

아내가 차에 오르며 시동을 걸었다. 나도 옆자리에 탔다. 날도 어두워지고 눈도 내리는 좁은 길이라 큰길까지 바래주기 위해서다. 마을길을 돌아 간신히 큰길에 들어서자, 내리치던 눈도 뜸해졌다. 나는 조심해 올라가라고 몇 번이나 당부를 한 뒤 거기서 내렸다.

 

 

 

아내의 차 후미등 불빛이 사라질 무렵, 나는 돌아섰다. 뜸하던 눈이 다시 내리쳤다. 벌써 여러 차례 눈이 왔지만 올 때마다 눈발은 거셌다. 안성의 눈은 본디 그런지 모르겠다. 혼자 눈을 맞으며 논 사잇길을 걸어 마을 어귀에 들어설 때다. 맞은 편 길에서 우산을 접어든 채 눈을 맞으며 오는 할머니가 있었다.

“이 시간에 눈 맞으며 어딜 가세요?”

어둑했지만 나는 한눈에 그분이 누군 줄 알았다. 내가 살고 있는 집 건너편 외딴 산자락에 사시는 분이다. 처음 집들이랍시고 시루떡을 돌리러 대여섯 집 농가를 돌 때 내가 드리는 떡접시를 받고 그리 반가워하셨다.

“사람 보는 일이 제일로 그립다우.”

그러며 울담에 크는 푸른 호박을 따 내 손에 쥐어주시던 분이다.

 

 

 

내 말에 잠시 머뭇거리며 나를 쳐다보던 할머니가 그제야 나를 알아보시는 모양이다. “핸드폰을 두고 와서” 그러셨다. 아까 예배당에서 나오실 때 눈이 내리기에 우산 챙기는 데만 정신을 두었는데, 막상 집에 가 주머니를 뒤져보니 휴대폰이 없더라신다.

“정신이 이래 가지고 우찌 살꼬.”

그 말씀을 하시며 가던 발길을 옮기셨다. 여기서 예배당까지는 한참 가는 길이다. 거기다가 날이 어두워지고 눈발까지 내리치는 길이다. 할머니 동행을 해드리려고 나도 그만 발길을 돌려세웠다. 천천히 할머니 발걸음에 맞추어 눈을 맞으며 예배당에 이르렀다. 예배당 약한 불을 켜고 안을 살폈다. 할머니 앉으셨던 자리와 쭉 걸어 나오시던 통로를 살폈지만 휴대폰은 없었다. 신발을 꺼내 신으시느라 허리를 굽히셨을 신발장 쪽도 몇 번이나 살폈다. 역시 거기도 없었다.

 

 

 

“누가 잘 간수하고 있겠지.”

할머니 목소리가 뜻밖에도 예배당 기도의자 쪽에서 났다.

할머니는 거기 가 조용히 앉아 기도를 하고 계셨다. 가만히 바라보던 나도 할머니 뒷자리에 가 섰다. 눈을 감고 나도 기도했다. 어두운 저녁답, 눈길을 헤치고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을 아내가 무사하기를.

예배당과 먼 거리에서 살고 있는 나는 이 뜻밖의 일로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다. 예전 어렸을 적 어머니를 따라 어머니 다니시던 절에 가 부처님께 절을 하듯이. 마치 그때의 어린 나처럼 기도를 드리고, 기도를 마치신 할머니를 따라 다시 예배당을 나왔다.

 

 

 

 

바깥은 이미 캄캄해졌고, 눈발은 더욱 거칠었다. 나는 할머니의 우산을 펼쳐들었다. 그리고는 할머니 손을 잡고 눈길에 나섰다.

“얘들이 잠자기 전에 전화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찾으러 온 거지유.”

할머니는 멀리 도시에 나가 사는 자식들이 걱정할까봐 그게 걱정이었던 것이다. 춥고 눈 내리는 밤 홀로 계신 노모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자식들은 그게 또 걱정이다. 그 생각에 눈 오는 저녁답을 걸어 다시 오신 거였다.

“정신이 이래 가지고 원......”

팔순을 훨씬 넘기신 할머니는 그 말을 몇 번이나 하시면서 걸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갈림길이 나왔다.

할머니 집까지 모셔드리고 싶었지만 할머니는 한사코 사양하셨다. 나는 거기에서 할머니와 헤어졌다.

아내를 보내놓고 홀로 남아 눈 내리는 밤을 맞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눈길을 걸어 언덕 위에 있는 집에 들어섰다. 그러면서 고추밭 너머에 있는 할머니 집을 건너다보았다. 아직 인기척이 없다. 그러고 얼마 뒤, 할머니의 컴컴한 그림자가 할머니집 마당에 들어섰다.

“할머니, 잘 주무세요!”

펄펄 내리는 눈 사이로 손나팔을 해서 인사를 드렸다.

눈 때문에 얼른 내 말을 못 들으시는 모양이었다.

“잘 주무세요!”

나는 또 한 번 눈 속을 향해 소리쳤다.

그때에야 그 컴컴한 그림자가 이쪽을 향해 움씰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편안하게 잘 주무시라고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외등을 켰다.

 

 

 

간신히 보이던 마을이 깜물 환한 빛 속에 사라지면서 거친 눈발이 드러난다. 눈길을 헤치고 갈 아내가 걱정이 되었다. 아내가 집에 도착할 무렵쯤 되어 전화를 했다. 방금 도착했다는 거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 눈이 그치는 바람에 딱 한 시간 만에 왔단다. 다행이었다.

방에 보일러 불을 넣고, 바깥을 내다봤다. 그렇게 쏟아지던 눈도 딱 그쳤다. 마당에 나가 하늘을 쳐다봤다. 별이 두어 개 반짝이고 있다. 건너편 할머니집 창문에도 불이 켜져 있다. 멀리서 보면 반짝이는 별 같겠다.

크리스마스가 점점 가까워오는 12월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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